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STS SF'가 뭐야? -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

글 입력 2023.08.01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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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_표1(띠지).jpg


SF는 Science Fiction, 공상과학이다. 과학적 사실이나 이론을 바탕으로 한 문학 장르를 말한다. 그런데 장강명 작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STS SF’라는 새로운 장르의 이름을 붙였다. ‘STS(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는 한국어로 ‘과학기술사회학’이며, 과학과 기술이 사회와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 탐구하는 학문 분야이다. 과학기술이 여러 영역에서 일으키는 실존적 위기에 대응하는 문학을 의미한다.


기술은 인문학과 전혀 다른 분야라고 볼 수 있지만, 사실 기술은 사회제도나 문화와 단단히 결합한다. 기술은 우리의 삶과 사회와 복잡한 영향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기술로 인해 ‘변질’된다. 그 변질을 포착하는 것이 STS SF의 목표라고 작가는 설명한다. 언뜻 듣기에 너무 심오할 수 있지만, 그 ‘STS SF’의 표본이 바로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이다. ‘기술이 우리 삶과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까? 그 변화는 바람직한가?’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창의적이고도 다채롭게 펼쳐낸다.


이 책에 나오는 여러 소설은 기실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사회적 문제를 소재로만 사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철학적 쟁점을 끊임없이 제시한다. 상상과 사유를 동시에 하면서 볼 수 있는데 배경마저 현실과 우주, 가상 공간을 가리지 않는다. 이 책 한 권에 수많은 세계가 담겨 있었다.




보고 싶은 대로 보는 세상


 

 

많은 사람이 믿으면 그건 그대로 현실이 돼요. 화폐 같은 게 그렇잖아요. 우리 모두는 각자 바람직한 세상을 창조할 권리가 있고, 옵터는 그걸 도와줍니다.

 

p24

 

 

표제작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은 산뜻하게 소설집의 포문을 연다. 이 소설은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편집한 화면을 보여주는 증강현실 ‘옵터’가 상용화된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옵터는 상대방의 욕설도 다른 말로 필터링해줄 수 있고, 거리의 분위기와 날씨도 바꿔 보여줄 수 있고, 하늘에 떠 있는 플래카드의 말도 바꿔주며, 심지어 돈을 내면 남에게 보이는 내 외모의 모습도 조절할 수 있다. 한 마디로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보이고 싶은 대로 살 수 있는 세상이다.


증강현실이라는 고차원적이고도 산뜻한 소재를 사용했지만, 사실 그냥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도 옵터 중독자의 말은 와 닿는 부분이 있다. 인간은 모두 자신만의 세상을 창조하고 살아가며, 어느 정도는 꿈속에서 살아간다. 그것을 극대화해서 모든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보며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있다면, 그건 나쁠까? 내가 말하는 것과 상대방이 듣는 게 달라도, 어쨌든 옵터가 있는 한 우리는 어느 방향으로든 소통할 수 있고,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다.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보이고 싶은 대로 보여줄 수 있는 세상이 어쩌면 이상향이 아니던가.


나는 이것이 꼭 기술과 결부되지 않더라도, 어떤 것이 더 행복한 삶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답을 내리지 못했다. 우물 안 개구리라도 우물 밖을 모르는 개구리의 세계에서 개구리가 행복하다면 그게 더 행복한 삶일지, 아니면 평생 우물 속에 살아야 하더라도 자신의 세계가 우물 안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게 더 행복한 삶일지. 꿈과 실재를 구분하는 선이 어느 정도에서 건강할지 여전히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나만의 바람직한 세계’에만 빠져드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소통의 시도가 무력화되고 연결 자체가 단절로 이어진다는 것은 알 수 있다.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본다는 것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폐쇄의 선언. 이해의 부재는 갈등을 유발하고 이는 원인 없는 혐오로 이어지기도 한다. 어쩌면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은 이 소설집의 소설 중 가장 가시적인 미래를 묘사했지만 동시에 제일 현재의 이야기를 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현재 우리 사회에는 필터를 씌워주는 옵터도, 옵터 중독자와 아닌 사람들을 나눠주는 공간인 크루즈도 존재하지 않은 채, 얼룩진 혐오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9海joe


 

 

‘인간은 싸고, 무게도 백오십 파운드밖에 나가지 않는 비선형 non-linear 다목적 컴퓨터 시스템이다. 그것도 비숙련 노동자가 대량생산할 수 있는.’

 

p56

 

 

<당신은 뜨거운 별에>는 금성 탐사를 위해 지구를 떠난 엄마 ‘수정’이 금성에서의 탈출을 위해 사이가 좋지 않았던 딸 ‘마리’에게 비밀리에 구조 신호를 보내며 함께 구조 계획을 짜는 이야기이다. 극 중 항공우주국은 유인 우주탐사 계획을 옹호하며 위의 이야기를 주장한다. 인간은 컴퓨터에 비했을 때 가치가 현저히 떨어지며, 생산성의 측면에서도 ‘비숙련 노동자의 대량생산’이 가능하기에 공을 들일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이 소설집은 한 번만 읽기에 결코 쉽지 않았기에 여러 번 다시 펴보곤 했는데, 다시 읽었을 때 가장 놀랐던 이야기가 바로 <당신은 뜨거운 별에>이다. 몸과 머리를 분리해 따로 보관하고, 심지어는 엑스선과 적외선으로 ‘진짜 감정’을 무선조종하고, 금성에서 탈출하는 이야기라니. 그 정교한 창의력에 놀라며, 원리 하나하나를 이해하며 읽느라 몰랐는데, 다시 읽으니 이는 정말 ‘엄마’와 ‘여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결국, 몸을 빼앗기고 교묘하게 조종당하던 여성이 그 사실을 깨닫고 딸과 연대해 탈출하는 이야기다. 그 과정에서 딸을 이해하는 건 덤.


수정은 딸 마리를 ‘오답을 선택하기 위해 자신으로부터 도망친 아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그녀 역시 처음으로 오답을 선택할 용기를 낸다. 이는 오랜 시간 유교 사상과 가부장의 시대 아래에서 억눌려있던 여성이 처음으로 자신을 속박하고 있던 것을 내던지고자 하는 역사적 시도를 의미하는 것 같다. 꼭 여성이 아니더라도 종교로, 성 지향성으로, 혹은 다른 이유로 세뇌당하던 집단의 용기를 대변한다고도 느낀다. 그리고 그 모든 시도는 생존과 자존을 담보로 이루어진다는 걸 우리는 기억하고, 현재 사회에서도 목도하고 있다.




공감, 고통, 악


 

 

“종종 타인은 지옥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지옥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곳에 있음에 우리는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p171

 

 

<알래스카의 아이히만>에서는 상대방의 해마로 들어가 그 사람의 정서를 그대로 경험할 수 있는 ‘체험 기계’가 등장한다. 어떤 육체적 고통의 총합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을 하나의 이야기로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기계이다. 그리고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했던 나치의 최고 책임자 아돌프 아이히만과 유대인 에밀 벤야민이 이 기계에 들어가게 된다.


이 이야기는 수많은 의문점을 제시한다. 피해자가 받은 고통을 가해자가 똑같이 느끼게 하는 것이 더 알맞은 복수이자 보상인가? 체험 기계로 가해자에게 피해자의 고통을 주는 것은 정의인가 복수인가? 반대로 범죄자에게도 우리는 그만한 공감을 해주어야 하나?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면, 선악은 주관적인 감수성에 따라 달라지는 것 아닌가? 고통이 곧 악일까?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도덕이라고 여겨진다면, 금기만 넘쳐나지 않을까?


타인의 공감이라는 점에서 시작해 가해자에게도 공감이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방점을 찍고, 가해자에게 피해자의 고통을 느끼게 하는 것으로 나아가 이것이 결국 선악의 문제로까지 유기적으로 이어진다.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하는 방법이 생기는 것이 사회에 득일까 실일까. 피해자에게 가해자의 삶을 온전히 느끼게 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타인에 대한 이해를 그렇게까지 완전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타인은 지옥’이라면, 오히려 그 지옥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꼴이 아닌가.


앞서 말한 창의적인 상상과 동시에 철학적 사유를 깊고도 진득하게 할 수 있는 STS SF의 정수 같은 소설이었다. 특히 이런 철학적 논의가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이어지는 극적인 전개는 이야기에 대한 몰입도를 확 끌어 올린다.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가 많은 소설이다.

 

 


내가 되고 싶었던 것, ‘내’가 되고 싶은 것


 

 

아스타틴이라면 틀림없이 그랬을 거라고. 그게 바로 아스타틴스러움이라고.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스타틴보다 나은 인간이 되고 싶었다.

 

p301

 

 

<아스타틴>에서는 천재 과학자 ‘아스타틴’이 나온다. 그는 자신의 특성을 열다섯 개로 각각 나누어 복제하고, 복제한 이들 중 가장 뛰어난 능력을 지닌 한 명만 최종 아스타틴으로 선정하는 부활식을 고안한다. 주인공은 그 열다섯 부활 후보 중 한 명이며, 최종 부활자가 되기 위해 다른 열 네 명의 형제들과의 전쟁 과정에서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자신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지니게 된다.


결국 나는 사랑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 이야기는 우주, 초지능, 능력 대결이 나오며 이 소설집에서 가장 박진감 있고 오락적인 생존 이야기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이 이야기를 사랑 이야기로 읽었다. 최종 부활자가 되기 위해 ‘아스타틴’만을 고집하던 주인공이 ‘아스타틴스러움’을 버리고 ‘아스타틴보다 나은 인간이 되고 싶다’고 다짐하는 부분에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20년이 넘도록 회자하는,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의 “당신은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어요” 명대사가 생각났다.


내가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게 만드는 게 결국 내가 ‘내’가 되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절대자든, 신이든, 다른 사람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괜찮은 내’가 되고 싶다는 것이니까. 그 깨달음이 사랑에 말미암은 것이라니. 낭만적이다. 특히나 사랑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도 은은하게 느껴져서 더 좋았다. 원래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다. 사랑이든, ‘나’든. 평생 우리는 자신의 얼굴조차 보지 못하고 죽으니까. 그런 면에서 이 이야기는 ‘나’라는 인간을 구성하는 것에 어떤 것이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기계의 초지능으로 초인적인 능력을 갖춘대도, 결국 진짜 ‘나’를 구성하는 것은 어디까지인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극히 핍진한 나의 세상


 

 

다른 사람이 알려준 정답과 스스로 고른 오답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후자다. 사람은 오답을 선택하면서 그 자신이라는 한 인간을 쌓아가는 것이다.

 

p84-85

 


이 수많은 깊고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읽으며 내가 공통적으로 느꼈던 한 문장을 책에서 찾으라고 하면 이 문장일 것이다. 결국, 나를 구성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 나의 능력은 어디까지이고, 나의 신념은 무엇이고, 나의 사랑은 무엇이고, 결국 나의 세상은 무엇이냐는 것. 기술의 비약한 성장과 지대한 발전으로 이 상상이 모두 현실이 된다고 한다면, 더욱 중요한 것이 결국 ‘나’의 구심점이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무엇을 취하는지 잘 알아야 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를 읽었을 때가 생각난다. 외계인, 혹은 제3의 가상 존재에서 한낱 인간을 바라보는 독특하고도 눈을 뗄 수 없는 흥미로운 이야기들. 창의력에 감탄했었다.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은 관점이 정반대이다. 지극히 인간의 관점에서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고 예측하고 생각한다. 역시나 창의력에 감탄한다. 지극히 핍진한 나의 세상에, 놀라운 핍진성의 창조적 세상이 들어온 것이다. 많이 곱씹고 되새김질한다.


비선형적 창의성이 비가역적 세상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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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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