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자존감을 높이느라 지친 사람들에게 - 손쉬운 해결책

제시 싱걸의 <손쉬운 해결책>
글 입력 2023.07.31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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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가 보자. 한쪽 코너에 가면 자존감을 지키는 방법을 어렵지 않게 구매할 수 있다. 저서들은 요리 레시피처럼 많은 곳으로 퍼진다. 교실, 가정, 자취방 등 다양한 장소에서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라는 복창이 이루어진다.

 

SNS에서는 조금 더 장난스럽다. 일직선을 그은 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의 특징은 이쪽에, 자존감이 높은 사람의 특징은 저쪽에 분류한다. 「난 완전 높네」, 「반반인듯」 댓글 창의 반응 역시 가지각색이다. 친구를 태그해서 「너인 것 같다」고 알려주기도 한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자존감'이라는 개념에 대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수치를 판단한다. 더 나아가서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물론 스스로를 미워하고 상처 주는 것보다 사랑하고 아껴주자는 주장이 여러모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자존감의 바다에 깊숙이 들어갈수록 우리의 표면은 더욱 단단해지고, 돌덩이를 만나도 쉽게 부서지지 않을 수 있다. 심해어가 엄청난 수압을 견디듯이 내면이 점점 강해진다.

 

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깨달을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암흑뿐이다. 너무 낮은 곳으로 내려와 버렸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 보이는 낚시꾼들에 대해 적나라하게 비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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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쯤 미 육군들의 정신건강 문제가 위기 수준으로 치달았다. 인력 부족으로 인해 군인들의 파병 기간이 길어지고, 또 잦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군인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의 유병률이 훨씬 높았다. 그들은 친구들이 산산이 찢겨 나가는 것을 보고, 시체 조각을 주워 모으고, 본인도 죽을 뻔했다.

 

퇴역 군인들은 대부분 자살로 생을 마감했지만, 살인 사건을 저지르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자다가 깨 보면 겁에 질린 아내의 목을 조르고 있는 일이 반복되어서 차고에서 잠을 청한다고 했다. 군은 강력한 대비책이 필요했다.

 

그리고 군에는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었다.

 

먼저 마틴 셀리그먼의 CSF가 있다. CSF는 군이 이미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인 자기 조절, 근면, 권위에 대한 존중과 신뢰를 강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방식은 간단하고 편리할 뿐 아니라, 미 전역에 대대적으로 보여줄 퍼포먼스가 많았다. 가령, 모두에게 낯설고 새로운 'CSF' 강사들의 신념을 전달받은 군인들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감동적인 장면을 촬영할 수 있었다.

 

다음 선택지는 현실적인 편이다. 군인들의 PTSD를 치료하는 퍼트리샤 리식의 인지처리치료에 투자하는 것이다.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군인들은 전투 훈련에서 '모두가 맡은 일을 제대로 수행하면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을 반복적으로 듣는다. 하지만 실제 전투에서 이러한 공식이 지켜질 리 없다. 결국 집으로 살아서 돌아온 군인은 '왜 모두가 귀가하지 못했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고, 우리가 무엇을 잘못한 거지?'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묻혀 있는 사제 폭발물을 알아보기 힘든 것이 당연한데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들이 군대에서 익힌 신념을 해체하여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는 과정은 아름답지 않다. 젊은 남자들이 치료사 앞에서 죄책감과 분노를 울음과 함께 토해내는 모습이 보기 좋게 찍힐 리가 없다.

 

군이 어떤 선택지를 고를지 뻔히 보이는 듯하다.

 

 

셀리그먼과 긍정심리학은 미 육군의 언어와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 ... 바로 이런 것이다. '개인에게는 자신의 처지와 성공 가능성을 개선할 수 있는 상당한 잠재력이 있다. 근면과 헌신, 긍정적 태도를 기꺼이 받아들이기만 하면 말이다.' (160p)

 

 

PTSD를 겪으며 아내의 목을 조르기까지 하는 사람을 상대로 '당신에게는 자신의 처지를 개선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주장한다니. 얼토당토않은 것을 넘어 잔인하게까지 느껴지는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다가 불현듯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었다.

 

이것들은 PTSD에 시달리는 퇴역 군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벽 앞에서 긍정적인 태도를 주문처럼 되새기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할 수 있는 흐름이었다.

 

 

 

누가 손쉬운 해결책을 원하는가


 

'병사들의 회복탄력성을 높이면 PTSD를 이겨낼 수 있다.'

'여성들이 강화된 권력감을 느끼면 직장에서의 성별 격차를 막을 수 있다.'

'가난한 아이들의 그릿*을 더 계발하면 부유한 아이들을 따라잡을 수 있다.'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덤벼드는 경향성

 

위의 주장들은 모두 체계에 존재하는 문제점에 대한 논의는 뒤로한 채 개인에게 책임을 미루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은 심리학자들을 시작으로 전개된다. 자금 지원과 유명세라는 유인이 존재하는 한 심리학자들은 자존감, 긍정심리학, 그릿, 넛지, 무의식의 힘 등을 외칠 것이다. 그리고 언론인들 이러한 목소리를 듣는다. 그것이 청중을 사로잡을 수 있는 과학이라고 생각되면 검증 없이 팔아버린다.

 

특정 사회학파는 이러한 목소리에 추진력을 보태고, 일련의 과정은 엘리트 집단에 의해 마무리된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과 이데올로기 탓에 사회 문제들에 대해 권력을 해부하고 자원을 재분배하는 대신 개인에 초점을 맞춘 치료책에 관심을 가진다.

 

여기서 패배자는, 심리과학에 대해 잘못되거나 단순화된 믿음을 갖게 되는 뉴스 소비자들이다.

 

 

 

'손쉬운 해결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내가 패배자였다니. 왼손에 든 종이의 부피가 더 커질수록 허탈함도 커졌다. 그동안 지키려고 했던 자존감이 전부 허상이었다는 생각에 배신감이 들었다.

 

가장 큰 문제는 '간단한' 해결책이 패배자들에게도 보기 좋은 떡처럼 보인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타고난 지능이 성적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보다는, 그릿을 개발하여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더 행복하다. 자신에게 처한 가난이 부의 세습으로 인한 결과라며 엘리트 집단을 상대로 투쟁하기보단, 내면의 가능성을 믿고 자기 계발을 하는 편이 더욱 쉽고 편리하다.


하지만 우리는 믿음만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이겨낼 수 없으며, 성별 편향을 타파할 수 없고, 가난을 극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손쉬운 해결책'은 이러한 현실을 조금은 잔인하고 통쾌하게 설명한다. 특히 쉽지 않은 환경 속에서 자괴감에 빠진 사람이라면 해당 도서를 필독하기를 바란다. 제시 싱걸은 낮은 자존감이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며 해방감을 선물할 것이다.

 

 

[이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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