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드물게 조우하게 되는 특별한 음악적 순간: The Class+ 문웅휘&원재연

글 입력 2023.08.12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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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10일, 대한민국은 전국이 태풍 영향권이었다. 가득 낀 비구름으로 인해 하늘은 어두웠고, 비는 퍼붓듯 쏟아졌고, 태풍의 영향으로 강풍까지 불어 날이 추울 정도로 혼란스러운 날씨였다. 그렇게 갈피를 잡기 어려운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신영체임버홀을 향해 발걸음을 할 수밖에 없는 날이기도 했다. 이 날은 The Class+ 시리즈로 첼리스트 문웅휘와 피아니스트 원재연이 신영체임버홀에서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두 사람의 이번 무대를 빌어 신영체임버홀에 처음 방문해 보는 것이기도 했다. 지정좌석제가 아니라 표를 수령하고 나서 선착순으로 입장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관객의 입장에서 조금 호불호가 있을 수 있는 홀이다. 좌석에 단차가 있는 것이 아니라서 뒤에 앉게 되면 연주자가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규모가 작은 체임버홀이어서 확실히 연주자와 밀접하게 교감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홀이기도 했다.


첼리스트 문웅휘와 피아니스트 원재연은 이번 무대를 위해 국내 무대에서뿐만이 아니라 유럽 무대에서조차 드물게 연주되는 드뷔시, 포레 그리고 스트라빈스키의 작품을 선곡했다. 무대에 오르는 게 드문 작품들이라고 하니 더더욱 이번 무대가 기대되었다. 그렇게 기대감이 컸기 때문일까, 이번 공연은 나에게도 드물게 조우하게 되는 특별한 순간이었다.


 



PROGRAM 


C. Debussy

Petite Suite for Cello and Piano

III. Menuet


G. Fauré

Cello Sonata No. 1 in d minor, Op. 109

I. Allegro

II. Andante

III. Finale: Allegro commodo


I. Stravinsky

Suite Italienne for Cello and Piano

I. Introduzione

II. Serenata

III. Aria

IV. Tarantella

V. Minuetto e Finale

 




이번 공연의 시작은 드뷔시의 작은 모음곡(Petite Suite)으로부터였다. 작은 모음곡에서도 첼리스트 문웅휘와 피아니스트 원재연이 고른 것은 3악장 미뉴에트였다. 꿈결같이 부드러운 피아니스트 원재연의 인트로로 시작했다. 둥글고 부드러운 소리, 무엇보다 적절한 페달링으로 그 소리에 깊이감을 더해서 음원으로 듣던 것보다 더 아름다운 인트로를 감상할 수 있었다. 그 직후 바로 이어지는 첼리스트 문웅휘의 선율은 힘 있으면서도 가볍고 우아했다. 적당한 힘이 함께 들어가면서도, 미뉴에트답게 리듬감을 살릴 수 있도록 완급조절을 통해 가벼운 느낌까지 잘 살렸다.


부드럽고 유려한 피아노의 반주, 강렬함과 가벼움을 넘나들면서 펼쳐지는 첼로의 선율은 목요일 저녁의 낭만을 극대화시키는 무언가가 있었다. 청아한 선율이 주는 미감도 있지만, 당김음의 사용으로 리듬감이 살아나면서 살짝 익살스러운 듯한 느낌을 주는 패시지도 있었기 때문에 더욱 좋았던 것 같다. 태풍의 영향으로 인해 비가 내리고 있었던 연주회 당일 저녁의 그 빗방울 파문이 연상되는, 즐겁고 매력적인 연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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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진 두 번째 무대는 예정대로 포레의 첼로 소나타 1번이 연주되었다. 1악장 알레그로는 포레의 초기작과는 굉장히 다른 느낌의 작품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포레에게서 느낄 수 있는 낭만보다는 단조로 인해 더욱 극대화되는 불안감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1악장 초입부터 첼리스트 문웅휘는 드뷔시를 연주할 때보다 훨씬 강렬하게 첼로를 켜기 시작했다. 피아니스트 원재연의 터치 역시 함께 불붙듯이 강하게 타올랐다. 전개되는 부분에서의 전환은 한결 부드럽게 이어지다가도, 포레는 다시금 강렬하고도 알 수 없는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그 에너지를 이어받아 문웅휘와 원재연은 휘몰아치는 듯한 음표의 소나기 구간을 지나 강렬하게 1악장을 맺었다.


2악장 안단테는 피아니스트 원재연이 섬약한 피아노 반주를 시작하자마자 낮게 우는 듯한 첼리스트 문웅휘의 주선율이 전개되는 형태다. 느리게, 노래하듯이 원재연은 아르페지오를 펼쳐내고, 그 위로 담담하게 문웅휘의 첼로가 부드럽게 떨려왔다. 1악장에서는 포레의 불안이 격정적으로 드러났다면, 2악장에서는 잔잔하게 그러나 더 치밀하게 드러나는 느낌이다. 첼리스트 문웅휘와 피아니스트 원재연이 들려준 포레 첼로 소나타 1번의 2악장은 어딘가 모르게 이성적으로 치열한 고뇌를 하고 있는 듯한 포레를 연상시키게 만드는 연주였다.


마지막 3악장 알레그로 코모도는 이전의 두 악장에 비해 장조의 느낌으로 전환되어 다시금 포레의 낭만을 되새기게 만든다. 다만 빠르기가 알맞게 하라고만 제시되어 있기 때문에, 연주자들이 어떻게 이를 풀어나갈지가 개인적으로 기대되는 대목이었다. 첼리스트 문웅휘와 피아니스트 원재연은 말 그대로 포레의 서정성을 관객들이 만끽하고 그 낭만에 취하기에 딱 좋은 템포로 연주해주었다. 화성의 전환이 급격하게 일어나는 악장이기 때문에 너무 빠르면 변덕스러운 느낌만 강조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역시 무용했다. 문웅휘와 원재연은 완벽하게 호흡을 맞추면서 피날레의 낭만을 가장 아름답게 전달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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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미를 장식한 작품은 스트라빈스키의 이탈리아 모음곡이었다. 스트라빈스키하면 떠올릴 법한 파격이 아니라, 신고전주의적인 아름다움이 가득한 작품이어서 의외성이 매력적인 작품이다. 1악장은 문웅휘와 원재연의 고아한 앙상블 선율로 시작되었다. 이번 공연의 전 악장 중에서 가장 살롱음악회 같은 느낌이 살아나는 악장이었다. 밝고 우아한 선율이 그야말로 고전을 연상케 한다. 드뷔시와 포레에서 다룰 수 없었던 또 다른 아름다움으로 완전히 분위기가 환기되었다.


2악장은 세레나데 악장이었다. 부드럽게 일렁이는 듯한 피아니스트 원재연의 터치 위로, 첼리스트 문웅휘가 서정적이고도 서글픈 선율을 얹었다. 중간에 있는 첼로의 트레몰로 패시지는 문웅휘의 손끝에서 아주 강렬하게 피어났다. 그 뒤에 맞는 더블 스토핑 화음이 더욱 꿈결처럼 느껴질 정도로 대비가 되어 좋았다. 그 끝에 맞이한 원재연의 아주 여린 타건과 문웅휘의 피치카토는 세레나데 악장이 짧아서 느끼게 되는 아쉬움을 더욱 부각시켰다. 짧아서 아쉬웠으나 너무나 아름다운 연주였다.


이어지는 3악장은 아리아라고 이름 붙어 있는데, 매우 강렬한 도입부를 만날 수 있는 악장이다. 거의 행진곡 풍이라 해도 될 정도로 문웅휘는 강렬하게 활을 켰고, 원재연은 위풍당당한 피아노 선율을 연주했다. 그런데 시종일관 행진곡풍으로 전개되는 것은 아니다. 아리아라는 표현에 걸맞게 아름다운 노래악장을 연상시키는 구간으로 전환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 때에 볼 수 있었던 문웅휘의 트레몰로와 원재연의 주 선율이 참 조화로웠다. 잔잔하고 진중해진 분위기 속에서 강렬한 반전을 꾀하기도 하지만, 말미에 이르러 다시금 읊조리듯 점멸해가는 두 연주자의 앙상블이 완벽했다.


어쩌면 2악장과 3악장의 말미를 그렇게 데크레센도로 스트라빈스키가 맺은 건 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4악장 타란텔라를 부각시키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시작부터 끝까지 거의 쉼표 없이 이어지는 4악장은 빠른 템포 속에서 쉼 없이 몰아치는 음들로 인해 귀가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사이에 녹아있는 스트라빈스키의 익살스러움까지, 문웅휘와 원재연의 손끝에서 잘 살아났다.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4악장이었으나 아주 강렬하게 뇌리에 각인되는 연주였다.


마지막 5악장은 미뉴에트로 시작했다. 지시어가 미뉴에트니까 선율도 미뉴에트일 거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사실 미뉴에트 부분은 너무나 코랄로 느껴지는 도입부였다. 원재연이 먼저 독주로 들려준 코랄풍의 선율에 이어 문웅휘의 첼로 선율까지 더해지자 이들이 연주하는 실제 코랄풍의 작품은 어떨까 궁금해질 정도였다. 잔잔했던 미뉴에트 구간에서 피날레로 넘어가는 순간, 화려한 선율로 전환이 일어난다. 그리고 미래적인 스트라빈스키를 살짝 엿볼 수 있는 면모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 다양한 스트라빈스키의 얼굴을, 두 연주자는 조화롭게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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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의 뜨거운 박수에 화답하여, 첼리스트 문웅휘와 피아니스트 원재연은 무대 위로 다시 나왔다. 이 날의 무대는 인터미션 없이 프로그램을 연이어 연주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는데, 그래서 다른 공연에 비하면 본 프로그램이 끝난 시점의 시간이 꽤 이른 편이었다. 이를 감안하여 첼리스트 문웅휘는, 본 프로그램을 인텐시브하게 연주하고 빨리 끝났으니 앵콜을 여러 곡 준비했다며 미소를 지었다. 이에 객석도 호응할 수밖에 없었다. 연주자가 앵콜 프로그램을 준비해주는 건 언제나 참 고마운 일이니까.


이 날의 무대에서, 첼리스트 문웅휘와 피아니스트 원재연은 시실리안느를 비롯한 세 곡의 앵콜곡을 연주해주었다. 본 프로그램보다 훨씬 더 부드러운 면을 보여주면서 공연을 마무리하는 그들로부터, 남은 8월의 시간도 이렇게 아름답게 보내길 바란다는 인삿말을 들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국내 무대에서 자주 들을 수 없었던 작품을, 문웅휘와 원재연의 손끝으로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아름다운 작품을 뛰어난 두 비르투오소가 전해준 덕분에, 8월에 맞이한 이 아름다웠던 밤이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았다. 무엇보다 오래도록 들을 작품을 이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는 점도 너무나 만족스럽다. 이 날의 프로그램들을 반복해서 들으면서, 신영체임버홀에서 있었던 첼리스트 문웅휘와 피아니스트 원재연의 인상을 오래도록 간직해야겠다.


이후에도 두 사람의 앙상블을 볼 수 있는 자리가 생길까. 문웅휘와 원재연의 조합으로 또 다른 아름다운 음악적 순간을 만나보고 싶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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