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생애의 표상, '모차르트 평전' [도서]

글 입력 2023.08.14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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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없는 삶은 오류다.“ - 니체



사람과 음악 사이에는 어떠한 틈도 없다. 태어나서부터 인간은 일정한 종류의 음을 들어왔고, 아무 연관도 없는 이것들을 섞고 배치하여 음악을 만들게 되었으며, 음악을 감정의 대용으로 쓰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음악 자체는 곧 우리의 일상이기 마련이다.


음을 인지하여, 음악을 만들고, 음악으로 웃고 우는 생명체는 오로지 인간뿐이다. 단지 그중에서도 더 뛰어난 음악가가 있을 뿐. 하지만 때로 나는 이들이 꼭 우리와는 다른 종족 같다. 유난히 청각과 음감이 뛰어나게 발달한, 나와는 다른 생명체. 그들을 경외하지만, 동시에 묘한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모차르트는 단언컨대 우리가 가장 잘 아는 음악가일 테다. 우리는 그의 음악을 안다. 그의 작곡 실력을 알고, 그의 연주를 들으면 가슴 속에서 피어나는 무엇인가를 느낀다. 위대한 산물로 자리 잡은 교향곡, 오페라, 소나타 등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기억되어 왔고 기억될 것이다.


그러나 정작 모차르트가 어떤 사람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예를 들어 그의 음악은 천재성인지 알고 보니 아버지 표 조기교육의 노력 때문인지, <돈 조반니> 오페라를 만들었을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마음속에 사랑을 간직하는 사람이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그의 인간적 특성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는 그저 우리 사이를 떠다니는 음악적 허상으로 자리잡는다.

 

 

모차르트 평전 평면 표지 정면.jpg

 

 

그러므로 모차르트 평전을 손에 쥔 목적은 도전이다. 알지 못하는 것을 끝내 이해하게 됐을 때 눈은 빛나고 머릿속에선 별빛이 터진다. 그에 대해 알지 못 하는 이 간극이 유일한 오류라면, 나와는 다른 사람이자 생명체라고 여기는 주된 이유라면 808쪽이나 되는 이 책을 읽어서라도 나는 그를 내 곁의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의 음악을 들을 때 머리끝까지 간질이는 감각을 타인의 것으로 두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을 억측하기는 쉬워도 그 사람을 끊임없이 바라보고 계속해서 생각하고 애정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어렵다는 걸 잘 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에게도 모차르트 평전은 도전이다. 음악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철학을 전공한 저자 그의 삶을 거부하지 않으려는 도전이었다. 그의 글솜씨는 탁월하다. 사람들이 궁금해할 만한 것, 모르고 있는 것, 알고 싶어 하는 것을 모두 아는 사람 같다. 이러한 경지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오랜 기간 동안 많은 양의 다정함으로 모차르트를 찬미하며 온 세상에 알릴 궁리를 하였을까?


 

“모차르트의 음악은 거울과도 같다. 그의 음악을 듣는 사람은 모차르트가 아니라 그 음악에 비친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 일쑤다.” - 20p

 

 

 

모차르트에 투사된 영혼들


 

돈 때문에 음악을 포기했었다. 학문으로서의 예체능은 워낙 돈이 많이 들어가기로 유명하기도 하고, 그만큼은 유복하지 않은 집이 나 때문에 망가질까 봐, 그로 인해 나까지 무너져 내릴까 걱정했었다. 그리고 가장 큰 것은 그냥 내가 그만큼 천재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내 재능을 그다지 심각하고 진지하게 여기지 않았다. 모든 무형의 가치를 효율로 환산했을 때, 투자자의 관점에서 단순한 흥미는 이유로 채택되기 힘들다. 너무나도 쉽게 기화된다.


모차르트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당연히 그의 가치를 알고 있을 것 같았다. 한 번도 거절 당해본 적 없었을 것 같고 당연히 그에 따른 보수도 괜찮았으리라 생각했다. 수많은 넘겨짚기 오류로 그는 내 안에서 완벽한 존재로 인식되어 있었지만, 정작 그는 사망과 가장 가까운 35세쯤 가장 높은 보수를 받았다. 정확한 우상향 그래프였다.


지금 그는 교양의 대명사지만, 사실은 상업 음악의 시초이다. 여러 측면으로 그렇다. 일단 첫 번째는 노골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투어를 돌았다는 점이다. 개인 지도도 하고, 자기 음악의 가치를 알아주는 귀족들을 찾아 이 나라 저 나라를 돌아다녔다. <돈 조반니>조차도 존중받지 못하던 잘츠부르크를 떠나 프라하로 갔을 때 그는 마침내 자신을 이해받는 느낌이었다. 프라하에서는 두 번 공연했지만, 빈에서는 외면받았다.

 

또한 그는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면 누구든, 귀족뿐만 아니라 평민과 중산층을 위해서도 연주하는 상업성을 보였다. 그가 아버지께 쓴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담겨있다. “귀족과 평민 가리지 않고 1실링을 내고 입장한 몇천 명의 사람들이 행복하게 어우러집니다. 물론 음악을 들으려면 돈을 몇 푼 더 내야 하지만요.” -67p 그리고 자신은 그것이 좋다고 했다.


이는 P.463의 <피가로의 결혼> 에피소드에서도 두드러진다. ‘프랑스 대혁명은 <피가로의 결혼>에서 시작되었다’라는 말이 있다. 하인과 주인이 평등해지는 시대를 예고한 이 작품은 금서였던 원작을 각색해 만들어진다. 어쩌면 그가 만들어 낸 음악은 그저 일차적 쾌락으로서 기능하는 것이 아닌, 평등과 자유를 상징하고 불공평했던 권력 구조를 움직이게 하며, 이를 바꿀 만한 힘을 키워주는 무언가였을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지나치게 고귀하게 승화된 형태로 표현되는 음표들을 무례하게 청자에게 배설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랑이 가득하다고 볼 수도 있다.


 

마음이 없는 천재는 난센스다. 지성만으로, 상상력만으로 아니 두 가지를 다 합쳐도 천재를 만들 수 없다. 사랑, 오직 사랑만이 천재의 영혼이다! - 폰 자캥

 

 

 

사랑의 기쁨과 슬픔


 

책은 업적 순서대로가 아닌 시간 순서대로 흘러가기 때문에 그의 일생을 톺아볼 수 있다. 그의 사랑 또한 톺아본다. 참으로 사랑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여성에게도 그랬고, 친구이자 훌륭한 멘토임이 분명한 그의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 모두에게도, 자신에게 적대감을 표하지 않은 웬만한 사람에게 그랬다.

 

그렇지만 그는 가벼이 사랑을 여기지 않았다. 그는 사랑으로부터 파생된 긍정적이고 때로 부정적인 감정을 악장에 녹일 줄 알았다. P.243에서 나오는 A단조 소나타 K-310 에 대한 에피소드를 보면 알 수 있다. 난생처음 목도한 죽음이 어머니었던 그는, 슬픔을 녹여 만든 느린 악장에 적지 않은 기간의 회한과 애도, 우울감을 담았다. 자책감으로 눈물 흘린 채 모든 시작과 끝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적어 내린 음악은 담긴 선율로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책 속에서, 그리고 그의 생애에서 처음 적힌 죽음과 대응은 이렇다. 나는 그 사람이 처음 본 가장 슬픈 죽음에서부터, 그의 죽음도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이제 그와 나는 그의 삶도 죽음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희망으로 끝을 맺으며


 

이 책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다름 아닌 희망이다. 모차르트도 절망하고 어려운 시기가 있었다는 동질감, 내가 별난 사람과 별난 구석에서 위로를 얻은 것이 아니라 모차르트로 하여금 많은 이들이 희망을 얻었다는 위안, 차가운 현실에 무력히 누워 있는 게 아니라 헛되어 보이는 꿈을 꾸더라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게 옳은 것이라는 사실감.


여느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신과 사회 속에서 균형을 찾고, 이상과 현실 사이, 사랑하는 일과 그렇지 않은 것들에서 줄타기하며 한 팔, 때로는 양팔을 휘적이며 허공에서 춤추고 최대한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

 

음악은 즐거움과 위안인가, 고통인가. 그의 빠른 죽음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 신이 주신 재능인가, 재앙인가. 명명하지 않은 노력 속에 많은 슬픔, 약간의 즐거움, 그리고 몇 가지 참을 수 없는 일들로 이루어진 현실. 그리고 현실의 끝이 도래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평화로운, 상쾌한, 달콤한 꿈을 좇는 모차르트와 우리가 아름답다.


모차르트와 그의 삶을 둘러싼 그 시대의 지구별, 책과 악보 속의 인물이 아닌 진짜 사람이었던 그의 인간적 면모를 엿보고 싶다면 평전을 읽어 보자. 이 하나의 삶을 보는 것이 당신에게도 꽤 유의미한 도전이길 바란다.

 

 

 

컬쳐리스트 김하영 태그.jpg

 

 

[김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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