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춤추고 연주하고 글 쓰며 생각한 것들 1 [문화 전반]

글 입력 2023.08.25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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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하세요



“숨 쉬세요!”


무용 선생님이나 피아노 선생님이 자주 하시는 말씀이다. 무용을 하거나 피아노를 칠 때 계속 까먹는 것. 바로 호흡이다. 춤추거나 연주하는 데만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숨을 안 쉬거나, ‘대충’ 아무 때나 쉬게 된다. 선생님이 숨을 쉬라고 하시는 건 그냥 숨만 쉬라는 게 아니라 ‘제대로’ 숨을 쉬란 소리다.


현대무용은 이완과 수축의 예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현대무용 기초 수업에서는 언제나 이완과 수축을 진자운동 하듯이 반복하는 훈련을 한다. 모든 동작의 기반에는 이완과 수축의 원리가 있고, 이완과 수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호흡이다. 숨을 내쉬면서 몸을 이완하고, 들이쉬면서 수축한다. 점프할 때는 호흡을 들이마셔야 하고, 바닥으로 무너질 때는 내쉬어야 한다.


호흡 없이는 아무리 몸을 격렬하게 움직여도 어딘지 모르게 작위적인 느낌이 난다. 내 몸은 호흡이 통하는 통로라고 생각하고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언제 숨을 쉬어야 할지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호흡에 따라 움직임의 질감도 달라진다.


호흡은 악기 연주에서도 중요하다. ‘프레이징’이란 음악의 호흡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단락을 어디서 끊어서 어디까지를 ‘한 호흡’으로 갈 것이냐 정하는 것이 곧 프레이징이다. 프로 연주자들에게는 음악을 표현할 때 아주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기도 하다. 악보에서 다양한 기호를 통해 호흡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지만, 연주자마다 자신만의 해석으로 프레이징을 결정한다. 프레이징에 따라서 같은 곡도 완전히 다르게 들릴 수 있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어디서 끊는지에 따라 어투가 달라지는 것처럼. 글을 쓸 때 단락을 어디서 끊느냐가 글의 흐름을 결정하는 것처럼.

 

호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춤이나 연주는 기계적이고 부자연스럽다. 춤이든 음악이든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활동인 호흡 위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 흥미롭다. 호흡하지 않는 인간은 없겠지만, 무엇을 통해서든 인간의 소통은 언제나 살아있는 숨과 함께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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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이 가장 큰 장애물일 수 있다


한참 무용에서 앞구르기를 못 하던 적이 있었다. 중학생 때 학교 체육시간에는 쉽게 했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다 커서 무용 시간에 해 보려니 너무 어려웠다. 물론 무용에서 하는 앞구르기는 그냥 하는 게 아니라 한쪽 발을 들어 올린 채로 상체를 접어서 굴러야 하는 동작이었지만, 시작 동작이 다를 뿐이지 사실상 그대로 앞으로 구르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땅바닥으로 머리가 곤두박질 치는 게 제일 걱정스러웠다. 목이 부러지거나 정수리에 혹이 나지 않게 구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대체 앞구르기 하는 방법이 뭐지? 남들은 초보자 때도 쉽게 하는 동작을 나는 왜 이렇게 어려워하나. 이러다 평생 앞구르기는 정복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어느 날 오기가 생겨서 선생님을 붙잡고 앞구르기 하는 방법을 물었다.


“그냥 구르면 돼요. 무서워서 못 하는 거지, 앞구르기는 누구나 할 수 있어요. 눈 딱 감고 굴러봐요.”


정말 눈 딱 감고 ‘악!’ 소리까지 내면서 굴러봤다.


잘 굴렀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언제 어려워했냐는 듯 앞구르기를 잘도 한다. 도대체 왜 이걸 못했나 싶을 만큼 너무 쉬운 동작이다.


앞구르기가 어려웠던 건 순전히 두려움 때문이었다. 두려움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도 못 하게 만들 수 있다.

 

내 인생에도 그런 일이 있겠지.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두려워서 못 하고 있는 것들. 한번 해보면 별 거 아닌 것들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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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라이트를 위한 절제


피아노곡에는 쳐야 할 음이 너무 많지만, 그중에서 들려주고 싶은 음만 들리게 할 줄 알아야 한다. 피아니스트들이 원하는 손가락에만 힘을 줄 수 있도록 열 손가락을 고르게 발달시키는 연습을 끝없이 하는 이유다. 열 손가락이 모든 음을 같은 힘으로 고르게 쳐버리면 관객이 들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런 건 음악이라기보단 소음에 가깝다. 


전체적으로 곡을 칠 때도 강약 조절이 필요하다. 언젠가 유퀴즈에서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말한 것처럼, 하이라이트에서 극강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나머지 부분에서는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 모든 부분이 계속 아름다우면 역설적으로 그 음악은 감동을 줄 수 없다.


이런 절제의 미는 춤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든 동작에 힘이 들어가면 어떤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힘을 풀 땐 확실히 풀고, 정확히 강조하고 싶은 부분에서 힘을 주어야 보는 사람도 춤을 이해할 수 있다.


무용이나 음악이나 전체적으로 무난하게 완벽한 것보다, 몇 군데가 특출난 것이 더 큰 감동을 준다. 그걸 알면서도, 무용수와 연주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량과 감성을 전부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앞서기 마련이다. 무용수에게 모든 안무는 중요하고, 연주자에게 모든 음은 아름답다.  그래서 언제나 ‘하이라이트’를 위해서 나머지를 절제하고 덜어내는 작업이 제일 어렵다. 

 

이건 마치 글쓰기에서 퇴고할 때와 같은 심정이지 않을까 싶다.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낸 초고에서 제일 중요한 것만 남겨두어야 하는 일. 읽는 사람에게 피로감을 주고 쓸데없이 현란하기만 한 단어들을 지우는 일. 내가 쓴 글은 다 소중하지만, 살을 잘라내는 심정으로 쳐내고 나면 글이 훨씬 담백하고 명료해진다. 

 

예술은 끝없이 자기 안의 욕심과 허영을 덜어내는 작업이기도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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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연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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