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비현실성 속에 녹아든 리얼리즘, 그녀의 취미생활

글 입력 2023.08.21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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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취미생활?

 

다소 B급스러운 제목에 화려한 표지라 처음에는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덧붙여져 있는 "워맨스릴러"라는 표현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 같다.

 

정말정말 바쁜 와중에 시간을 쪼개서 영화를 보러 갔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도 꽤 호평을 받았던 만큼 잔뜩 기대하고 있었던 작품이다. 커다란 설렘을 안고 영화관에 입장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꽤 만족스러운 관람이었던 것으로.

 

그녀의 취미생활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폐쇄적인 시골 마을에서 펼쳐지는 두 여성의 우아한 복수극? 정도? 같은 여성으로서 그들에게 동화되기도 하며, 응원을 하기도 하며 영화를 보는 내내 두 여성의 호흡에 온전히 흡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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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남편과 이혼한 박하마을 출신 젊은 여성 정인이, 멍이 든 얼굴로 귀촌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남편과의 연을 끊었다고 해서 정인의 삶이 순탄해지지는 않는다. 함께하던 할머니가 바로 돌아가시고 정인이 혼자가 되자 박하마을 사람들은 끊임없이 다양한 방법으로 정인을 괴롭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정인이가 안쓰러웠고, 한편으로는 답답하기도 했다.

 

그런 정인에게 유일한 치유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이방인 혜정뿐이다. 정체불명의 언니 혜정의 등장으로 정인의 삶은 은근히, 그리고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한다.

 

두 배우의 호흡이 상당히 인상 깊으니, 영화를 통해 직접 확인하기를 바란다. 처음에는 거리감이 느껴지다가 이내 완전히 동화되는 모습이 정말 인상 깊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실제로 배우들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영화를 촬영했다고 한다.

 

혜나 배우가 덧붙이기를, 감독님의 배려로 씬을 막 교차하며 찍지 않고 순차적으로 촬영했다고 덧붙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둘 사이의 어색함이 허물며 친해지는 과정이 영화 속에 그대로 녹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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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는 내내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아래와 위를 나누는 구도, 두 번째는 조명이다.


영화에서는 윗집 혜정이 아랫집 정인을 내려다보는 장면이 자주 등장했고, 정인은 혜정을 위로 바라보는 장면이 많았다. 두 여성의 연대 사이에 어떠한 위계가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혜정은 정인의 우상인 것일까? 두 여성이 함께 마지막 복수를 시행할 때는 또 눈높이가 맞았고, 위에서 아래로 굴러떨어진 남성에게 총을 겨눴다.

 

이때는 그렇다면 그러한 위계가 사라진 온전한 합일이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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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해서 GV 시간에 아래와 위를 나누는 구도에 대해 질문을 하였더니, 감독님께서 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주셨다.

 

사실 윗집과 아랫집 레퍼런스 찾는 것이 힘들어 모두 다른 지역에서 촬영된 것이라고! 아주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어 영화를 볼 때는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편집으로 이어 붙은 것이라고 한다. 촬영 과정도 편집 과정도 정말 힘들었겠다. 공이 많이 들어간 게 확연히 느껴지는 구도였다.

 

배우들도 서로 시선을 맞추며 연기할 수 없었기에 초점을 어디에다 둬야 하는지가 항상 어려웠다고! 하기야 그렇게 시골스러운 집과 호화스러운 집이 한데 있을 리가.


다음으로 인상 깊은 장면은 "비현실성"이었다. 실제 왓챠 리뷰에서도 핍진성이 결여되어 있어 아쉽다는 리뷰가 있었는데, 나 역시도 영화를 볼 때는 그런 비현실성이 너무 영화스럽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는 그런 영화스러운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GV에서 감독님의 해설을 들으니 그러한 비현실성이 반드시 필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화 속 정인은 귀촌 후에 자신을 둘러싼 악인을 하나둘씩 제거해 나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자신을 가장 괴롭혔던 전 남편을 처벌한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 사실 이 질문은 매우 비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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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하는 상황, 그리고 그 상황을 둘러싼 비현실성. 먼저 혜정이 중국집 배달원을 응징한 장면부터 이야기해 보고 싶다.

 

그날 밤의 장면이 상당히 인상 깊다. 상황과는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웅장한 비지엠, 강한 푸른 조명, 떨리는 혜정의 눈동자까지 솔직히 모두 아름다웠다.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거사를 앞둔 한밤중의 달빛이 그렇게 로맨틱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을 치르고 돌아왔을 때 혜정을 주목한 강한 붉은 조명. 돌아와서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까지 정말이지 너무 영화스럽기는 했다. 현실에서는 있을 것 같지 않은 장면의 연속들.

  

정인과 혜정이 함께 손잡았을 때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인아, 우리는 지금 꿈을 꾸는 거야."와 같은 대사에서부터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꿈과 현실을 오가는 형태의 움직임들, 옷차림, 그리고 고풍스러운 소품들까지 영화 전반적인 핍진성을 떨어트리는 요소로 작용했다.

 

그런데 이 모든 비현실적인 요소는 결국, 이러한 복수극이 비현실적임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지독한 리얼리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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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단순히 남성을 처벌하고 응징하는 것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는 현실의 많은 여성들은 피할 수 없는 주변의 괴롭힘 속에서 시달리고 있다.

 

혼인 후에 다른 가정에 속하게 될 때 특히 그렇다. 가정 폭력, 시가의 진득한 괴롭힘과 같은 이슈는 여성들에게 늘 따라붙는 꼬리표와도 같다. 그런 여성들에게도 자신의 소리를 내는 기회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또는 강요받았던 사회적인 편견으로 인해, 우리 여성들은 쉬이 그런 목소리를 낼 수 없다.

 

그래서인지 더욱 복잡한 감정이 한데 몰려오는 것 같았다.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온전히 전달되는 것이 한 폭의 응원이 되기도, 또 한줌의 씁쓸함이 되기도 했다.

 

주체적으로 자신의 뜻을 풀어나가기 힘들어하는 많은 세대의 여성들이, 이 영화를 보고 위로받기를 바란다.

 

힐링 복수극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게 된 영화였던 것으로. 간만에 정말 재미있는 영화를 보아서 기분이 좋다. 꼭 관람해 보시기를.

 

 

[신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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