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정함이 쥐고 있는 총과 칼 [도서/문학]

글 입력 2023.07.22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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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을 식혀 줄 스릴러 소설 『칵테일, 러브, 좀비』를 소개한다.

 

『칵테일, 러브, 좀비』는 장르 소설계의 샛별, 조예은 작가의 첫 번째 단편집이다. 조예은 작가는 크고 작은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을 다정하게 바라보고, 이들을 위해 마땅히 총과 칼을 겨눈다.

 

짧지만 묵직한 네 편의 소설은 통쾌한 재미와 함께 이야기에 스며들어 있는, 실존하는 폭력의 참상을 낱낱이 보여준다.


미묘한 가시의 대범한 폭력 <초대> - 채원의 목에는 17년째 가시가 걸려 있다. 채원의 남자친구인 정현은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채원을 바꾸어 나간다. 정현의 말은 마치 채원의 목에 걸린 가시와 같아서 미미한 것 같지만 계속해서 채원을 괴롭힌다.

 

채원은 정현과 원만한 관계를 이어가지 못하던 중에 정현의 핸드폰에서 ‘태주’라는 낯선 여자에게서 온 문자를 발견한다. 불안해진 채원은 ‘태주’에 대해 추적하는데 태주에게서 먼저 초대장이 날아온다. 차를 타고, 달려간 그곳에선 태주가 채원에게 피가 묻은 손으로 악수를 청한다.


다정한 참견 <습지의 사랑> - [물은 어째선지 무서워졌다. 저렇게 자신을 직시하는 눈빛은 너무 오랜만이었다. 어쩌면 유령이 된 후로 처음일지도. 공포에 떨거나 화내거나 욕을 지껄이지 않고 자신을 보는 눈빛은 정말로 처음이었다. 그런 시선에는 면역이 없었다.] - p.49 <습지의 사랑>

 

하천과 숲, 물과 그 애, 그리고 여울과 아영. 이들은 무료하고 외로웠던 삶에 잔잔하게 끼어들어 서로의 곁에 남는다. 이렇게 아름다운 귀신의 사랑이라니. 그리고 그 사랑을 망치는 인간의 오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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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증하는 아빠에게 <칵테일, 러브, 좀비> - 회사에서는 성실하지만, 집에서는 당신이 왕인 줄 아는 가부장적인 아빠. 그런 아빠가 좀비가 되었다. 엄마는 아빠를 정부의 생체 실험에 넘길 수 없다며 좀비가 된 아빠를 집에 숨기고 있다.

 

날이 갈수록 아빠의 폭력성은 심해지고 엄마를 공격하기에까지 이른다. 이제 남은 선택지는 하나다. 나의 손으로 아빠를 죽이는 것. 사랑하지 않지만, 미워하지도 않는 아빠를 내 손으로 죽일 수 있을까?


폭력의 필연성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 - 여기 죽음에 관한 두 이야기가 있다.

 

첫 번째 이야기. 지방에서 올라와 자취하는 영희는 스토킹으로 괴로워 한다. 모두가 영희의 고통을 외면할 때 손을 건네는 찬석이 있다. 그리고 찬석은 스토커에 의해 죽었다.

 

두 번째 이야기.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였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아버지를 죽였다.


죽음은 안타깝지만, 두 이야기는 분명히 존재한다. 세상에는 안타깝지만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있기 마련이다.

 

아담한 판형의 책 한 권으로 더위를 물리칠 수 있었다. ’재미있다’는 생각과 동시에 이 이야기로 폭력까지 구원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이 스산함이 소설에만 존재하기를, 소설에만 머무르기를.

 

 

[오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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