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2023 서울일러스트레이션페어 - 서일페로 트렌드 읽기

글 입력 2023.07.19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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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8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일러스트레이션페어에 다녀왔다. 일명 서일페. 여러 일러스트 작가님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몇 년 전에 방문했을 당시 눈도 즐겁고 마음도 뿌듯한 기억이 있어 100% 신뢰하는 마음으로 올해 역시 방문을 결심했다. 근데 웬걸. 그 인기가 심상치 않다. 사진이 증명하듯 입장 줄부터 엄청난 열기가 느껴졌다. 동서남북 어디를 둘러봐도 서일페에 입장하려는 사람들이 끝없이 서 있었다.

 

최근 일러스트레이션, 문구, 각종 실물 굿즈 등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고 느꼈지만 이렇게 많은 이들이 모일 줄은 몰랐다. 아주 거대한 축제 그 자체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단 사람들이 물밀듯 밀려들어도 한가지 확실했던 건 모두의 얼굴이 제법 상기되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표정이 밝다. 설레는 마음이 느껴진다. 다들 지갑을 활짝 열 준비를 하고 온 듯. 이번 달 정말 보릿고개인 나조차 꾸역꾸역 지갑을 열 수밖에 없었으니 말 다했다.


개인적으로는 일러스트레이션 작품과 굿즈를 마주할 수 있어 뜻깊기도 했지만, 이를 들여다보니 사람들의 취향이 어떠하고 라이프스타일이 어떠한지 그 맥락이 아주 잘 느껴져 흥미로웠던 전시였다. 귀여움으로 대동단결하는 시대다. 다양한 분야의 일러스트를 접할 수 있었지만 귀여움을 장착한 작품이 압도적 다수에 압도적 인기였다. 흥미롭게도 다크하든 러블리하든 그 종착지는 큐트다. 하드코어한 작품도 결국 쿠로미 계열의 깜찍함을 겸비하게 된, 귀여움으로 하나된 모습. 이렇게까지 귀여운 무언가에 열광한 때가 있었을까? 오늘은 서일페를 돌아보며 느낀 이 취향의 시대에 대한 단상을 풀어본다.

 

서일페로 트렌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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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세상을 구한다


21세기 제일의 카피는 무엇일까. 우선 '고양이가 세상을 구한다'는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지 않을지. 이 말을 빼고는 이 세계를 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역사 속에서 꽤 오랜 기간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던 고양이의 위상이 긍정적인 의미로 전복되기 시작했다. 많은 것을 나타낸다. 변화한 생활 방식으로 늘어난 반려묘와 그의 집사들, 이전보다 인식이 개선된 동물권에 대한 논의, 고양이라는 존재를 원하는 만큼 들여다볼 수 있는 각종 영상 및 이미지 기반의 채널까지 '고양이가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변화가 필요했다.


이 모습은 서일페 전시장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지나가는 분의 한 마디가 기억에 남았다. '고양이 진짜 많다' 말 그대로 온 곳이 고양이 투성이였다. 귀여움의 대명사가 된 고양이가 다양한 화풍으로 전시대를 채우고 있었다. 수많은 고양이 계정의 랜선 집사를 자처하는 나지만 근본적으로는 개파인데, 그래서인지 고양이가 이토록 많음이 더욱 잘 느껴졌다. 고양이를 아끼고 귀여워하며 사랑하는 세계. 그 특성을 깜찍하게 재해석한 작품이 많아 눈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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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하고

응원하는


거닐기만 해도 마음의 위로를 얻는다. 우리는 누군가의 응원이 절실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양이다. 수많은 캐릭터가 이름도 모를 대중을 향해 진심어린 응원을 던지고, 이곳을 방문한 이들은 이에 크게 감응했다. 그렇지 않아도 귀여움에 크게 위로받는데, 귀여운 애들이 자꾸 괜찮다고까지 말해주니 마음에 정말 큰 위안이 된다. 그렇게 밍숭맹숭하고 순수한 표정으로 "느려도 괜찮아" 나 "넌 이미 잘하고 있어" 같은 얘기를 들으면 철썩 믿을 수밖에 없다. 최고심이 시작한 열풍일지도. 전반적으로 이런 감성을 담은 캐릭터의 뉘앙스는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위로받고 싶은 사람들에게 마음에 힘이 되어주는 일러스트가 참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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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받거나

혹은 사랑스럽거나


많은 캐릭터가 킹받음을 자처하고 있었다. 대체 '킹받음'이 무엇인가 싶지만 그 개념을 이해하고 나면 이 단어를 본 순간 그냥 느껴지게 되는 것. 열받게 만든다고 해야 할지, 황당한 감정에 가깝다고 해야 할지, 어쨌든간 킹받는다는 것은 눌러 두었던 무언가의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이전에는 없었던 독특하고 자극적인 방식으로 뒤통수를 살짝 치는 느낌이랄까. 최근에 들어서는 어쩌면 위트 있음의 다른 말이다.


전시장에는 킹받아서 진솔하고 사랑스러운 작품이 가득했다. 이 험한 세상에서 그 작은 몸으로 당차게, 어딘가 삐뚤어진 눈과 손짓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나조차 자신감이 넉넉해지는 기분이 든다. 유해한데 무해하다.


'레터에잇' 부스는 특유의 강력한 카피로 부스 앞에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전봇대 어디엔가 붙어있음직한 투박한 홍보 스티커를 닮은 여러 문구가 판매되었는데, 재밌게도 부스와 스태프 분들 역시 공사장 콘셉트로 꾸며져 있었다. '경 아무것도 안함 축' '입을 꼭 닫아주세요' 같은 유머러스한 문구에 웃음이 난다. 속으로만 중얼거리던 문구가 이렇게 시각화되어 있으니 묘한 쾌감도 든다. 또 특유의 째릿한 눈망울이 인상적인 '왈맹이' 부스는 이른 시간부터 매진인 굿즈가 다수였다. 왈맹이는 어떻게 이름도 왈맹이. 원하는 만큼 눌리고, 일그러지고, 삐죽빼죽하게 그려진 캐릭터에 자꾸 시선이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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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즈 입양의

시대


대 입양의 시대다. 분양이라는 말보다 입양이라는 말이 익숙하다. 그 기저에는 내 외연의 것들을 더 소중하게 대하기 시작하는 태도가 바탕이 된다. 생물에게도 그렇고 무생물에게도 그렇다.


이제 우리는 인형도 '입양' 한다. 가족으로 맞이하는 것이다. 애착의 대상이 더 다양해졌다. 일단 나만 해도 농담곰과 함께 살고 있다. 최근에는 아이돌 굿즈가 다양화하면서 손인형을 데리고 다니는 모습을 심심찮게 보는데, 대롱대롱 다양하게 꾸미는 키링의 인기와 결부하므로써 더더욱 인형이나 굿즈가 한 사람의 취향을 가득 집약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서일페 전시장에서 압도적으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부스를 보면 입체적인 굿즈를 파는 곳이 많았다. 서일페 굿즈의 대부분은 다꾸 탑꾸 등등 꾸미기 열풍에 힘입어 압도적으로 스티커가 주를 이뤘고 그 외에는 엽서나 작은 포스터 등이었는데, 종종 드물게 오브제 류를 전시하는 부스가 있다 하면 무조건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특히 인형과 도자기 오브제가 눈에 들어왔다. 생동감 넘치는 귀여움에 마음을 빼앗긴다. 실질적인 기능이 없어도 상관 없다. 힘든 순간마다 손에 폭 안기는 귀여움으로 마음을 달래줄 아이가 나와 함께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반려 인간, 반려 동물, 그리고 이제는 반려 인형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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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된 어제

y2k


유행은 돌고 돈다. '그 시절'에 봤던 일러스트가 전시장 곳곳에서 시선을 제법 사로잡았다. 패션도 y2k, 일러스트도 y2k다. 실사화에 가깝거나 선화가 확실한 인물 묘사의 일러스트나, 세기말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비주얼의 인물 일러스트도 수요가 높았다. 나의 패션 취향이 담긴 일러스트를 구매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레트로하고 키치한 스타일 역시 눈에 띄는 사랑스러움을 자랑했다. 팝하고 달콤한 톤에 홀로그램 컬러를 가미한 아메리칸 스타일의 레트로, 작고 반짝이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그려넣은 듯 키치한 분위기의 작품은 그 강렬한 비주얼만으로 시선을 머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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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꾸 라이프에

공예 감성 더하기

 

말랑깜찍한 비주얼의 캐릭터나 일러스트가 줄이은 탓인지 예술적인 감각이 강한 작품이 인상깊게 남았다. 세밀한 묘사력이 돋보이는 실사풍의 일러스트는 그래픽 디자인을 입어 그 세련됨이 배가되었다. 특히 여름을 겨냥한 것인지 바다를 소재로 한 그림이나 몽환적인 우주를 담아낸 작품이 많았다. 신비로운 심해 생물과 은하수가 수놓은 전시장은 여름의 무더위를 그 자체로 한풀 꺾이게 만든다.


또 주목할만한 주제는 한국적 정서. 자개를 형상화해 이를 그래픽으로 풀어낸 작품이나 한국 전통 무늬 혹은 색을 연상케하는 요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 종종 발견되었는데 평소에 쉬이 접할 수 없는 무드라 자꾸만 지갑을 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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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들을

많이 얘기해요


'감상'하고 '구매'하는 의미로 참여했으나 서일페의 진정한 가치는 '소통'에 있었다. 일러스트레이터의 팬인 분들은 반짝이는 눈으로 응원의 말을 건네거나 작가님께 선물을 드리기도 했다. 그러면 작가님은 또 반짝이는 눈으로 방긋 미소지으며 화답한다. 생각해보면 팬미팅이 아닌 이상 서일페처럼 좋아하는 작가님을 가까이 대면할 수 있는 곳이 또 어디있나 싶다. 소통을 통해 작가와 팬이 모두 마음의 힘을 얻을 수 있는 장이었다.


더욱이 최근에는 팬 문화의 확장이 이루어지고 다양한 채널로 작가님과 내적 친밀감을 쌓을 수 있는 만큼 작가와 팬의 교류가 더욱 긴밀하게 나타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사람이 너무 많아 힘겨운 물리적 한계는 있었지만... 유튜버로 활동해오시기도 한 해보 작가님의 내일클로버 부스는 한마디 건네거나 사인을 받으려는 분들로 북적였다. 또 곳곳에는 현장에서 일러스트 작업을 하시는 작가님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아하는 작품이 눈앞에서 탄생하는 것을 감상할 수도 있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이들이 한마음으로 모인 곳. 좋아하는 것들을 많이 얘기하다 보니 좋은 기운이 흐를 수 밖에 없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한껏 얻을 수 있었던 페어였다.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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