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풍요와 고요, 그리고 쾌감 - 앙리 마티스, Love & Jazz [전시]

글 입력 2023.08.16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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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마티스 LOVE & JAZZ는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들 중 드로잉, 판화, 컷아웃 등에 초점을 맞춘 전시이다. 책으로든, 영화로든, 국내외 미술관에서든 그의 원화는 자주 접했어도 드로잉이나 에디션 작품들은 한 번에 모아서 볼 기회가 많이 없었기에 이번 전시가 더욱 반가웠다.

 

 

마티스 메인포스터_벡터ver..jpg

 

 

마티스의 작품을 보면 풍요로움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 보기 좋게 살이 올라있는 여인들은 보드랍고 유연한 춤을 춘다. 사람들은 가벼운 움직임으로 공간을 유영한다. 이러한 그림을 그린 마티스의 성격 또한 동그랗고 낙천적이었을 것이란 짐작을 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그래서인지 전시에는 유독 다른 예술가들과의 교류와, 그들이 마티스에 대해 남긴 말들이 많았다. 작품 그 자체보다도 한 사람을 둘러싼 예술 세계가 어떻게 잉태되는지에 관심이 많은 나는 마티스의 인간관계에 중점을 두며 전시를 관람했다. 그가 살던 시간과, 그 이전과, 그 이후의 세대와도 계속해서 연결되며 영원히 살아 숨 쉬는 그의 예술 세계를 들여다보고 왔다.

 

 

2-5. 베르브 제1호.jpg

 

 

잡지 <베르브>의 에디터이자 미술 평론가인 테리아드와 마티스는 오랫동안 두터운 우정을 유지했다. 테리아드는 그리스 태생으로 10대 후반에 프랑스로 이주했으며, 테리아드라는 이름은 그리스 본명을 프랑스어 발음으로 표기한 필명이다. 그는 약 50년간 프랑스의 예술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테리아드는 1929년 처음 마티스에 대한 글을 쓴 이후 마티스와 25년간 친구 관계를 지속한다. 1937년 베르브의 창간호 표지에는 마티스의 석판화가 실렸다. 당대 최고의 문인들과 예술가들의 작품이 실린 베르브는 20세기 파리의 혁신적인 예술 비평지였다고 한다.

 

1947년 출판된 Jazz 또한 마찬가지로 테리아드가 발행한 도서이다. 한정된 수량으로 만들어진 이 책은 마티스의 컷아웃 프린트와 작가 노트 등을 담은 일종의 아트북이었다. 마티스가 74세였던 1941년, 복부암을 진단받고 병상에서 작업하기 시작한 이 컷아웃은 서커스나 공연을 주제로 한 작업들로, 원래는 베르브에 실릴 계획이었다. 그런데 테리아드는 컷아웃 작품 20점을 묶어 Jazz라는 별도의 인쇄물로 출판했다. 마티스는 이 제목을 아주 흡족해했는데, 예술과 음악의 즉흥성의 관계를 잘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2-8. 결정적 순간.jpg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초기 작품을 모아둔 사진집 <결정적 순간>의 표지도 마티스의 석판화가 장식했다. 테리아드의 도움과 설득 덕에 가능해진 이 프로젝트는 뉴욕의 출판사인 '사이먼 앤 슈스터'와 베르브가 1952년 공동 출판하게 된다. 곡선이 돋보이는 풀이나 해초의 모양을 한 색종이들이 경쾌하게 움직이는 표지는 세월의 때가 묻어있다.

 

마티스가 사망한 해인 1954년, 테리아드는 <베르브 제 35/36호>를 작가의 노년기 작업들에 대한 헌정으로 제작함으로써 세상을 떠난 친구이자 동료 예술가에 대한 예우를 다했다.

 

한편, 1947년 프랑스에서는 보들레르의 '악의 꽃' 출판 90년을 기념해 새로운 버전의 '악의 꽃'이 인쇄되었는데, 이 책의 표지와 삽화를 마티스가 맡았다. 33개의 시에 어울리는 서른 세 점의 초상화들은 각자 한 페이지씩을 가득 채우며 시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의 드로잉들은 모두 간결하고 유려하다. 보들레르의 시가 함축하고 있는 여러 층의 감정을 단순하지만 힘 있는 선에 담았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보들레르의 시구가 하나 있다. '그곳에는 오직 질서와 아름다움, 풍요와 고요 그리고 쾌감뿐'이라는 이 구절은 환상 속의 여행지를 상상하며 쓰여진 문장이다. 마티스의 작품을 보며 '풍요와 고요'라는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는데, 마티스에 관해 리서치를 하다 보니 실제로 그의 작품 중 '풍요와 고요 그리고 쾌감(Luxe, Calme et Volupte)'이라는 제목을 가진 작품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마티스의 작품 '춤'에서는 벌거벗은 사람 다섯이 서로 손을 맞잡고 원을 그리며 돈다. 단순한 움직임과 색채만으로 공간을 유영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표현한 이 작품에 대해 마티스는 '세 가지 색이면 충분하다. 하늘을 칠할 파란색, 인물을 칠할 붉은색, 그리고 동산을 칠할 초록색이면 충분하다. 사상과 섬세한 감수성을 단순화시킴으로 우리는 고요를 추구할 수 있다. 내가 추구하는 유일한 이상은 조화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풍부한 감정과 색을 최대한 간결하게 묘사함으로써 풍요 속의 고요를 실천한 것이다.

 

전시의 막바지에서 르 코르뷔지에가 방스에 있는 로사리오 성당을 방문한 후 마티스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이 전시되어 있었다. "저는 방스에 있는 성당을 보러 갔습니다. 그것은 기쁨이었고, 명료함이었고, 젊음이었습니다. (중략) 삶이 아름답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준 당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정말로 고맙습니다."

 

과연 마티스의 그림은 생명력이었고, 행복에 몸을 맡기는 음악이었으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잇는 선이었다. 그의 온기 넘치는 연필과 펜자국을 따라 내 마음도 함께 춤췄다.

 

 

[강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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