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네마프2023, 기술이 낳은 풍요와 안위 사이에서 던지는 질문 - 제23회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

안전한, 신체의 확장
글 입력 2023.08.22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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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마프의 ‘대안영상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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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과 ‘영상’, ‘예술’이라는 모호한 세 용어가 결합해 ‘대안영상예술’이라는 단어로 거듭났다.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대안영화제,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Seoul International ALT Cinema & Media Festival, 이하 네마프)가 내세우는 대안영상예술이란 뭘까.


단순하게 이들이 소개하는 실험영화나 대안영화, 비디오아트 등의 개념을 총칭한다고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 각각이 공유하는 뚜렷한 공통점은 영상 매체라는 사실뿐, 이들을 한 덩어리로 묶기에는 각자가 가리키는 지점이 미묘하게 다르다. 여타 예술 장르들도 마찬가지지만 그중에서도 영상이란 유독 본질적으로 제약이 없기 때문이다. 제작 과정에서 사용하는 도구가 카메라 렌즈가 됐건 소프트웨어가 됐건,  화면으로 출력될 수 없는 평면 이미지란 존재하지 않는다. 영상 제작의 방법론은 기술과 아이디어로 가속될 때 어떤 구속도 받지 않는다.


하지만 주류의 흐름을 꿰찬 장르라면 어쩔 수 없이 완고한 매뉴얼을 따르게 된다. 정교하고 납득 가능한 세계관을 구축해야 하는 상업영화, 시각적인 유희 내지는 객관적인 정보 전달을 추구해야 하는 매스미디어의 영상물이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영상예술의 ‘대안적 시도’란  그 테두리 바깥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실험하는 자세다. 그렇다면 네마프의 궁극적인 목표를 누군가가 묻는다면, '기존의 어법과 의식으로는 논할 수 없었던 낯섦을 발굴하는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 것이다. 

 

 


‘안전한, 신체의 확장’



네마프의 올해 주제는 ‘안전한, 신체의 확장’이다. 주최측은 “기술 발달로 많은 이들이 신체의 확장에 대한 기대와 환희에 찬 전망을 내놓지만, 그와 반대되는 방향으로도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현실 인식에서 출발했다.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메타버스, AR/VR/MR, 로봇, 드론 등 디지털 기술이 가져다 주는 인간의 확장과, 동시대 전쟁에서 쓰인 드론과 첨단무기가 보여준 과학기술 문명이 제공하는 풍요와 편안함과의 간극에 주목하면서, 네마프2023은 ‘안전한, 신체의 확장’에서 확장이 아닌 ‘안전한’에 대한 의미를 대안영상예술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네마프2023은 8월 10일부터 22일까지 12일간 KT&G 상상마당 홍대 시네마, 갤러리에서 개최된다. 시네-미디어 큐레이텅 포럼과 대안영상예술 선정프로그램, 네마프 미디어아트 포럼과 네마프 랩 등의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개막작으로는 체르노빌 지역에서 일어난 러시아의 전쟁 범죄를 다룬 우크라이나 영화, 올렉시 라딘스키 감독의 <체르노빌 22(Chornobyl 22, 2023년작)>가 선정됐다. 이를 비롯해 40여개국의 작품 82편이 상영 및 전시된다. 나는 지난 8월 14일, 원태웅 감독의 <유니버스>와 <플레이되는 몸/이미지/기술-이은희 작가전>을 관람하기 위해 KT&G 상상마당을 찾았다. 


 

 

유니버스 - 원태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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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S NOTE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오래된 기억이 불쑥 찾아올 때가 있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유니버스 백화점 또한 어느 날 불현듯 찾아왔다. 백화점에 대한 기억은 아득하기만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금 이 순간 같은 시공간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기도 하다. 아득함과 생생함. 서로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두 간극 사이에는 미묘한 감정이 뒤엉켜있다. 이 감정의 근원은 유년 시절의 장소들에 있고, 이제 그 장소들을 통해 아득함과 생생함의 거리를 좁혀보려 한다. 그 시도의 출발선상에 유니버스 백화점이 있다.”

 

 

인생 최초의 기억을 정확하게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기억은 객관적인 사실처럼 보여도 실은 온전한 형태로 과거를 재생할 수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과거에 목격한 장면은 점차 흐려지고, 당시뿐만 아니라 현재에 덧입혀지는 주관적인 관념이 그 위를 가리면서 실체의 본질은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다. 그래서 옛 기억, 나아가 가장 최초의 기억이라면 보통 아득하고 몽롱한 심연 속에 가라앉아 있다.


대안영상예술 선정프로그램 장편 부문에 선정된 <유니버스(2022)>의 주인공 원태웅 감독에게도 그런 기억이 있다. 바로 어릴 적 ‘유니버스 백화점’ 앞의 놀이기구 안에서 바라본 우주의 전경이다. 당시 바라본 광경은 유년기를 보냈던 장소들과 결합되어 지금까지도 꿈속에 등장할 정도로 그의 뇌리에 깊숙히 새겨져 있다. 별들이 점점이 반짝이던 광활한 하늘, 이 기억의 파편만 간직한 그는 이 우주의 근원을 파헤치기로 결심한다. 


1980년대 천호동에 지어진 유니버스 백화점은 3년을 넘기지 못하고 부도가 났다. 그 자리에 코오롱 상가가 들어섰지만 그마저도 재개발로 철거가 결정됐다. 이곳의 역사를 기록한 아카이브도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그가 기억의 실체에 접근하기 위해 의존할 수 있는 것은 백화점의 존재를 기억하는 사람들과의 인터뷰, 그리고 무의식 속의 기억을 불러낼 수 있는 최면술뿐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유니버스>는 원태웅 감독이 최초의 기억을 되살려내기 위해 거치는 과정들을 재구성한다.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빌렸기 때문에 사실적인 기록 위주로 흐름이 전개된다. 그래서 때로는 한국 근현대사의 아카이브처럼 느껴지기도, 때로는 감독의 자전적인 경험담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끝에 마주하고자 하는 것이 다름아닌 ‘어릴 적의 추억’이라는 점, 그리고 계속해서 꿈결처럼 등장하는 ‘우주’라는 소재가 그 추적의 과정을 낭만적인 여정으로 승화시킨다. 


이 영화가 지닌 예술성은 영화의 어조를 표면상으로만 살폈을 때는 쉽게 알아챌 수 없다. 하지만 인터뷰와 최면술이라는 두 접근법부터가 사실은 이성과 비논리의 양극단을 오간다. 모호한 결말을 취하는 자세도 다큐멘터리라는 표면상의 형식과는 대조된다. 이렇듯 어법이 됐든 형식이 됐든, 객관성과 주관성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는 점이 이 영화의 매력이다. ‘다큐멘터리’도 ‘영화’도 아닌 ‘다큐멘터리 영화’라서 가능한 시도일까. 


하지만 최면술로도 이미 의식에 남아있는 기억 이상의 정보는 알아낼 수 없다. 사람들 또한 백화점에 대해서는 세세히 기억하지만 놀이기구에 대해서는 서로 다르게 진술한다. 우리는 영화를 감상하면서 결말부에 놀이기구의 구체적인 생김새나 운행 방식 등의 진실이 밝혀지기를 기대하지만 놀이기구의 실체는 끝내 밝혀지지 못한다. 우리 앞에 남겨진 것은 형체 없는 흐릿함뿐이다.

 

분명 어릴 적의 추억과 똑바로 마주서고 싶다는 의욕으로 시작된 기획이다. 하지만 방점을 찍히는 곳은 명백한 결말이 아닌 추적의 과정이다. 최면술을 통한 감독의 진술이나 주민들의 답변에서는 1980년대의 사회적 분위기 등의 사실 정보가 각 개인의 사적인 경험에 힘입어 생생하게 소환된다. 그렇게 한 명 한 명이 기억하는 사소한 사건들을 수집해 완성한 발자취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러한 분투 끝에도 최초의 기억을 생생하게 되살려낼 수 없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문학적인 여운을 남긴다.


 

 

플레이되는 몸/이미지/기술-이은희 작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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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네마프에서는 ‘시네-미디어 큐레이팅 포럼’을 새롭게 선보인다. 올해의 대주제 ‘안전한, 신체의 확장’을 두고 6명의 기획자들이 기획한 영상문화 프로그램을 발표하는 자리다. 그중 정세라 디렉터가 기획한 ‘플레이되는 몸/이미지/기술-이은희 작가전’은 <이족보행을 위한 몇 가지 전제들>, <블러드 캔 비 베리 배드>, <컨트라스트 오브 유>, <핫/스턱/데드> 순으로 네 작품을 상영한다. 이은희는 기술 환경을 주된 관심사로 삼고 그를 둘러싼 개인과 이미지의 관계를 영상으로 고찰하는 시각예술가로, 대부분 미술관 전시로 이름을 알려왔지만 이번 행사에서는 이례적으로 시네마 스크린을 통해 작품을 선보인다. 


<이족보행을 위한 몇 가지 전제들>은 걷는다는 행위를 둘러싼 정상성과 비정상성의 경계에 대해 고찰한다. 이 작품은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안팎을 오가며 촬영한 영상을 좌우로 나란히 구성한 2채널 작품으로, 이번 전시에서는 시네마 환경을 고려해 1채널 편집본으로 상영된다. 걸음걸이와 함께 나레이터의 음성이 장애등급 판정 문항이나 인지기능장애 평가 도구의 문항을 읊는다. 그 내용들은 과연 이족보행의 조건, 나아가 정상성의 조건이 객관적으로 수치화될 수 있는지 의문을 남긴다.


<블러드 캔 비 베리 배드>는 신체의 결함을 외부로 드러내는 CT촬영을 소재로 삼는다. 가족 구성원의 투병기를 병치함으로써 생명의 위기를 기계적으로 밝혀내는 의료 기술의 잔혹함에 주목한다. 그 외에도 거울을 활용해 마비된 팔의 감각을 되살리는 실험 등의 사례들을 보여준다. 신체의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기술이 개입되는 시도들에 초점을 맞추고, 물리적인 육체와 유령 같은 데이터 이미지 사이의 관계를 논한다. 


<컨트라스트 오브 유>는 신체의 특성이 디지털 정보로 변환될 때 대두되었던 차별의 사례들을 수집한다. 구글 포토가 흑인의 사진에 임의로 ‘고릴라’라는 태그를 달거나, 동양인의 증명사진이 ‘대상의 눈이 감겨 있다’는 이유로 시스템상에서 자꾸 반려되거나, HP 컴퓨터에 내장된 얼굴인식 프로그램이 백인 여성의 얼굴은 인식하는 반면 흑인 남성의 얼굴은 인식하지 못하는 등의 사건들을 소개한다. 


<핫/스턱/데드>는 비물질적인 것처럼 보이는 영상 이미지들 역시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작가는 광화문 인근을 걷던 중 옥외 대형 스크린의 수리 현장에서 화면 한가운데의 패널에 튀어나와 있는 사람의 손을 보게 된다. 이때의 영감으로 시작된 이 작품의 제목은 디스플레이 기기의 화면 픽셀상의 결함을 칭하는 단어다. 작품에는 액정 제조업 종사자들과 카이스트 연구자들이 등장해 액정 스크린의 작동원리나 고장의 이유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한다. 

 

 

 

다시 대주제로 돌아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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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신체 능력의 한계를 산산조각냈다. 그러나 기술 발전이 열어젖힌 신세계에는 아직 감당할 수 없는 사각지대와 허점이 난무했다. 신체 확장의 무한한 가능성 앞에서 이제는 ‘안전함’을 논해야 할 시대가 닥쳐 버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드론 등의 첨단 무기가 합류한 21세기형 전쟁의 파급력을 가시화했다. 인공지능 기반의 서비스들은 편의를 가져다주었지만 동시에 윤리적인 쟁점을 낳았다. 고도화된 기계 설비들이 인간들이 제공했던 서비스를 대신하면서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소외층이 생겨났다.

 

인간의 손으로 탄생한 기술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멋대로 증식하고, 심지어는 인간의 힘을 압도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자기반성의 통찰 끝에는 모든 책임이 인간의 손에 있었음이 너무나도 명확해진다. 이은희 작가가 질문하듯, 허공을 맴도는 무형의 기술일지라도 그 근원에는 대부분 물리적이고 때로는 노동집약적인 과정들이 숨어있다. 기술이 세상에 도입되는 순간에도 우리에게는 그 힘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이 분명 있다. 그러나 올해 네마프가 던지는 주제, 즉 '안전한' 방법에 상대적으로 무심했을 뿐이다. 

 

사물이든 사건이든 그 어떤 무엇도 완전히 명료한 방식으로만 설명될 수 없다. 때로는 이성적이지 못한 방법들만이 미세한 틈을 메울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모든 프로세스는 효율만을 바짝 뒤쫓는다. 하지만 정작 깊은 주의를 필요로 하는 것은 그 쪽이 아니다. 기계나 로봇이 아닌, 우리 인간만이 감각할 수 있는 영역에 눈을 돌려야 한다. 숨을 고르고 현재의 삶을 찬찬히 되살피며, 논리적인 어휘로 통역될 수 없는 미묘한 영역을 남겨두는 것이 너무나 절실한 세상이다. 마치 <유니버스>의 결말처럼 말이다. 이렇게 긴박한 이슈 앞에서 논의의 장을 마련하는 것마저도 예술의 몫, 심지어는 '대안' 예술의 몫이라는 현실이 씁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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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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