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짐승 이야기가 아닙니다 - 이숲우화, 짐승의 세계

글 입력 2023.08.19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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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짐승 이야기가 아니고, 짐승 이야기이다.


짐승들은 이숲에 살고 있다. 짐승들이 곧 우리들이고, 이숲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다. 그러니까 <이숲우화>는 짐승들의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강력한 공감과 교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극이 흥미로운 지점이다. “우리 살아가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이야기들은 얼마든지 많고 다양하잖아!” 하지만, <이숲우화>는 우리 이야기가 아니라 짐승 이야기라니까요! 근데 우리 이야기라고요!


내가 써본 문장이지만 참 알쏭달쏭하다. 연극 리플렛에서 볼 수 있던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라는 문구는 연극 내용과 참 잘 어울렸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또 조금 알 것 같다. 그래서 마음이 뭉클해지기도 하고, 깔깔 웃으면서 공감하기도 하고, 문득 덮어두었던 기억들이, 관계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본래 이솝이 쓴 우화는 짧은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지어졌는데, <이숲우화>는 연극을 보는 각자에게 그 의미가 각기 다를 것 같다. 이야기는 크게 5개의 파트로 진행된다.

 

이솝의 등장 이후에 전개되는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 개미와 배짱이, 그리고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는 기존의 이야기를 어떻게 바꾸었는가에 집중하기보다는 이 동물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새로운가, 얼마만큼 솔직한가가 중점인 듯하다. 여우는 왜 두루미를 만나서 자신의 생활 방식을 알려주고자 했는지, 베짱이는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토끼와 거북이는 왜 상대방과 진솔한 대화를 할 수 없었는지.


여우와 두루미의 이야기는 익숙하지 않은 사랑의 모습들을 발견하게 한다. 두 동물 사이의 장벽을 뛰어넘은 관계는 어쩔 수 없이 한계를 맞이하게 되는데, 한계점 앞에서 여우는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두루미에게 언성을 높이기도 한다. 좋았던 때가 지난 사랑 앞에서 우리는 어떤 모습일 수 있을까?


아름다움을 갈망하는 베짱이는 문득 나타난 미의 여신의 언사에 홀려 알지도 못하는 계약서에 냉큼 서명하고 만다. 그 뒤 베짱이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베짱이는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나? 베짱이는 왜 아름다움을 쟁취하고자 했던 것일까? 무엇을 위해서 베짱이는 그런 선택을 했던 걸까?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에서는 관객만이 두 짐승의 진솔한 이야기, 속내를 들을 수 있다. 어쩜 저렇게 시원하게 말하지! 저렇게 속 시원하게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지! 하지만 정작 제일 중요한 대상인 서로에게는 한마디도 하지 못한다. 사람과 사람 간의 대화란 어떠해야 하는 걸까?


이솝의 이야기, 그리고 기존의 이솝 우화를 각색한 파트가 끝나면 까마귀들이 무대 위를 찾아온다. ‘달에 간 까마귀’는 ‘달에 간 까마귀’라는 제목의 연극을 준비하는 연출과 두 배우의 이야기이다. 마치 이 <이숲우화> 자체를 준비하는 듯한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듯하기도 하고, 어디까지가 연기이고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혼돈을 주기도 한다.

 

‘까악, 까악!’ 같은 까마귀의 언어로만 내용 전달을 원하는 연출과 배우들 간의 의견 충돌은 예상하지 못한 흐름으로 극을 끌고 가다가, 결국 관객 모두에게 ‘까악’의 의미를 전달한다.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유머 코드가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어느 시절의 기억, 또는 타인의 조언을 상기해 주는 울음소리가 되기도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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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 간 까마귀’ 이야기를 볼 때는 유독 연극 제작에 참여하던 때가 떠올랐다. 아무래도 개인의 경험이 있어서였겠지만, 까마귀 이야기뿐만 아니라 <이숲우화> 전체가 오늘날 빌딩 숲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한 단면들을, 한 시점의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어서 계속해서 누군가의 모습, 또는 나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위해 쓰였다. 꼭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어서, 우리는 무대 위 짐승들을 보면서 자꾸만 자기 모습 또는 다른 누군가를 떠올리게 된다. 연극이 끝나고 오묘한 기분이 드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여우, 두루미, 개미, 배짱이, 토끼, 거북이, 그리고 까마귀들이 우리와 닮았다.


그래서 이 짐승 이야기는 내 얘기이기도 하고 당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홍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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