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브라이스 마든, 세상을 떠나다 [사람]

글 입력 2023.08.17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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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스 마든이라는 작가를 알게 된 건 불과 몇 달 전 일이었다. 어떤 예술계 인물이 인터뷰를 하는데, 뒤에 걸린 작품 속 구불거리는 선의 움직임이 경쾌해보였다. 예전부터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은 이 작품 정보를 찾아보니 처음 듣는 이름의 미국 작가였던 것이다.

 

그러다 지난 주 그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직접 만나본 것도 아닌데 안지 얼마 되지 않은 작가가 세상을 떠났다고 하니 아쉽고 헛헛하다. 나를 훑고가는 시각 예술은 너무나 많은 색깔과 자극들로 가득해 기억에 남는 작가와 작품은 드물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마든은 미니멀리스트로 분류되지만 추상 표현주의 작가이기도 하다. 1938년에 태어났고 Yale School of Art에서 순수미술 석사학위 과정에서 Alex Katz 아래에서 Richard Serra, Chuck Close, Robert Mangold 등과 함께 수학했다. 1963년 뉴욕으로 이주한 그는 유대인 박물관에서 경비로 근무하게 되는데, 그 다음 해 재스퍼 존스의 전시를 보며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고 회상한다. 1966년에는 로버트 라우셴버그 작업실의 조수로 고용되었으며 이 영향으로 그의 60년대 작품들은 라우셴버그의 작업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70년대에는 그리스를 여행하며 새로운 새고가 재료를 이용해 색다른 스타일의 작품을 시도한다. 여행에서의 영감은 그의 인생 전반에 계속해서 긍정적으로 개입한다. 그는 평생 동안 이탈리아, 프랑스 등의 유럽을 비롯해 태국, 스리랑카, 인도 등 아시아 지역도 즐겨 여행했다. 노년의 마든 부부는 전세계에 총 6곳의 거처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여기에는 모로코의 마라케시와 카리브해 지역의 Nevis라는 섬에 있는 부동산도 포함되어 있었다.

 

1970년도에는 그의 커리어가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1972년에는 카셀의 Documenta 5에서 작품을 선보였고, 1975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회고전을 가졌다. 1984년에는 중국을 여행하면서 처음으로 서예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구불거리는 선들이 이 시기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다. 흑백이나 단색에서 변주를 주는 그의 기존 스타일은 유지한 채, 평면 위에서 흔들리는 곡선들은 관객들에게 신비로운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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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가고시안 갤러리

 

 

마든은 2017년 가고시안의 전속 작가가 되었다. 90년대부터 가고시안에서 전시를 가졌으나, 그가 공식적으로 갤러리의 전속 작가가 된 것은 2017년이며, 그 해 작가는 암 진단을 받고 투병 생활을 시작한다. 작가는 암에 대해 특별히 힘든 것은 없으며, 그저 생각해야 할 것이 조금 더 많아졌을 뿐이라는 말을 2019년 뉴욕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남겼다.

 

래리 가고시안은 저돌적이고 고집 센 성격의 갤러리스트로 알려져 있지만,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래리를 의리 있는 사람이라고 입을 모은다. 2019년 가고시안은 이탈리아의 카프리 섬에 있는 유명한 저택 Villa Malaparte에서 마든을 위한 하루짜리 전시 겸 디너를 개최한다. 이 화려한 행사에는 농구 선수인 르브론 제임스, 제작자 지미 아이오빈, 그리고 메가 컬렉터인 스티브 코헨 등 내로라하는 유명 인사들이 참석했으며, 전시된 작품들은 완판되었다.

 

지난 주 그의 부고를 전하며 가고시안 갤러리는 '마든은 자신이 쓰는 재료가 주는 즐거움과 서정성에 대한 통찰력을 가진 보기 드문 화가'라는 표현을 썼다. 작가의 노년기 작품을 보면 투병 생활의 고단함보다는 신선한 생명력과 기쁨이 느껴진다. 그가 본디 가지고 있던 삶에 대한 탐험의 자세가 가고시안이라는 갤러리스트를 만나 마지막 순간까지 불태워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쳤다.

 

예술가의 삶에서 내가 늘 흥미롭게 생각하는 부분은 몇 십 년에 걸친 시간 동안 유지되고 전복되는 인간관계이다. 예술가들은 같은 시대를 살았던 평론가, 화랑, 동료 작가들과 끊임없이 교류하며 평판이 만들어지고 명예를 얻기도, 잃기도 한다. 지난주 다녀온 마티스의 전시에서는 평생 그의 작품을 출판하는 데에 힘써온 테리아드라는 비평가의 존재를 알게 되어 뜻깊었다.

 

브라이스 마든의 생동감 넘치는 굵은 선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는 죽음 이후에 다른 세계에서도 분명 그의 여정을 이어가고 있을 것만 같다.

 

 

[강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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