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나는 세상의 구원자이자 파멸자다 - 영화 오펜하이머

글 입력 2023.08.28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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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폭탄의 아버지라 불리며 최초의 핵을 만드는 데 중심적인 영향을 미친 오펜하이머는 천재적인 과학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제작한 영화 <오펜하이머>는 개봉 전부터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영화는 한 인물의 삶을 자세하게 보여준다. 그 속에서 드러나는 개발과 발전, 여러 갈등 양상 그리고 시대적 배경까지. 현대인에게 그의 삶은 위대한 과학적 발명을 이루어낸 명석한 과학자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그가 이 개발을 이루어내기까지, 그리고 이를 완수한 이후로의 삶은 우리가 자세히 알지 못했던 그의 또 다른 인간적 고뇌와 과학발전의 모순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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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통의 편지, 역사의 시작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던 해, 독일의 과학자들은 우라늄 분열 현상을 발견한다. 일반적으로 원자는 쪼개지지 않는 성질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은 분열된 원자 속에서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발견한다. 그리고 이것을 잘 활용하면 원자폭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들이 원자폭탄을 개발해야겠다고 다짐한 이유는 독일보다 먼저 개발해야 한다는 의지가 앞섰기 때문이다. 당시 독일의 히틀러는 전쟁으로 세계 정복을 계획하며 무자비한 학살을 하고 있었다. 만약 나치 정권이 핵폭탄을 먼저 개발한다면 전 세계는 참혹한 재앙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걱정은 충분히 할 수 있는 염려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명망 높은 과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의 이름을 대신해 미국의 대통령인 루스벨트에게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을 장려하는 편지를 쓴다. 물론 정부가 이 편지 하나로 곧바로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었으나, 여러 상황 끝에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계획이 시작된다. 이 프로젝트가 바로 그 유명한 ‘맨해튼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철저한 보안 속에 진행되었다. 당시 미국의 부통령이었던 트루먼조차도 이 프로젝트가 시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만큼 대통령과 몇몇 관계자들만이 관여하였다.

 

프로젝트는 무려 3년간 진행되었으며 이때 모였던 여러 과학자 사이의 총 책임자가 바로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이다. 오펜하이머 역시 유대인이었기에 독일보다 먼저 핵폭탄을 개발해야 한다는 사실에 동의하였다. 또한, 당시 프로젝트에 참여한 물리학자 대부분이 유대인 출신이었기 때문에 이 계획은 모두의 열정적인 참여하에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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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원자폭탄이 완성되기 전에 전쟁은 끝나고 만다. 1945년 4월 30일 히틀러의 자살로 인해 독일은 연합군에 굴복했으며 그로 인해 1945년 5월 8일 항복문서에 정식으로 서명했다. 자연스레 맨해튼 프로젝트는 목적을 잃게 된다. 본래 히틀러를 견제하기 위해 조직된 단체이므로 히틀러의 사망과 함께 맨해튼 프로젝트도 종료되어야 하는 게 옳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완성 단계로 나아가고 있던 원자폭탄을 비롯해 아직 진행 중인 일본과의 전쟁은 핵폭탄을 통해 미국인의 희생을 방지하자는 목소리도 존재했다.


이때 일본과의 전쟁은 태평양 전쟁으로, 1941년 12월 7일 진주만에 있는 미 해군 기지를 일본이 기습 공격하여 수많은 군인과 민간인 희생자를 발생시킨 사건이다. 이에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일본과의 전쟁을 선포하여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전쟁이 발발하였다.


결국, 과학자들은 최초의 핵실험인 ‘트리티니 실험’을 거쳐 맨해튼 프로젝트를 끝까지 완수한다. 폭탄이 터지는 거대한 소리와 함께 트리티니 실험의 성공을 알리는 과학자들의 함성이 쏟아진다. 이 장면은 영화 <오펜하이머>의 정점이며, 오랜 고생 끝에 만들어진 발명품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과학자들의 기쁨과 환호가 잘 드러난다.


 

 

나는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원자폭탄 개발의 성공으로 인해, 오펜하이머는 이 개발의 성공을 축하하는 연설을 한다. 이때 연설을 듣고 있는 대중의 환호는 몇 명의 갑작스러운 고통으로 바뀌게 된다. 누군가의 피부는 찢어지고 누군가는 절규하며 또 다른 이는 심하게 구토를 하는 모습을 오펜하이머는 목격한다.

 

이러한 공포스러운 모습은 그의 상상 속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원자폭탄이 만들어진 이후 많은 사람의 모습을 예견하는 듯한 연출이 펼쳐진다. 이에 오펜하이머 역시 원자폭탄 발명의 성과를 낸 것과는 별개로 왠지 모를 불안함이 마음 한쪽에 자리한다.


그의 불안감을 증명하듯이, 1945년 8월 6일 일본의 히로시마에 첫 원자폭탄인 ‘리틀 보이’가 투하된다. 18km 상공까지 치솟은 구름과 함께 57초 만에 폭발하여 히로시마 인구 34만 3천여 명 중 약 10만 명이 즉사했다.

 

그리고 사흘 후, 나가사키에는 두 번째 원자폭탄인 ‘팻 맨’이 투하되었는데, 폭발 당시 콘크리트를 녹일 정도인 3900도까지 온도가 올라갔으며 무려 7만여 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이러한 결과로 인해 일본은 마침내 항복한다.


오펜하이머의 원자폭탄 개발은 대한민국의 광복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서울을 해방시키고자 계획한 서울 진공 작전은 1945년 8월 18일 광복군을 서울에 투입하여 일본 제국을 몰아내고자 하였으나, 그 이전에 일본이 미국의 원자폭탄으로 인해 항복하며 우리나라 역시 자연스레 광복을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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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항복으로 인해 오펜하이머는 전쟁의 영웅이 되었지만 자신의 손으로 만든 무기가 수많은 희생자를 탄생시켰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낀다. 영화 속 그는 트루먼 대통령에게 자신의 손에 피가 묻어있는 것 같다며 그의 심정을 간접적으로 표출했으나, 대통령은 그것을 그저 징징거리는 것으로 치부해버린다. 이때부터 원자폭탄의 실권은 이미 오펜하이머의 손을 떠나게 되었다. 이제 과학자들이 개발한 혁신적인 무기는 권력자의 무기로 재탄생하여 정치적인 수단으로 탈바꿈하였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주었다는 이유로

영원토록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는다


 

영화의 도입부에는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를 간략히 설명한다. 프로메테우스는 불을 훔쳐 인간에게 가져다주며 인간의 환대를 받았지만, 신에게는 분노를 자극한다. 그리하여 그는 평생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게 된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가져다준 불은 여러 가지 이점과 편리함을 동반했다. 날 것의 음식을 익혀 먹거나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기도 했다. 그가 가져다준 불은 모든 문명의 시발점이었다. 그러나 불은 이점과 함께 여러 해악도 함께 가져다주었다. 인간을 해칠 수 있는 도구가 되었고 권력의 남용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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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메테우스에 대한 양면적 평가는 오펜하이머에게도 적용된다. 핵무기를 성공적으로 개발하여 자국민의 목숨을 미연에 방지하였고 전쟁의 종전에 이바지하였으나, 수많은 희생자를 발생시켰다. 대량살상 무기로 인한 경각심은 특정인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수많은 민간인도 피해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그가 느낀 죄책감은 더욱 커져만 갔을 것이다.


실제로 그가 만든 핵무기를 윤리적 문제와 결합시키며 그의 고민이 깊어져 갔을 때부터 그의 지난한 삶도 함께 시작되었다. 원자폭탄보다 훨씬 더 강력한 수소폭탄의 개발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그는 한순간에 소련의 스파이라는 모함을 사게 된다. 그리하여 열린 청문회는 오펜하이머의 지난 행적을 치욕스럽게 전부 드러낸다. 그의 사생활을 넘어 집요하게 추궁하는 여러 압박 질문들까지. 그가 인류의 생명을 위해 거부한 과학의 발전은 그를 정치적 희생양으로 만들었다.


오펜하이머에 대한 정치적 마녀사냥은 인간의 이성과 과학발전의 이로움에 의문을 제기한다. 다수의 희생자가 발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핵무기는 각 국가의 경쟁 도구가 되었다. 더 강력한 무기를 만들고자 힘쓰고 그것은 자국의 권력과 힘을 키워 명성을 드높이는 것에만 치중되어 있었다.

 

아울러 정부는 과학발전이 얼마나 인간에게 해로움을 주었는지는 고려하지 않고 자국의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할 생각만이 가득했다. 그리고 이때 희생되는 건 강력한 무기를 만드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지만, 정치적으로는 어떠한 권력도 쥐고 있지 않은 힘없는 개인일 뿐이다.

 

 


파멸의 연쇄 반응이 이미 시작된 것 같아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작품의 주제와도 가장 잘 연결된다. 오펜하이머와 아인슈타인이 나누는 대화는 정치적 실권을 쥔 자와 힘없는 개인의 싸움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를 나타내며, 정치적 권력 수단으로 탈바꿈한 과학적 발전이 앞으로의 삶에 미칠 파장을 담아낸다.


 

아인슈타인: 세상이 자네를 충분히 고통스럽게 벌하고 나면, 언젠가 이 세상은 자네를 불러 근사한 곳에서 자네를 위한 연설도 해주고, 상도 수여하겠지. 사람들은 자네 등을 토닥이며 이제 자네는 용서받았다고 할 걸세. 그러나 기억하게. 그 모든 것은 오펜하이머 자네를 위한 게 아닐세. 그들이 자신들 스스로에게 베푸는 것이지.


오펜하이머: 알베르트. 그때 그걸 만들고 있을 때 제가 핵분열의 '연쇄 반응'이 끝나지 않아 온 세상을 멸망시킬 수도 있다는 가설을 담은 계산식을 가지고 박사님을 찾아뵌 적이 있었죠.


아인슈타인: 나도 기억하네. 그 이야기는 왜?


오펜하이머: 우리가 그걸 현실로 만든 것 같아요.


 

위의 대화에서 오펜하이머가 말한 ‘연쇄 반응’은 단순히 핵무기에 대한 위험만을 논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이 최초로 성공시킨 원자폭탄은 더 이상 미국 고유의 무기가 아니었다. 본격적인 핵무기 개발 경쟁을 통해 소련과 영국 등이 연이어 핵무기에 대한 개발을 성공시켰다. 이제 더 강력한 무기를 만드는데 과학의 발전을 이용하고 있으며 자국의 세력을 넓히는 데 큰 비중을 두는 상황은 단순한 연쇄 반응이 아닌 ‘파멸’의 연쇄 반응이라고 말한 오펜하이머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이러한 연쇄 반응은 아직도 지속되는 현상이다. 서로 다른 세력끼리의 경쟁과 대립을 통해 갈등을 형성하고 그 갈등은 이념 간의 갈등, 양극화 현상, 그리고 이제 그 범주는 개인을 넘어서 점차 넓어지고 있다. 수많은 핵무기가 세상을 덮치는 환영을 보며 창백해진 그의 얼굴의 확대와 함께 영화가 마무리되는 것은 과학의 발전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권력의 씨앗을 확산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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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상영시간은 총 180분으로 다소 길었다는 평도 적지 않다. 그러나 한 인물의 삶과 고뇌가 모두 어우러진 생애를 단 3시간 만에 농축하여 담은 것이라면, 그 시간은 절대 길지만은 않다. 과학발전의 양면성과 더불어 인물이 처한 상황과 죄책감, 그의 고뇌를 모두 담아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통해 두 가지를 전하고 싶다. 하나는 인물에 대한 헌사이다. 오펜하이머는 자신이 만든 무기가 수많은 희생자를 만들었다는 것에 죽을 때까지 죄책감을 느꼈지만, 그가 이룬 과학의 발전은 이런 부정적인 면만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것과 동시에 모든 문명과 과학의 발달은 양면적 가치를 지닐 수밖에 없다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인물에 대한 공감이다. 뛰어난 실력과 천재적인 재능으로 혁신적인 개발을 이루어냈으나, 그 개발이 정치적인 도구가 되며 모든 윤리적 책임을 한 개인에게 떠넘기려 할 때 그 개인의 삶은 너무나도 부담스럽다. 박사는 자신의 손으로 만든 발명품이기에 이 고통을 오롯이 감내했으나, 이제 이 영화를 본 감상자가 존재하는 이상 그가 느낀 고뇌와 고통은 온전히 그의 것만은 아닐 것이다.

 

 

참고자료

EBS 토크쇼 <인물사담회-오펜하이머>

tvn <벌거벗은 세계사>-오펜하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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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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