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멀어지기 위한 달리기를 응원해 - 보통의 카스미 [영화]

혼자 잘 지내는 사람, 카스미
글 입력 2023.07.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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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카스미 LOVE MYSELF 포스터.jpg

 
 

난 연애도 안 하고 싶고

애초에 그런 감정도 없고

혼자서 살 수 있고

그게 쓸쓸하다고

생각한 적 없어

불행하게 느낀 적도 없어

이상해 보일 수 있지만

이게 나인 걸 어떡해?

 

'남의 연애가 역시 제일 재미있다.'라고 외치는 연애 리얼리티가 가득한 세상에서 카스미는 홀로 태어난 상태 그대로 살아가고 싶어 한다. 누군가는 비혼주의자, 혹은 무성애자로 그녀를 부를 수 있지만 그런 이름들은 잠시 내려놓고 그의 뒤를 밟아보자. 특별하지도, 특이하지도 않은 '보통의 카스미'를 소개한다.

 

"카스미 씨에게 첫눈에 반한 것 같아요", "우린 친구 이상이라고 생각했어."

 

회사 동료부터, 우연히 만난 사람, 친구, 가족까지도 왜 그녀에게 아직까지 혼자냐고 묻는다. 그리고 다가오는 남자들은 하나같이 부담스럽다. 처음부터 카스미는 혼자였는데 하나가 아닌 둘이 완성형 삶이라니, 그녀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사회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어쩌다 끌려간 맞선 자리에서 만난 남자와는 혼자인 삶이 더 편하다는 공통점으로 뭉치기도 하고, 아주 오랜만에 만난 친구 마호와는 다시 단짝이 된다.

 

그래서 그녀는 곧잘 오해를 받는다. 미팅인 줄 모르고 끌려간 자리에서 예의 바르게 굴고 동의 없이 맞선에 끌고 간 어머니한테 매몰차게 굴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베푸는 인정은 곧 이성적 호감으로, 연애를 하고 싶다는 의사로 전달된다. 그렇게 혼자이고 싶은 진심을 오해를 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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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미의 삶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잔잔하지만 멈추지 않는 파도'가 아닐까.

 

그저 흐르기만 하는 수동적인 삶으로 비칠지 모르나 실은 그녀의 일상은 쉬지 않는 파도를 따라 오르내리고 있다. 새로운 도전과 실패, 그리고 소소한 성공이 무수하다 뜻이다. 친구의 권유로 유치원 보조교사로 일하며 만든 동화 UCC는 그녀가 참고 있던 발화의 시작이다.

 

무도회에 초대받지 못한 신데렐라, 사실은 그녀도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면? 이란 물음으로 시작해 결혼이 성공이라는 공식에 물음표를 던진다. 밤을 새우면서도 내내 즐거운 표정을 잃지 않던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비록 신데렐라 이야기는 끝까지 재생되지 못하고 작은 실패로 남지만, 실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음을 깨닫는 데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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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로와 카스미의 아버지도 영화 속 흥미로운 포인트다. 입을 꾹 닫고 있는 건 카스미만이 아니다. 우울증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면서도 가장으로서 역할을 다하기 위해 고전한다. 기분전환을 위해 줄넘기를 하거나 카스미의 첼로를 늘 새것처럼 관리해놓는 식으로, 전형적인 가장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

 

음악 학부를 졸업하고 콜센터에서 일하던 카스미가 마침내 첼로를 그만두겠다고 말할 때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끄덕인다. 마호의 결혼식에서 마지막 연주를 하는 카스미의 표정은 어딘가 평온해 보인다.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인정해 주는 친구를 다른 단짝에게 넘겨주어야 하는 그녀는 쓸쓸했을까, 아니면 다시 익숙한고 편안한 혼자의 자리로 돌아갔을까. 사람의 목소리와 가장 비슷하다는 첼로 연주를 통해 그녀의 진심 어린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카스미가 첼로를 연주하는 장면과 가족들 앞에서 끝내 울음을 터뜨리는 아버지에게서 그녀가 혼자여도 괜찮다고 소리치는 모습이 오버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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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등장만으로 여운을 주는 덴도도 있다. 5부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몇 마디도 안 하는 그의 존재는 강렬했다.

 

카스미가 스스로를 무한 긍정할 수 있도록 그저 끄덕여주는 인물이다.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귀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녀가 왜 <우주전쟁> 속 톰 크루즈를 좋아하는지, 어쩌다 신데렐라 이야기를 각색하게 되었는지 묻지 않지만 덴도는 이미 둘이 같은 부류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며 공감하고, 소소한 유머에 웃음을 터뜨리는 관객인 우리가 바로 덴도가 아닐까. 이 영화가 삶에서 차지하는 게 단 1%로도 안되겠지만 분명 강렬한 여운을 남겨준다. 달려나가기만을 요구하는 삶에서 나와 같은 존재가 있다는 것이 주는 반가움이 그것의 정체다. 외로움 싸움이 아닌 같이 뛰는 마라톤처럼 분위기가 일순간 바뀌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우주전쟁> 속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톰 크루즈의 모습을 좋아하는 카스미에게 그게 어떤 영화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묻는다. 늘 앞을 향해 달려나가는 톰 크루즈가 아닌 쫓겨서 달려가는 모습을 좋아한다고 그가 답한다.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게 멋있을 수 있다는 걸 카스미는 말하지 않고도 보여준다. 단지 그게 뒷걸음질이었을 뿐이지, 그녀는 계속 걷고, 달려왔다.

 

덴도를 뒤로하고 달려가는 마지막 장면에서 비로소 그는 전력질주한다. 단 한 사람이라도 끄덕여준다면 그녀는 지치지도 않고 계속 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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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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