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부드럽고 강한 [도서/문학]

글 입력 2023.08.25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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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고 강한


 

최은영의 새 단편집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에, 더없이 반가운 마음과 함께 책을 펼쳐보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사람과 사회의 관계, 그 속에서의 촘촘하고 미묘한 감정선을 그 누구보다 섬세하게 그려내는 그의 글을 좋아해왔기 때문이다.

 

제멋대로 하는 오해일 수도 있겠지만,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세상을 느끼는 마음의 결이 비슷한 이를 만난 듯한 기분이 든다. 나와 꼭 닮은 마음을 담아낸,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문장들. 지하철에서 단편 하나를 읽다가 울컥해서, 목적지를 몇 정거장 앞두고 먼저 내려 잠시 표정을 갈무리해야만 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의 글은 내가 미숙하고 무딘 탓에 흘려보냈던 감정들을, 수면 위로 차마 떠오르지 못하고 어떤 강렬함으로만 존재했던 감정들을 꼼꼼히 재현한다. 그 재현은 결코 과한 법이 없으며 그렇기에 지독히 현실적이다. 분명히 느꼈지만 설명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어 속으로 삭혀왔던 것들. 혼자 보는 일기에라도 써보려고 했지만, 해석할 수 없는 외국어처럼 지나가던 그 마음을 최은영은 아주 훤히 들여다보고, 아름답게 번역해낸다.

 

사람과 세상을 마주하며 나도 나를 설명할 수 없는 막막함을 숱하게 느껴왔다. 최은영의 담백함과 예리함을 동시에 갖춘 문장들은 진정 오랜 고민과 통찰, 거듭되는 상처와 회복 없이는 나올 수 없는 것들임을 안다. 바람이 일면 파르르 떨리도록 얇고 투명하지만, 결코 무너지는 법이 없는 단단한 유리성. 그것이 내가 그의 글에 대해 가지는 인상이었다.

 

어쩌면 인간관계의 역학을 심도있게 그려내는 그의 글들을 보고 미시적인 세계에서 강점을 가졌다는 평을 내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세대를 아우르는 여성들의 연대기를 담아낸 장편 《밝은 밤》을 읽었을 때, 그의 세계가 가진 넓이와 깊이를 분명히 느낀 바가 있다. (처음 최은영의 단편을 접했을 땐, 나의 '읽어내는 힘'이 지금보다도 더 미숙했던 탓에 좀 더 명시적으로 시대적 소재를 다룬 《밝은 밤》을 읽고 나서야 재차 생각하게 된 지점이지만)

 

지극한 개인의 삶과 그 삶의 흐름을 알게 모르게 이끌어가는 세상의 흐름 혹은 압력. 최은영 특유의 섬세함은 단순히 미시적인 세계를 꼼꼼히 옮겨내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회가 이루는 관계의 짜임을 탄탄하고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강력한 힘이 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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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번 단편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는 그의 깊고 넓은 세계가 더욱 적극 반영되어 있었다. "순하고 맑은 서사의 힘"(서영채 문학평론가)이라는 평을 받았던 기존의 단편들 역시 강한 호소력으로 시대와 개인의 현실을 엮어 왔지만, 유독 이번 책에 실린 작품들에는 마냥 '순하다'는 말로 요약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흐르는 듯했다.

 

모든 작품에는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쉽게 분리해내지 못하는 미묘한 불편함, 쉽게 시인하기 어려운 깊고 노골적인 감정들, 인물의 몸짓 하나, 말 한 마디에서 느껴지는 리얼한 현실의 폭력과 위계 등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답신〉을 읽을 땐 책장을 넘기는 것이 버거워 계속 끊어가며 읽어야 할 정도였다.

 

삶이 기구해서, 내가 유별나서, 등의 이유로 흐릿한 상태로 두고 말았을 모든 사건과 감정의 맥락을 최은영은 낱낱이 꺼내 파헤치고, 또 어루만진다. 세계의 극도로 조밀한 부분을 그려내는 동시에, 그 조밀함이 이루고 있는 전체의 방향성을 빠짐없이 상기시킨다. 책 말미의 해설에서, 양경언 문학평론가는 다음과 같은 분석을 덧붙였다.

 

 

최은영의 여성은 '읽는 행위'를 통해 개인의 불운으로 여기기 쉬운 일들을 사회구조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시야를 얻음으로써 삶을 쉽게 등지지 않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 이 여성 인물들이 어떤 맥락에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남들이 보기엔 자기 자신을 지키지 않는 방향으로 스스로를 내모는 결정일지언정 그들을 둘러싼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함부로 그들의 사연을 '개인 사정'이라며 외면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내세우는 것이다.

 

 

최은영은 모두의 삶과 그들의 선택을 쉽게 단언하고 일축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삶에 작용하는 여러 방향의, 여러 강도의, 여러 출처의 힘을 고려하는 동시에 세상에 대응하는 개인의 주체성을 조명한다. 어느 한 쪽도 포기하지 않고 설명해내려 한다. 끈질기고, 집요하고, 그래서 사려깊다. 부드러운 밀도를 갖춘 그의 글은 촘촘한 만큼 단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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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번 단편들에서는 눈에 띄는 점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소설의 곳곳에 '글을 쓰고 읽는 사람'으로서의 자세나 고뇌의 흔적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특히 〈몫〉,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서는 글을 매개로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인물들의 서사가 주로 나타난다. 무엇을 쓸 것이며, 어떻게 쓸 것인가의 문제를 두고 갈등하는 이들의 모습에는 자연스레 우리의 모습이 겹쳐진다.


 

누군가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수치스러웠다. 내가 그 글을 쓰면서 남들에게 어떻게 읽힐지 의식했다는 사실을 나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 표현하고 싶은 생각이나 느낌을 그대로 담았을 때 감상적이라고, 편향된 관점을 지녔다고 비판받을까봐 두려워서 나는 안전한 글쓰기를 택했다. 더 용감해질 수 없었다. (...) 순응주의, 능동적인 순종. 그런 말들에서 나의 글이, 삶에 대한 나의 태도가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중에서

 

 

당신은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한번 읽고 나면 읽기 전의 자신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글을, 그 누구도 논리로 반박할 수 없는 단단하고 강한 글을, 첫번째 문장이라는 벽을 부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글을, 그래서 이미 쓴 문장이 앞으로 올 문장의 벽이 될 수 없는 글을, 언제나 마음 깊은 곳에 잠겨 있는 당신의 느낌과 생각을 언어로 변화시켜 누군가와 이어질 수 있는 글을.

 

〈몫〉 중에서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싫었어. 읽고 쓰는 것만으로 나는 어느 정도 내 몫을 했다, 하고 부채감 털어버리고 사는 사람들 있잖아. 부정의를 비판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정의롭다는 느낌을 얻고 영영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 편집부 할 때, 나는 어느 정도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아.

 

〈몫〉 중에서

 

 

나의 시선이 편협하지는 않은지, 누군가의 맥락을 거칠게 잘라버리는 건 아닌지, 이 글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을지, 비판 받지 않을지, 치명적인 흠결이 있지는 않은지, 무언가에 반(反)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의 차이를 잊고 사는 건 아닌지, 무언가를 논한다는 이유로 쉽게 평가를 '내리는' 우를 범하진 않았는지... 너무나 익숙한 고민들이었다.

 

이 고민들은 결국 담아내고자 하는 것을 '담아내는' 매개로 작가가 선택한 것이 '글'이기 때문이고, 내가 담아내고자 하는 것을 '수용하는' 매개로 독자가 선택한 것이 '글'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런 선택을 내린 이상 결국 우리는 글이라는 매체가 가진 효용과 한계를 마주치고, 자신에 대한 끝없는 들여다봄의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실재하는 세계와 사람을 활자 속에 옮겨 담고 또 그것을 받아 마시면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숙고.

 

최은영의 글이 가지는 끈질긴 섬세함도 결국 이런 들여다봄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느 한 군데도 빠지지 않는 완벽한 글이라는 건, 닿을 수 없는 이상 아니던가. 그럼에도 그의 문장은 왜 이토록 끈질긴가, 질문을 던져본다. 아마 그건, 끈질긴 글이 남기는 확실한 사실이 몇 가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읽고 쓰려 한다는 점, 그렇게 해서 지나쳐선 안 될 무언가를 포착하고 남기고 싶어한다는 점, 그 과정이 누군가를 다치지 않게 하는 것에서 나아가 누군가를 어루만질 수 있는 것이 되도록 노력한다는 점, 사람과 사랑을, 그들이 가지는 존재의 부피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자 한다는 점.

 

"더 진실하기를, 더 치열하기를, 더 용기 있기를."이라는 문구대로, 나는 최은영의 이번 단편집을 온유하지만 끊이지 않도록 강력한 의지가 깃든 글을 보았고 또 그런 글을 보았기에 다시 한번 다짐한다. 내가 가진 가장 부드러운 것을, 가장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기꺼이 둘러주는 글. 그래서 강할 수 있는 글을 쓰겠다고.

 

 

[황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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