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안주하지 않는 날갯짓으로, 뮤지컬 '수레바퀴 아래서'의 박한근 연출

글 입력 2023.08.0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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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하지 않는 날갯짓으로

뮤지컬 '수레바퀴 아래서'의 박한근 연출

 

 

오랫동안 머물던 곳을 벗어나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건 크나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헤르만 헤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 <수레바퀴 아래서>에서 한스와 하일러가 "새장을 벗어나 날아가는 새처럼, 숨겨온 날개를 펼치고 꿈꾸던 높은 담을 넘어서 자유를 찾아가."라고 노래할 때 마음이 뭉클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은 19세기 독일의 청소년들이지만, 21세기 대한민국의 우리도 자유롭게, 나를 가두는 새장을 벗어나 원하는 곳으로 날아가고 싶은 마음은 매한가지 아닌가. 이때 새장은 사회 구조일 수도 있고, 나를 둘러싼 관계일 수도 있고, 스스로 부여한 기대와 책임일 수 있다. 그리고 이 저마다 다른 새장 속에서 누구는 차마 나갈 엄두도 못 내고, 누구는 갇혔다는 사실조차 모르며, 누구는 날아가다가 힘이 달려 돌아온다. 그리고 어느 누구는 날개를 부단히 퍼덕이면서 결국 담을 넘는다. 담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몰라 두려워하면서도, 다시는 지난 삶으로 돌아가지 못할까 떨면서도 날갯짓을 멈추지 않는다.

 

이 작품을 만든 박한근 연출은 결국 담을 넘어간 '어느 누구'라고 말할 수 있다. 20년간 배우로 무대에 서 왔던 그는 코로나19라는 불가피한 상황 속에서, 어린 시절 간직했던 연출의 꿈을 다시 펼치며 제2의 인생을 준비했다고 한다. 무대에 올라 노래하고 박수받는 삶을 사는 동시에, 무대 전체의 그림을 그리고 조율하는 삶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다고. 인터뷰가 끝난 후에는 연출로서 전석 매진 이벤트에 참여해야 한다며 미소 짓던 박한근 연출. 그에게서는 담을 넘어서도 치열하게 날갯짓하는 사람의 의연함이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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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는 소설, 뮤지컬 <수레바퀴 아래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담 너머 연출이라는 세계


 

뮤지컬 <수레바퀴 아래서>는 연출님의 연출 데뷔작으로도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어떤 인연으로 이 작품의 연출을 맡으신 걸까요?

 

코로나19로 공연이 엎어지고, 취소되고, 밀리면서 약 2년이라는 시간이 멈춰 버렸어요. 어차피 멈춰 있을 바에는 뭐라도 공부하고 도전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렸을 때부터 연출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영국 대학원 연출 과정을 밟으려고 했어요. 제가 또 한 자리에 안주하는 걸 안 좋아하거든요. 그렇게 유학을 준비하는데, 제 친구이기도 한 네버엔딩플레이 오세혁 대표가 “뭘 유학을 가, 그냥 하면 되지.” 그러는 거예요. 이미 무대를 20년 했던 사람이 뭘 또 공부하냐고요. 그래서 작년에 <수레바퀴 아래서> 쇼케이스를 준비하면서 하나씩 해 보고 있었는데, 쇼케이스 끝나고 그놈(오세혁 대표)이 또 “그냥 내년에 바로 본공 합시다.” 한 거예요(웃음).


저는 아직도 쇼케이스 때를 잊지 못해요. 제가 배우로서 쇼케이스나 리딩 공연을 얼마나 많이 해 봤겠어요? 그런데 쇼케이스에서 기립 박수가 나온 적은 없었거든요. 당연한 거예요, 쇼케이스니까. 그런데 <수레바퀴 아래서>에서는 기립 박수가 나왔어요. 그때 객석 맨 뒤에서 떨면서 공연을 봤는데, 끝나고 나니까 (관객들이 일어날 때 들리는) 객석 의자 소리 있잖아요. 터덕-덕-덕-덕 하는! 그렇게 기립 박수를 받는데 소름이 돋고 눈물이 나면서 다리에 힘이 풀리더라고요. 그걸 본 오세혁이가 바로 본공을 올리자고 그랬고, 유학은 물 건너갔죠. 결론은 오세혁이가 꼬셔서 하게 됐다, 오세혁 작·연출 겸 대표가 저를 연출의 길로 잘 인도해 줬다. 이렇게 포장해 줘야죠(웃음).

 

 

배우로서 기립 박수 받는 것과 연출로서 기립 박수를 받는 느낌이 다른가요?

 

다르죠. 기립 박수라는 건 엄청 감사한 거예요. 배우들한테 힘을 실어 주고, 당신들이 정말 잘했다는 걸 박수 이상으로 표현해 주시는 거잖아요. 배우로서도 너무 감사하게 받아 왔는데, 연출로서 처음 기립 박수를 받으니까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본공연 첫공날도 우리 애들이 너무 고생한 걸 아니까 혼자라도 일어나서 박수 쳐 주려고 하는데, 또 '터덕-덕-덕-덕' 하고 앞에서부터 일어나시는 거예요. 그땐 정말 눈물이 주르륵 나더라고요. 스태프분들을 비롯한 모든 분께 감사했고요. 그때의 짜릿함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수레바퀴 아래서] 주다온(한스).jpg

 

 

배우로서의 행보를 봐 왔던 관객으로서는 연출님이 연출로서 어떤 이야기를 하실까 궁금하기도 했어요. 이 작품의 어떤 점에 끌리셨나요?


대문호 헤르만 헤세는 소설을 통해 항상 자기 얘기를 해요. 저는 헤세가 다루는 이야기의 주제가 ‘나’라고 생각해요. 자기를 성찰하고, 돌아보고, 내 안의 나와 대화를 이끌어내고. 이 사람의 여행기나 작품을 보면 ‘그래서 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는?’, ‘나는 잘 살고 있나?’ '과연 내가 원하는 건 뭔가?'라는 물음이 와닿거든요. 그전에는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어 본 적이 없었고, 대본을 받은 후에 (원작) 책을 사서 봤는데 역시나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심지어 이 작품은 자전적 소설이거든요. 헤르만 헤세는 여기서도 자신을 돌아보는구나, 그때의 시대상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비판하고 싶었고,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구나, 그런데 그게 결국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겠구나. 그 점에서 가장 끌렸고, 이 작품을 되게 하고 싶었어요. 

 


쇼케이스 얘기가 나왔으니, 여쭤보고 싶은데요. 쇼케이스에서 정식 공연으로 오기까지 작품이 어떻게 디벨롭되었는지도 궁금했어요. 

 

엄청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은데요(웃음). 쇼케이스는 굉장히 간결하면서도 임팩트 있을 수밖에 없어요. 간혹 창작 뮤지컬 중에 쇼케이스 때 극찬받았다가 본공으로 올라오면서 지루해진 경우도 있거든요? 쇼케이스는 뺄 거 빼고 짧은 시간 안에 꼭 필요한 것만 집어넣어서 그래요. 다 소중한 장면이지만 그럼에도 어떤 걸 뺄까, 가장 필요 없는 장면이 뭘까를 연출로서 고민해야 하는 거죠. 

 

그래서 걱정이었어요. 관객분들이 50분짜리 쇼케이스를 임팩트 있게 봐 주셨는데, 본공연은 40분이 더 늘어났거든요. 40분이면 솔직히 씬도, 넘버도 몇 개 안 되지만, 지루하지 않아야 하고 임팩트가 있어야 하다 보니 꼭 필요한 인물 설명이나, 변화 과정에 필요한 양념 같은 것들 위주로 집어넣었죠. 또 우리는 ‘뮤지칼’이니까(웃음) 수미상관 같은 극적 구성을 넣기도 했고요. 그리고 제 친구이기도 한 대한민국 최고의 무대 디자이너인 오필영 감독님께 고딕 양식, 스테인드글라스, 새장을 부탁드려서 무대도 멋지게 구현했고요.


사실 공연 며칠 전까지도 마지막 씬이 정리가 안 돼서 작가님, 저, 안무 감독님, 음악 감독님이 밤새도록 회의했어요. 극장 들어가서 관객 맞이하기 직전까지 고민하다가 배우들이랑 같이 만들었죠. 그래서 마지막 씬이 되게 애틋해요. 심지어 마지막 씬의 반딧불 조명은 첫공날 새로 만든 거예요. 드레스 리허설 하고 나서 조명을 바꾸면 좋겠다고 조명 감독님께 부탁드렸고 공연 직전에 확정한 거죠. 그만큼 무대화가 쉽지 않았는데, 대한민국 최고의 감독님들이 “어~한근이 하고 싶은 거 다 해~.” 해 주신 덕에 감사하게 작업했어요. 또 이런 팀을 만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요. 저는 감독님들이 만들어 주신 것에 수저 하나 얹은 느낌이라 그저 감사할 따름이에요.



뮤지컬계 최고의 창작진들과 함께 하셨지만 연출로서 시행착오도 있었을 것 같아요.

 

모든 순간이 공부였어요. 주변에서 얼마나 많은 분이 바라보고 있겠습니까(웃음). “보자, 얼마나 하나?” 하는 분들도 계시고, ”축하해, 넌 잘할 거야.” 하는 분들도 계시고. 그래도 제일 중요한 건 잘하는 거예요. 저는 “열심히 할게요.”라는 말 별로 안 좋아해요. 열심히는 누구나 다 해요. 무대 위에서는 잘해야 살아남고, 잘해야 미래가 오는 거예요. 


사실 이게 저의 가장 큰 시행착오이기도 했는데, 잘해야 한다는 부담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너무 완벽해지려고 했어요. 내가 알아야만 배우분들, 스태프분들, 감독님들한테 설명할 수 있으니까 머릿속에 그림을 다 그려 놓았던 건데, 사실 서로 절충안을 갖고 만들어 나갈 수도 있던 거였죠. 어떤 감독님들은 그게 잘하는 거라고, 준비된 거라고 말씀해 주시긴 했어요. 그림이 확실한 연출이 필요한 때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앞으로는 너무 혼자 안 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공연은 인간 대 인간이 만나서 만드는 거니까요. (이번 기회로) 저도 연출 공부, 인생 공부 많이 했어요.

 

 

[수레바퀴 아래서] 송영미(하일러).jpg

 

 

 

나의 목소리를 들었다면 우리는 더 행복해졌을 겁니다


 

소설을 무대로 옮길 때의 큰 그림도 있었나요?

 

일단 작가님과 많은 얘기를 했어요. 작가님께서 이 작품을 2~3년 전부터 디벨롭하셨고, 남성 배우 버전으로 쇼케이스도 하셨대요. 그때는 뮤지컬 <한스>였는데, 대본을 받아서 보니까 (원작처럼) 집으로 돌아간 이후의 이야기도 다 했더라고요. 작가님이랑 한참 얘기했던 게 집에 돌아간 이후는 간략하게 처리하고 싶다, 그리고 ‘나의 목소리를 듣고 자유를 찾아 떠나라’는 메시지에서 자유가 죽음이 되면 안 된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죽음과 관련된 대사들을 다 뺐죠. 열린 결말로 끝내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힘내 보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관객들이) 내가 원하는 게 뭔지 한 번쯤 생각해 보게 하는 게 우리의 목적이었어요.


또 쇼케이스 때는 힌딩거 캐릭터가 (무대 위에) 있었어요. 근데 힌딩거가 죽고 나면 한스한테 자극을 주는 역할이 교장과 엄마밖에 없으니 끝까지 살아남는 캐릭터로 바꿀 필요가 있었죠. 그래서 ‘루치우스’라는 캐릭터를 대신 넣었고, 눈치 없던 루치우스도 변화할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원작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우리가 보여 주려고 한 주제를 좋은 쪽으로 전달할 수 있게끔 작품을 디벨롭한 거죠. 

 

 

[수레바퀴 아래서] 조은진(루치우스).jpg

 

 

남성 캐릭터를 여성 배우들이 연기하는 것도 이 작품의 특징입니다. 개막 전 ‘성별과 시대의 구분 없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고 ‘음악적 감성이 여성 배우들의 목소리로 전해졌을 때 더 큰 효과가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해 주신 적이 있죠.


저는 원래 교장은 남성 배우로 가고 싶었어요. 음악적인 이유였는데, 남성의 중저음이 필요했거든요. 그랬는데 작가님이랑 작곡가님이 여성 교장으로 가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해 주셨고, 논의 후에 그 의견에 따라 (여성 배우 중에서도) 저음이 강한 박소리, 허순미 배우를 캐스팅했는데 뚜껑을 열고 나니 되게 좋았어요. 너무나 감사하게도 관객분들께서 그런 부분을 많이 칭찬해 주셨고요. 잘한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음악도 캐스팅 콘셉트와 잘 맞아떨어졌어요. 작곡가님의 음악 표현이 여성 배우들과 되게 잘 어울리거든요. 여기에 자유를 표현할 수 있는 록, 때로는 <스프링 어웨이크닝> 같이 하드한 록이 있으면 좋겠다고 이진욱 음악 감독님께 부탁드렸어요. 그래서 한스는 현이 많은 클래식 음악으로, 하일러는 드럼, 기타가 많은 록 음악으로 시작해요. 처음에 둘의 차이를 그렇게 보여 주다가 둘이 점점 친해질수록 두 음악이 섞이게 편곡했죠. 그러다 나중엔 하일러가 현의 음악으로 노래하고, 오히려 한스가 록적인 음악을 노래하게 되고요.


 

[수레바퀴 아래서] 박소리(교장).jpg

 

 

원작에서는 한스가 수많은 친구를 만나는데요. 이 작품은 그중에서도 하일러와의 관계에 집중한 것 같아요. 


원작에서는 많은 인물이 한스의 인생에 영향을 끼치거든요. 긍정적인 영향이기도 하고, 부정적인 영향이기도 한데, 그렇다고 누가 ‘빌런’인 건 아니에요. 예를 들어 교장 선생님은 자기 역할을 다하고 있을 뿐이에요. "교장이 왜 나쁜지 모르겠다, 나도 자식에게 그렇게 (비슷하게) 한다."고 말씀하신 관객분도 있었거든요. 사실 교장은 규율이 엄격한 신학교에서 교장의 역할을 다한 것뿐이고, 이 규율이 억압인지 모르고 자랐던 한스는 이 시대 우리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어요. 사회 안에서, 또 작게는 가족 안에서 “하면 안 돼.” 소리를 듣고 사는데, 그게 과연 잘못된 걸까? 어떻게 보면 사회의 순기능일 수도 있잖아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잃어가는 나 자신을 돌이켜보자'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거고, 그런 의미에서 한스를 변화시키는 건 하일러 밖에 없어요. 하일러는 한스에게 ‘이상한’ 자극을 줬던 친구였고, 그래서 하일러와의 관계를 제일 우위에 둔 거죠.


쇼케이스 때는 한스가 원탑인 느낌이었는데, 작가님께서 본공을 준비하면서 한스와 하일러의 이야기를 같이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어요. 하일러도 우리다, 하일러가 한스에게 좋은 자극을 주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하일러도 변화할 거다. 그래서 하일러의 역할을 확 키웠죠.

 

 

말씀대로 작품은 한스 혹은 하일러 개인의 성장 서사이면서 둘이 맺는 관계가 중요한 드라마잖아요.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았다는 느낌도 들더라고요.


하일러도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독방에서 부르는 넘버도 쇼케이스 때는 없었는데, 하일러의 모습을 100% 보여 주려면 이 부분에 솔로 넘버가 하나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추가한 거였죠. 그 장면에서 하일러가 풀어진 넥타이를 고쳐 매는데, 그게 엄청난 변화거든요. 그다음 장면에서는 원래 같으면 주변을 정리했을 한스가 의자를 밖으로 당기고 올라가서 놀면, 오히려 하일러가 뒤에서 묵묵히 정리해요. 그 모습으로 둘의 균형이 바뀌었다는 걸, 하지만 하나가 꺾인 게 아니라 같이 성장하면서 변화한 거라는 걸 보여 주고 싶었어요. 아이들이 너무 잘 살려 주기도 했고요. 


엔딩도 한스 혼자 반딧불이를 날리고 끝낼 수도 있었는데, 그걸 받은 하일러의 모습까지 보여 주고 싶었어요. 한스가 반딧불이에 자기를 실었고, 그게 그대로 하일러의 수첩에 꽂히면서 하일러는 다시금 시를 쓸 힘을 얻는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죠. 거기에 더해 (하일러의 모습에 작가 헤르만 헤세를 겹쳐서) '헤르만 헤세가 이 반딧불이를 보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나?' 하는 느낌도 주고 싶었어요.

 

 

[수레바퀴 아래서] 주다온(한스), 이서영(하일러).jpg

 

 

개인적으로는 한스와 하일러가 가까워질 때의 소소한 장면들이 반짝반짝 빛난다고 느껴졌습니다. 아무래도 연출님께서 배우로서의 경험치가 있다 보니, 그런 소소한 케미가 관객들에게 얼마나 크게 다가갈지 알고 계셨던 거 아닌가 싶었어요.


작곡가님이 음악을 잘 만들어 주셔서 그런 거죠, 뭐(웃음). 거기에 이현정 안무 감독님이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를 디테일하게 만들어 주셔서 예쁘게 나온 것 같아요. 안무 감독님과 이야기한 게 이게 쇼뮤지컬이 아닌 드라마틱뮤지컬이기도 하고, 콘셉트 상 너무 과한 춤이 아니라 움직임 정도였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감독님이 발걸음 하나, 손동작 하나에도 의미를 담아서 만들어 주신 거고요.


작가님이 하나 걱정하셨던 건, 혹시나 이 터치들이 오해를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거였어요. 그게 우리가 말하려던 것, 보여 주려던 것은 아니라, 저도 연습하면서 배우들에게 계속 물어봤어요. “너희 둘이 손잡고 다니는 거 안 이상해?" "안 이상한데요." "오케이, 그럼 해! 만약에 조금이라도 어색하거나 이거 좀 위험한데 싶은 게 있으면 그건 하지 마.” 그렇게 배우들이 오케이한 것들만 작품에 들어왔고, 그런 아기자기한 장면을 관객분들이 예쁘게 봐 주시는 것 같아요. 다 감독님들, 배우분들이 잘해 주신 덕분이죠.

 

 

너무 겸손하신데요(웃음).

 

아휴, 아니요. 저는 수저만 하나 얹었습니다. 빨대만 하나 쓱 꽂았어요(웃음).

 

 

[수레바퀴 아래서] 이서영(하일러).jpg

 

 

원작과는 달리 뮤지컬은 한스의 결말을 열어 둔 채 마무리됩니다. 엔딩을 정확하게 명시하지 않은 이유가 있을까요?

 

처음부터 저는 무조건 열린 결말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죽음이 자유는 아니니까 죽음이 보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같이 대본을 수정했죠. 물론 원작을 훼손하면 안 된다는 생각도 당연히 갖고 있었어요. 워낙 어마어마한 소설인지라 결말을 아는 사람도 많을 것 같았고요. 그래서 차라리 이렇게도 볼 수 있고, 저렇게도 볼 수 있게끔 만들어 보려고 했어요. 

 

영화의 한 장면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다리에서 뛰어내려서 물속으로 가라앉는 한스한테-물론 물에 뛰어들었다는 건 영화적 표현이고, 공연에서는 절대 보이지 않지만- "한스, 한스!" 하는 멍멍한 소리가 들려서 눈을 딱 떴는데, 과거의 순간들로 돌아가 있는 거예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를 듣고 눈을 뜨니 “한스, 보여? 뭐가 제일 행복했어?”라고 묻는 하일러와의 순간으로 가 있는 거죠.

 

만약 한스가 자기의 목소리를 들었다면, 또 다른 행복한 결말이 있었을까? 저희는 거기까지만 보여 주는 거예요. ‘한스는 죽었지만 그랬다면 어땠을까?’가 아니라, ‘만약에 그때 그랬더라면….’, '만약에 뛰어들기 전에 내가 나를 불렀으면….'까지만 보여 주는 거죠. 원작 결말이 그러니 죽음으로 보인다면 어쩔 수 없지만, 저희는 ‘죽음으로 가기 직전에 나의 목소리를 들었다면 우리는 더 행복해졌을 겁니다’라는 걸 보여 주고 싶었어요.

 

 

[수레바퀴 아래서] 박새힘(한스), 송영미(하일러).jpg

 

 

 

안주하지 않는 태도로


 

데뷔 20주년을 맞은 배우인 동시에 1년 차 연출이시기도 한데요. 이번 작업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 점이 있을까요?

 

그제가 제 데뷔 20주년이었어요. 깨달은 점이요? 배우가 제일 쉽구나(웃음).

 

 

연출이 더 어려우세요?

 

네, 연출은 해야 할 게 너무 많아서 시간이며 체력이며 한 3배 이상을 더 쓰게 되더라고요. 참 해야 할 게 많고, 책임져야 할 것도 많아요. 물론 배우도 무대 위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합니다만, 연출은 더더욱 책임이 필요한 위치 같아요. 연출이 무대 뒤에서 묵묵히 책임져야 하는 역할이라서 참 어렵구나, 연출을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그런데 더 열심히 하면, 아니 잘하면 충분히 더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더 해 보고 싶은 욕심,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하려고요, 계속.

 

 

그럼 앞으로 연출로도 계속 뵐 수 있겠네요?

 

네, 배우도 연출도 계속 할 생각이에요. 이번 작품도 <광염 소나타>로 배우 활동하면서 같이 작업했거든요. 저기서는(<광염 소나타> 무대에서는) 막 소리 지르다가 여기 와서는 “어, 얘들아, 연습할까~?” 이러고 있고(웃음). 우리 배우들이 공연 보러 와서 "이렇게 힘들게 연기하면서 어떻게 연출도 하냐."고 그랬어요. 그래도 도전하고 싶더라고요. 또 좋은 작품을 만들어서 보여 드리고 싶어요. 누가 시켜 줄까요?(웃음)

 

 

[수레바퀴 아래서] 박새힘(한스).jpg

 

 

연출로서도 배우로서도 오래 뵐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끝으로 연출님께 무대란 어떤 의미인지 듣고 싶습니다.


가장 어려운 질문이에요. 무대라는 곳은 사실 현실이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그 안에서 상상의 날개를 펼쳐요. (무대 위에) 실제 박한근이 있는 게 아니잖아요. 제가 언제 살인을 저질러 봤겠어요?(웃음). 그런데 어떤 작품에서 나는 결국 살인자가 되는 것처럼, 이건 다 상상인 거예요. 하지만 또 그 상상 안에 들어가 있는 나는 현실에 존재하고 있거든요. 판타지는 판타지지만 그 안에는 정말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사람이 존재해요. 무대는 상상과 현실이 만나는 굉장히 묘한 곳이에요.

 

그래서 어렵고, 공부해야 하고, 준비가 필요한 곳이에요. 사실 아무나 있을 수 있는 곳이 아니거든요. 배우들이 그렇게 살아 움직일 수 있게끔 만들어 주는 게 스태프·연출의 역할이고, 진심으로 진지하게 최선을 다해서 무대 위에서 놀라고 얘기해 주는 게 연출이 할 일이고요. 무대화라는 게 그런 것 같아요. 이 생각과 저 생각이 만나서 그림으로 표현되고, 배우들을 그 안에 집어넣고…. 

 

뭐라고 단정 짓기가 굉장히 어렵네요. 상상과 현실이 공존하는 곳, 저는 그렇게 표현하고 싶어요. 상상의 날개를 펼쳐야 하는 곳이지만, 그만큼 현실적으로 치열해야 하는 곳. 꿈은 아름답지만 현실은 아름답지 않다고들 하잖아요. 그 두 개가 공존하는 곳이 아닐까요?

 


많은 분이 이 질문을 굉장히 어려워하시더라고요. 

 

진짜 어려워요(웃음). 오히려 배우일 때는 이런 질문이 쉬웠는데, 연출로서는 “어, 그러게요? …뭐죠?” 이렇게 되는 것 같아요. 인터뷰도 배우일 때가 더 쉽네요. 내가 맡은 캐릭터를 연기할 때, 작품과 캐릭터를 분석할 때 갖고 있는 생각들을 말하면 됐거든요. 근데 연출은 작품의 콘셉트는 뭐고요, 무대화는 어떻게 시킨 거고요, 대본은 어떻게 수정한 거고요, 편곡은 어떻게 했고요, 안무는 어떻게 했고요…. 말할 게 많으니까. 연출이 어렵구나, 인터뷰마저도(웃음).

 

 

[김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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