[Review] 혼란함 속에서도 또렷한 매력, 안 세르의 ‘가정교사들’

‘매혹적’이라는 수식어에 동의합니다.
글 입력 2023.08.29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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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부문 공쿠르상을 수상하고 페미나상과 아카데미프랑세즈 소설 대상 등 유수의 문학상 후보에 오르며 현대 프랑스 문단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진 작가 안 세르의 첫 장편소설 [가정교사들]이 국내에 처음으로 출간됐다. 최근 영미권에 번역되어 비평계에 찬사를 받았으며, 영화화 소식이 잇따라 발표되면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안 세르의 데뷔작이기도 한 [가정교사들]은 특유의 문체에 혀를 내두를 만큼 놀라운 소설이다. [가정교사들]이 무언가를 명확히 보여주는 편은 아니었으며 모호한 것을 싫어하는데도 [가정교사들]은 ‘싫다’라고 말할 틈이 없었다. 도대체 어떠한 부분이 [가정교사들]을 그러한 소설로 만들었는지, 그 매력을 나열해보고자 한다.


원색적이고 선정적이라는 평은 매우 적합한 표현이었다. 엘레오노르, 로라, 이네스의 일과 중 하나인 낯선 남자를 ‘잡아먹는 일’은 완곡한 표현 없이 직접적으로 묘사되었다. 해당 문단을 읽을 때 어딘가 모르게 낯이 뜨거워질 정도로, 책 모퉁이 어딘가에 연령 고지가 되어있지는 않은지 살펴볼 정도로 원색적인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 표현 방식이 적절하다는 것은 [가정교사들]을 읽은 모두가 납득할 것이다.


엘레오노르와 로라, 그리고 이네스는 욕망 앞에 망설임이 없었다. 그들은 육욕을 숨기지 않았고 끌리는 것들에 관해서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한 특성으로 세 사람을 묶어두면서 완곡한 표현을 썼다면 독자는 이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들의 욕망과 그것을 대하는 세 사람의 성정이 소설의 관능적인 부분을 만들었다.


두 번째 매력을 만든 주된 요인은 ‘표현력’이다. [가정교사들]을 한마디로 ‘시집’ 같은 소설이었다. 한 손에 들어오는 크기의 책이 비유적인 표현을 한가득 머금고 있다면 누구나 쉽게 들 생각일 것이다. 강렬한 붉은색의 표지에 홀린 듯이 책장을 넘겨 가다 보면 특별한 의미를 가진 듯한 오브제를 발견한다.

 

‘금빛 철문’은 척 보아도 모든 인물에게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무언가’이다. 엘레오노르와 로라, 이네스에게는 ‘밖’으로 가기 위해 넘어야 할 선 따위로 말할 수 있다. 그들이 언제고 바라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을 숨길 수 없는 ‘밖’, 그리고 금빛 철문은 그 바깥으로 향하는 길인 것이다. 그러니 나머지 인물에게 ‘금빛 철문’은 가정교사들이 나타나기 이전과 이후의 삶을 구분 짓는 기준선이라고 할 수 있다. 가정교사들이 떠난다면 언제고 그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갈 시간의 경계다.


마치 소설에 들어간 듯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을 만든 문장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나 가정교사들이 산행길에 올랐을 때를 표현한 문단은 정말 찬사를 보내고 싶어질 정도다.

 

 

“시냇물이 졸졸거리는 소리가 가득한, 물을 가득 머금은 봄날의 초원이 펼쳐져 있고, 생기 넘치는 노란 수선화가 뻗어 나오는 물과 풀의 고장이다.”

 

“여름이 끝날 무렵에는 손가락을 빨갛게 물들이는 오디나무가 우거지고, 시큼한 분홍 까치밥나무 열매가 부드럽고 푸르른 나뭇잎들 아래 열린다.”

 

p.123

 

 

“가을이면 비를 맞아 물러진 나뭇잎 더미의 냄새를 맡는 일을 그들은 가장 좋아했다. 땅에 엎드려서 검붉은 나뭇잎 더미 속에 얼굴을 묻고, 그곳에 얼굴을 비비고, 냄새를 맡는 강아지처럼 오랫동안 숨을 들이마시곤 했다.”

 

p.128

 

 

읽는 이를 사계절 곳곳으로 보내는 문장이다. 눈앞에 여름의 풍경이 펼쳐지고 콧속으로 가을의 냄새가 스민다. 세 사람과 함께 산행길에 오른 듯 세밀하고 사실적인 묘사다.


118쪽부터 등장하는 빛을 잡는 장면은 그 모습이 사실적이면서도 동화적이었다. 관능적인 내용을 담은 소설이 동화적일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인 부분 중 하나다. 관능적이면서 동화적인 것, 사실적이면서도 몽환적인 소설의 모호함에 마음을 쏟지 않을 수 없다.

 

“만화경 속을 들여다본 듯 시간이 빗겨 간 환상의 세계”


149쪽에 수록된 옮긴이의 말이다.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시간의 흐름을 따라 서술되지 않는다. 파티를 여는 것, 가정교사들의 일상, 망원경으로 그들을 관찰하는 노인, 로라의 아이, 세 사람의 산행길, 남자아이들의 관점에서 바라본 ‘관계’ 등 이곳저곳 조각난 이야기 파편이 한데 모여 [가정교사들]을 이룬다. 엘레오노르와 로라, 이네스의 상상과 꿈을 닮은 몽환적인 세계가 펼쳐진다.


그 속에서 어떠한 말이 진실이고 인물들은 어떤 목표를 가졌는지, 어떤 갈등과 해결이 존재했는지 생각하지 않는 편이 맞는 것 같았다. 여러 가지 사건이 있었지만 그들은 여전했다. 그 결말에서 명확한 교훈을 얻거나 경험에 투영하여 공감할 수는 없었다. 나 홀로 결론짓는 것이 무의미한 듯했다. 작가가 이야기에 담아놓은 것들이 이미 많았다. 욕망을 대하는 자세, 자연에 관한 시각, 하나부터 열까지 제각각인 인간들 사이의 관계 형성 등 이야기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유의미한 것들이 많았다. 한 번의 정독으로 파악하고 곱씹기는 어려운 많은 의미를 차치하더라도 [가정교사들]은 매력적이다. 이야기 조각 하나하나가 모두 제각각 빛을 내며 환상적인 세계로 독자를 이끈다.

 

마지막에도 서술한 바 있지만, [가정교사들]은 한 번 읽는 것으로는 부족하면서도 한 번으로 충분할 만큼 매력적인 소설이다. 소설을 읽을 때는 주인공의 심리를 따라가며 함께 울고 웃으며 공감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가정교사들]은 그러한 독법을 완전히 깨부쉈다. 독자를 철저하게 제삼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면서도 인물들이 느끼는 것들을 눈앞으로 친히 가져다주었다. 누군가에게 이입하기보다는 그들의 세계에 녹아드는 느낌이었다.

 

모호한 결말과 익숙하지 않은 이야기 진행이 혼란스러울 만하다. 하지만 길경선 역자가 남긴 바람대로 나는 [가정교사들]이 매혹적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그 어떤 혼란이 있을지라도 [가정교사들]이 매력적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박서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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