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잊히지 않는 사랑을 한 적 있나요? - 이터널 선샤인 [영화]

사랑이 지지 않는 이유
글 입력 2023.07.29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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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성공하는 콘텐츠는 완성도의 측면에서 두 갈래의 극단을 달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처절할 정도로 완벽하거나, 미치도록 자극적이거나.

 

이터널 선샤인은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어느 한 극단으로 분류하기 참으로 난감한 영화다. 인물을 완전히 해부할 수 있을 만큼의 세부 정보는 공개하지 않으면서, 딱 인물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정보는 친절하게 떠먹여 준다.

 

말초신경 자극의 치트키인 '공포'를 조엘의 기억 삭제 과정 내내 십분 활용하면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의 중심은 묵직하고 슴슴한 사랑 이야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필요한 만큼만 자극적이고 필요한 만큼 완성도 있다. 양 극단에서 취할 수 있는 장점만을 선별해 인생이 퍽퍽한 남자와 인생이 별난 여자의 어찌 보면 진부하기까지 한 러브 스토리를 끝까지 감상하게 만든다.

 

나름의 해석을 통해 얻어낸 답안은 이게 감독이 추구하는 휴머니즘이기 때문에, 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에게 남기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사람의 영혼에 미치는 흔적. 그 기억의 서재를 톺아보는 영화, 이터널 선샤인을 소개하고자 한다.

 

 

 

1. 조엘이라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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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중심에 우뚝 서 있는 건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사랑과 추억이지만, 이 만나고 헤어지고 만나는 커플을 조명한 연출은 사랑을 통해 한 인간의 삶을 말한다.

 

흔히 쓰이는 밈 중에 "이건 게임이 아니었습니다. 삶이었습니다, 삶!"이 있다. 이걸 이터널 선샤인식으로 로컬화하면 "이건 단순한 기억상실물 로맨스가 아닙니다. 삶이었습니다, 삶!" 정도로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에서 준 인물 정보를 보자. 조엘의 직업은 중요하게 다뤄지기는켜녕 어느 분야의 일인지 유추하기도 힘들게 나오는 반면, 클레멘타인의 직업은 초반부부터 아주 명쾌하게 나온다. 서점 직원. 심지어 서점에서 계산대에 앉아 있거나 책을 분류하는 장면까지 골고루 조명된다.

 

왜일까, 하고 묻는다면 이 영화는 철저하게 조엘의 시야에서 그의 인생을 반추하는 휴머니즘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 있겠다.

 

조엘은 직업에 소명 의식이 있다거나 직업으로 자야실현을 도모하는 인간상이 아니다. 직접적인 대사는 물론이고 집-작업장을 반복하는 영화 초반부의 조엘을 다루는 방식에서도 이는 명백하게 드러난다. 대충 깎은 수염과 초췌한 인상, 회색조의 거리와 풍경, 생기 없는 푸른빛 필터가 낀 메트로 연출 등등등.

 

그런 조엘의 시선에서 타이트한 107분 분량 영화에 굳이 조엘의 직업과 작업장을 조명할 이유는 없다. 조엘이 그걸 중요시하지 않으니까.

 

 

 

2. 클레멘타인이라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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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 급부로, 클레멘타인의 직업을 비출 필요? 서점 씬이 필요한 이유? 당연히 있다.

 

널리 알려진 메타포가 있다. 사람의 기억이 한 권의 책이라면, 뇌는 그걸 꽃아두는 거대한 책장이다, 라는. 종종 시구나 가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한 비유가 이 영화에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클레멘타인의 첫 만남의 기억을 잊어가며 차를 타고 기억의 통로를 달려나가는 연출. 차창 너머의 기억들이 서점 풍경처럼 지나가지 않았나? 영화는 조엘의 삶을 거대한 도서관으로 보기로 작정했다고 알려준다. 그의 책장에 꽂힌 중요한 책들은 거진 클레멘타인과의 기억이고.

 

그렇다면 이 서가의 관리인은 누구일까? 원래라면 기억의 중요도를 판별해서 시간순 중요도 순으로 정렬하는 주체는 당연히 조엘 본인이었겠지만, 우리는 이미 관객의 입장에서 클레멘타인의 직업을 알고 있다. 그러니 어렵잖게 유추할 수 있다. 조엘 기억 서가의 관리인은, 서점 직원 클레멘타인이다.

 

 

 

3. 잊히지 않는 사랑은 삶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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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바로 이터널 선샤인이 휴머니즘 영화로 읽히는 이유다. 휴머니즘의 핵심은 인간 삶의 메시지 전달이다.

 

사랑은 연고 없는 타인과 시간을 보내게 만든다. 시간은 켜켜이 쌓여 기억이 되고, 그렇게 쌓인 기억은 삶의 '일부'가 된다. 타인이 삶의 일부가 된다는 것은, 그 사람을 논하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는 자신의 일면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 조각들이 면적을 넓혀가다가, 넓혀가다가, 어느 순간 자신을 설명하는 가장 크고 중요한 부분이 되는 순간이 온다. 그때가 오면 개인은 사랑하는 타인에게 '나'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 역할을 넘겨주게 된다. 기억 서가의 관리인 역을 타인에게 양도한다.

 

그렇게 사랑은 누군가의 삶이 된다. 기억 서가의 관리인 역을 클레멘타인에게 넘긴 조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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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은, 나의 삶의 무게중심을 타인의 우주에 내던지는 일이다. 살면서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모험이다. 그렇게 외로운 '나'는 서로에게 흔적을 남긴 '우리'가 된다.

 

최선을 다해 모험하자. 내 안에 지울 수 없는 타인의 기억을 새길 사랑을.

 

 

사진출처: 이터널 선샤인 공식 스틸컷

 

 

[김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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