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한여름, 온몸의 소리가 말이 될때 소년은 성장한다 - 연극 '다른 여름'

글 입력 2023.08.13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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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 날에도 울어대는 매미를 안쓰럽게 생각한 적이 있다.

 

매미는 땅 깊은 속에서 말없이 허물을 벗어대다가, 한 달 동안 세차게 울어대다가 죽는다. 내게 매미는 7년 동안 죽음을 경험했고, 겨우 한 달 살아있다가 다시 죽는 존재다. 죽음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끼어있는 삶의 순간은 그래서 그가 울어대는 한여름처럼 맹렬하다. 그래서 그 찰나의 시간 동안 그는 자신이 살아있음을 울부짖나 보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위험한 일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때가 그가 유일하게 이 지상에서 살아있음을 입증하는 순간이니까.

 

연극 <다른 여름>에는 배우들이 매달릴 수 있는 철봉이 양쪽에 배치되어 있다. 네 명의 배우는 종종 이 철봉에 매달려 매미처럼 울어댄다. <다른 여름>에서도 매미는 중요한 소재로 작동한다. 주인공 고곽대는 형사와 이수희와 돌아가면서 매미는 말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매미는 맹렬하게 여름의 한중간에서 울어댈 뿐이니까 아무도 그 울음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형사와 이수희는 고곽대가 매달렸던 자리에 직접 매달려 보면서, 그의 언어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제야 그 맹렬한 울음은 사람의 말이 되고, 그 지나치게 뜨거웠던 여름도 지나간다.

 

땅 속 깊은 곳에서 허물을 벗으면서 말없이 보낸 시간을, 매미는 세상에 나오고 나서야 온몸을 떨면서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고곽대는 매미와 같다. 그는 역전이 될지, 패자가 될지 모르는 마지막 볼의 기회에서 공을 던지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오줌을 싸버리고 퇴장했다. 그 이후로 그는 햇빛과 자신의 얼굴을 가릴 검은 쓰레기 봉투로 자신의 얼굴을 가린다. 그 봉투를 가려주는 것은, 그가 만들어낸 또 다른 자아 '최고작'이다. 최고작은 진짜 자신인 고곽대를 '병신쪼다오줌싸개'라고 부르면서,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고곽대보다 한 살 어린 그는, 아직 실패하지 않은 자기 자신이다. 고곽대는 그의 자아 뒤에 숨으면서 자신의 고통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한다.

 

그런 고곽대를 지켜보는 것은 청소년 복지센터의 선생님인 이수희다. 그녀는 인간적이고 지혜로운 인물로, 한여름에 봉투를 뒤집어 쓰고 있는 고곽대를 약간 우려하는 것처럼 보인다. 고곽대는 그녀에게 물을 요청하지만, 수희는 그것이 말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들렸다. 수희는 그래서 고곽대의 말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런 고곽대는 검은 봉투를 쓰고, 저 너머에서 터진 공을 태우는 연기를 보면서 검은 새가 날아가는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검은 새는 수치스러운 경험으로 훼손되어버린 자신(터진 공)을 떠올리게 하는 하나의 상징물로 작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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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한 여름, 고곽대는 체육관을 방화한 용의자로 붙잡힌다. 형사는 그가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든 기억을 지우기 위해 방화를 저질렀다고 생각하면서, 자기 자신을 고곽대가 아니라 최고작이라고 이야기하는 고곽대를 거짓말쟁이라고 몰아세운다. 그는 심지어 체육관에 고곽대 혼자만 있었다는 형사의 말에 '고곽대 선배'라는 기묘한 제 3의 인물을 만들어내면서, 자신과 고곽대 선배가 같이 있었다는 생뚱맞은 소리를 한다.

 

둘 사이에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고, 이때 이수희가 나타나 고 곽대에게 '말'이 필요했음을 일깨워 준다. 오덕구 형사는 수희와 불탄 경기장을 다시 찾아 양쪽의 철봉에 매미처럼 매달려 고곽대의 내면의 목소리를 함께 재현한다. 그리고 수희에게 고 곽대에게 핸드볼 경기장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듣는다. 고곽대는 경기장을 끊임없는 역동이 일어나고, 상대를 속이는 '페인팅'이 작용하는, 승패가 존재하지만 공격도 수비만 있는 냉혹한 경기장이라고 묘사한다.

 

이런 복잡한 경기장에서 선수들을 움직이는 것은 울부짖나 보다 같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라고 묘사하는데, 이런 설명에서 주목할만한 것은 크게 세 가지로 보인다. 첫 번째, 그는 경기장을 수많은 주체의 우연과 전략이 교차하는 역동적인 공간으로 보았다. 그는 핸드볼 경기장에서 승리도, 패배도 하지 못하고 쓰레기 봉지를 둘러매고 고곽대라는 자기 자신의 self마저 잃어버렸다. 이런 자기 자신과 대조되는 경기장은, 그런 경기장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자기 자신에 대한 경멸과 그러한 역동성을 복원하고 되찾고 싶어하는 강한 열망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래서 그에게 경기장은 생생한 트라우마의 현장이자, 새로운 삶을 위한 기회다.

 

두 번째, 고곽대는 선수들을 움직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라고 보았다. 룰과 재치, 순간적인 상황에 대한 재치는 보이지 않지만 그 게임을 성립하고 지속하게 만든다. 지극히 현실적인 관점에서 고곽대의 말은 이해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내면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그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도출된다.

 

세 번째, 두 번째 이유와 이어지는 이야기고, 결국 오덕구 형사와 이수희의 인물이 고곽대라는 인물과 함께 만들어 나가는 핵심적인 부분이다. 고곽대는 오덕구와 이수희에게 페인팅을 사용하고 있다. 그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된 설명을 하는 대신, 가상의 인물들을 내세워 수사에 혼란을 준다. 하지만 페인팅이라는 기술이 성립할 수 있는 것은, 게임이라는 공간뿐이다. 그리고 게임은 게임이라는 룰을 받아들인 상대방 없이 할 수 없다.

 

이를 고곽대의 상황에 적용하면, 고곽대는 가짜 자기인 최고작과 고곽대 선물이라는 두 명의 인물을 만들어낼 만큼, 불안의 총체라고 상징되는 검은 까마귀에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그러한 트라우마에 맞설 수 없을 만큼 '병신쪼다오줌싸개'이지만, 동시에 생생한 경험의 현장인 경기장을 만끽하고 싶은 열망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는 이 트라우마를 경기장으로 끌어와, 마침내 그가 던지지 못했던 공을 던져 다시 살아있는 '고곽대'자기 자신이 되고 싶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그가 던진 공을 수비하고 자신에게 공을 던져줄 '상대편'이 필요하다. 그는 그것이 너무 간절하기 때문에, 형사를 게임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페인팅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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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수희와 오덕구 형사는 그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온몸으로 철봉에 매달려, 각자의 목소리를 재현함으로써 고곽대의 게임에 참여한다. 그들은 고곽대 선배와 최고작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상상한다. 병신같고 쪼다 같은 고곽대 선배는, 생각보다 여유롭고 온몸으로 최고작과 함께 게임을 해준다. 최고작이 너무나 그리워했던, 생생한 경험의 현장의 중심에 있는 자기 자신이 발견된다. 형사와 이수희가 그 사실을 발견하는 한편, 형사에게 체육관 방화는 자연발화라는 과학 수사대의 전보가 도착한다. 그들은 비로소 고곽대의 자아가 분열되고 그것들이 합쳐지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유한다. 그리고 이수희와 오덕구는 돌아가는 길에 고곽대가 함께 있었다는 '고곽대 선배'의 환상을 발견한다. 선배의 환상은 이전에 그들이 상상한 것과 다르게 약간 으스스하다. 그리고 그것을 고곽대와 나눈다. 고곽대는 비로소 정말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밝힌다.

 

이후로 이야기는 이수희와 오덕구의 이야기에서 하나의 한중간에서 드라마로 전개가 급변한다. 최고작도, 고곽도 선배도 아닌 진짜 고곽대는 검은 봉투가 아닌 검은 새 가면을 쓴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고곽대는, 검은 새가 사실은 자신과 열렬한 게임을 해주었던 고곽대 선배라는 것을 깨닫는다. 검은 새는 고곽대에게 "가능하냐"라고 묻는다. 여기서는 해석이 갈리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트라우마와 불안, 생생한 힘을 가진 자아를 훼손시키는 거대한 불안인 검은 새가 사실 자신의 트라우마를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여유로운-회피를 통해 만들어낸 연약한 자아인 최고작을 이끌어줄 정도로-멘토인 고곽대 선배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그 모든 것이 자기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한지 묻는 것 같았다.

 

약간 꺼드럭 거리는 검은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곽대는 혼란에 빠지지만 점차 받아들여 간다. 처음에는 비발디의 사계의 '봄'을 여름이라고 우겼지만, 정말로 '여름'이 흘러나온다. 맹렬한 바이올린 소리 속에서, 그는 자신이 내지르고 있는 이 뜨거운 여름의 공간을 인지한다. 그리고 그 공간은 자신에게는 끔찍한 트라우마의 장소였지만, 청춘의 중간, 가장 맹렬한 삶의 순간 중 하나였다.

 

그런 그에게 검은 새는 다시 한번 가능하냐,라고 묻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그 끔찍한 트라우마를 두려워하고(검은 새), 피하고 싶었음에도(최고작), 그것을 하나의 경험으로 받아들이고 더 강한 자기 자신이 되고 싶었다(고곽대 선배). 고곽대는 마침내 검은 새의 가면을 자기가 둘러써 보기도 하고, 이 여름 너머 다른 여름에서 지난여름을 되돌아 보고 싶다고 독백한다. 그리고 마침내, 저 너머에 들어갈지도, 들어가지 않을지도 모르는 골대를 향해 핸드볼을 던진다. 그는 그제야 완전히 고곽대가 된다. 하지만 그 안에는 고곽대 선배도, 최고작도 들어있다. 그는 그래서 다시 '가능성의 세계'를 연다. 그때 우연히 체육관에 불이 붙는다.

 

연극 <다른 여름>은 정말 군더더기 없이 세련된 작품이다. 하지만 이 리뷰글을 읽으면서 느껴졌겠지만-아마 상당히 혼란스럽고 혼잡스러운 어조로 쓰였으므로-, 뭔가 이 작품을 감상하는 과정에서 완성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사심을 잔뜩 담아 말하자면, 이 작품은 정말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작가의 시선이 어디있냐를 생각해보면, 고곽대라는 인물 자체보다는 이수희와 오덕구 형사에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시선은, 성장하고 혼란스러운 인간들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다.

 

고곽대라는 인물의 이야기 자체도 시적이고 매력적이지만, 그의 성장을 돕는 과정이 한 달 느껴진다. 나는 종종 누군가를 정말 사랑하는 방법은 상대를 보살피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것이 아니라 그 앞에서 그가 하는 주먹을 함께 잘 맞아주고, 흘려주고, 무엇보다 이 모든 과정을 같은 자리엣어 싸워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를 공격하거나, 막아내는 것도 아니라 그냥 게임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모든 스포츠와 게임이 그러하듯이, 그 과정이 끝나면 상대에 대한 분개는 어디 가고 함께 그 시간을 맞서준 것에 대한 사랑만이 남는다.

 

이수희와 오덕구 형사는 진심으로 고곽대와 함께 게임을 해준 인물들이고, 결국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고곽대가 가장 큰 트라우마로 표현되었던 검은 새를 하나의 멘토로 받아들이고 성장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도록 한다. 그들은 결코 조언하지도, 섵불리 동정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와 같은 자리에 매달리고, 그들이 느끼는 것을 온몸으로 받아쳐 주었을 뿐이다.

 

한 여름처럼 뜨겁게 쏟아지는 드럼 소리, 배우들의 역동적인 액션, 그리고 그 사이를 바람처럼 흐쳐지나가는 심판이라는 연출 자체도 이 이야기를 완벽하게 꿰뚫고 있다. <다른 여름>은 왜 우리가 이 고통스러운 삶에서 그렇게 큰 소리로 울어대는지 온몸으로 느끼게 한다. 이 뜨겁고 고통스러운 여름은 주기적으로 찾아오지만, 이 뜨거운 삶의 현장 속에서 서로가 있기 때문에 고통 속에서도 서로 사랑할 수 있고, 지난여름을 떠올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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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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