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작은 성취가 중요한 이유 [운동/건강]

의지박약 체력 거지가 8주 동안 달리기에 도전했다
글 입력 2023.08.12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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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겨울 나는 불현듯 결심했다. 런데이 챌린지를 완주해야겠다. 이유는 생각보다 별 게 아니었다. 그냥 지금 이대로 계속 산다면 내가 나를 못 견딜 것 같았다.

 

그로부터 몇 개월 전 졸업 유예 신청 기간을 놓쳐 내 의지와는 다르게 대학을 졸업했다. (실제로 대학에 다니고 있진 않았지만) 유예 중인 대학생 신분은 내게 주변의 시선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갑옷 같은 존재였다. 갑옷 없이 혼자서 내게 남은 1년이 넘어가는 공백기를 감당하려고 하니 어깨가 너무 무거워졌다.

 

대단한 포부가 있어 공백기를 가진 것도 아니었다. 두 번의 인턴 생활을 마치며, 이제 정규직을 위해 나아가야 할 텐데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인턴 중 욕심에 비해 부족한 능력에 한계를 자주 느꼈다. 과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의구심이 커졌다.

 

스스로에 대한 불신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현실을 외면하고 행동을 멈추게 했다. 아마 무기력증이 아니었나 싶다.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1년이 흘렀다. 중간중간 교육 캠프나 학원을 다니기도 했지만, 딱 기간 뿐이었다.

 

그 자리에 가만히 멈춰 있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건 살 뿐이었다.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이 늘어나니 열량 소모가 적어 살이 찌고, 살이 찌니 체력이 떨어져 누워 있는 시간이 또 늘고. 악순환이었다. 그렇게 과거 10키로 정도 감량했던 무게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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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작년 겨울로 돌아와, 1년 동안 충분히 쉬었겠다, 더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그리고 나에 대한 판단을 내렸다. ‘나는 지금 작은 성취가 필요하다.’ 취업, 체중 감량 같은 대단한 성공까지 필요 없다. 계획한 일 지키기 같은 작은 성취면 충분하다. 중요한 건 자기효능감이니까.

 

자기효능감, 자신이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 기대와 신념. 작년 겨울의 나는 자기효능감이 바닥으로 떨어진 상태였다. 그럼, 일단, 체력부터 늘리자.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거야.

 

체력 늘리기에는 유산소 운동이 제격이라는 정보를 얻었고, 걷기보다 확실한 효과를 위해 러닝을 택했다. ‘런데이’라는 러닝 앱을 통해 30분 달리기 챌린지에 도전할 수 있었다. 이 챌린지는 1분 달리기, 2분 걷기의 반복으로 시작해 매주 뛰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 마지막 8주 차에는 쉬지 않고 30분 달리기에 도전한다.

 

1분 달리기도 겨우 성공하는 내가 완주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그래도 일주일 만에 되는 게 아니라 8주, 2개월이라는 시간이면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1주일에 3번 총 24번 달리다 보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아지겠지. 재빨리 생각을 비우고 일단 도전했다.

 

*

 

첫 주는 솔직히 할 만했다. 1분 30초까지 늘어났지만, 거기까진 감당할 수 있었고 걷는 시간이 뛰는 것보다 길기 때문에 금방 체력이 회복됐다. 문제는 2주 차부터였다. 고작 30초 늘었을 뿐이었는데 고통은 1주 차와 비교할 수 없었다.

 

중간중간 30초, 1분 등 구간을 알려주는 성우 음성이 나오는데, 30초 기다리는 게 그렇게 길 수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긴 시간이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다 못해 눈앞이 흐려져 그냥 눈 감고 뛰었다.

 

마음가짐의 변화는 3주 차 때부터 찾아왔다. 고통스러웠던 2분 뛰기도 3회차 동안 반복하다 보니 익숙해져 ‘2분 30초도 결국 해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떠올랐다. 그리고 정말 2분 30초 달리기도 해냈다. 물론 공짜는 없으니 헛구역질하며 뛰었다.

 

4주 차와 5주 차는 안정기였다. 뛰기 전에는 ‘하,, 진짜 오늘도 할 수 있을까?’ 자신 없지만, 음성에 따라 정신 없이 뛰고 걷다 보면 어느새 한 회차가 끝나 있다. 할 수 있나?-내가 해냄! 사이클을 4주 동안 반복하니 이제 ‘뭐 어떻게든 하겠지’라는 이유 없는 자신감이 든다.

 

구간이 조금씩 꾸준히 늘면서 달리기 속도는 점점 더 떨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이 조급해지진 않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눕는 시간이 줄어들도록 체력만 늘면 되니까. 속도까지 바라는 건 사치라는 생각으로 완주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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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주 차에 또다시 고비가 한 번 찾아왔다. 달리기가 5분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래도 2분 달리기할 때보다는 견딜 만했다. 적어도 폐가 아플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숨이 찼지만 5분 뛰기를 몇 분 견디니 달리기할 때 호흡 조절이 수월해졌다. 더 이상 호흡 때문에 못 뛰겠다는 생각이 사라졌다. 인터벌 운동의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

 

이제 남은 건 7주, 8주뿐. 6회차 만에 쉬지 않고 30분 달리기에 성공해야 한다. 달리기 시간 증가 폭이 확 커졌다. 10분 뛰기, 12분 뛰기, 15분 뛰기. 1주 차의 나라면 이걸 내가 할 수 있다고? 하겠지만, 7주 차의 나는 다르다. 3주~6주 동안 3~5분 달리기를 계속해서 반복했으니까.

 

마지막 8주 차에는 20분 뛰기, 25분 뛰기, 30분 뛰기만이 남아 있었다. 놀랍게도 더는 시작 전 두려움이 없었다. 마지막 주에는 어차피 난 무조건 성공한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시작할 때 되려 설렜다. 아, 오늘도 성공하겠지? 그럼 또 신기록이네!

 

달리는 시간이 늘어났지만, 호흡 문제는 없기 때문에 이제는 늘어난 시간을 견디는 문제다. 다리가 점점 무거워져도 개의치 않고 앞으로 발을 내디뎌야 한다. 지루함을 견디는 나만의 해결법을 만들었다.

 

미리 걱정하지 않고 당장의 문제만을 신경 쓰는 거다. 30분 달리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생각에 빠지지 말고, 목표를 최대한 작게 쪼개 당장의 5분을 생각하는 거다. 그리고 5분은 곧 노래 1.5곡이 나오는 시간.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빠져 따라 부르다가 1곡이 지나면 다음 곡은 반절만 더 기다리면 어느새 5분이 끝났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15분, 30분도 금방이다.

 

*

 

그렇게 거짓말 같이 내가 8주 만에 완주했다. 쉬지 않고 30분 달리기에 성공한 날은 크리스마스 아침이었다. 내가 나에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 같았다. 그것도 내 땀방울로 만든 선물이니 이보다 더 값질 수 없었다.

 

두 달 동안 아침에 뛰기도 하고, 밤에 뛰기도 하고, 비 오는 날 뛰기도 하고, 눈 오는 날 뛰기도 했다. 달리기 속도가 걷는 것보다 느린 적도 많았다. 그런데도 매주 3번씩 뛰었다. 달리기 한 날에는 그 전까지 어떤 일과를 보냈는지와 상관없이 뿌듯함과 함께 잠들 수 있었다.

 

한 회차, 한 회차, 24개의 작은 성취가 모여 자신감이 만들어졌다. 나는 앞으로 또 넘어지는 일이 있어도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이겠구나, 위로가 됐다. 항상 나 자신이 한심해서 짜증 나기 십상이었는데 내가 너무 대견해졌다.

 

작심삼일이 특기인 내가 해냈으니 아마 누구나 할 수 8주 만에 30분 달리기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대단한 각오도 필요 없다. 그냥 당장의 한 회차를 완주하겠다는 마음으로 충분하다. 두 달이면 누구나 변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체력을 30배(달리기 1분 -> 30분) 키울 수 있다.

 

2023년 8월의 나는 30분 챌린지 완주 이후 50분 달리기 챌린지에도 성공했다. 매일 50분 달리기에는 무릎 건강이 걱정되니, 일주일에 한 번씩만 쉬지 않고 50분 달리기를 하고 있다. 감을 잃지 않기 위해.

 

여전히 나는 취업 준비생으로서 현재와 미래 모두 불투명하다. 하지만 작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나를 좀 더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 역시 작은 성취로도 충분하다는 걸 배워 감사한 나날이다.

 

 

[이도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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