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타오르는 사랑을 춤추다, 베르나르다 알바

사랑하는 여성은 두려움이 없다
글 입력 2023.07.18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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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다 알바>는 1930년대 남부 스페인을 배경으로 하는 뮤지컬이다.

 

베르나르다 알바는 첫 번째 이혼을 겪고, 두 번째 남편으로 안토니오를 만나지만 그마저 평탄하지 않다. 안토니오는 외도를 저지르고 끝내 비극의 죽음을 맞는다. 남편이 죽고 베르나르다 알바는 문을 걸어 잠그고 다섯 명의 딸과 늙은 어머니를 집 안으로 고립시킨다.

 

 

2023 베르나르다 알바 보도용 (4).jpg

 

 

공연은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무대 위 배우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 복장을 하고 있다. 검은색 복장, 곧게 닫힌 문, 어두운 조명은 밖으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다섯 딸의 심경을 대변한다.

 

베르나르다 알바는 집 안에서 일어나는 어느 소식도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한다. 그러면서 늙은 어머니를 가두고 다섯 명의 딸들을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만든다.

 

기혼 여성의 내조를 강조하고 여성의 활동 영역을 안으로 제한하는 것은 실제로 많은 작품에 등장한다. 이를 영문학에서는 '집 안의 여성(Domestic Woman)'이라 부르는데, 결혼으로 상처받은 여성(이전 세대)이 또 다른 여성(후 세대)을 가둔다는 설정은 억압이 또 다른 억압을 낳아 세습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두 남편으로부터 받지 못한 사랑, 오랫동안 그녀를 짓누른 결핍이 딸들을 향한 집착과 통제로 나타나는 것이다.

 

베르나르다 알바에게 '결혼'은 사랑이 아니다. 그녀의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과 뻬뻬의 결혼 상대자로 첫째 딸을 지목하는 것으로 볼 때, 베르나르다 알바에게 결혼은 사랑의 결실이 아닌 수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 딸 앙구스티아스뿐만 아니라 나머지 네 명의 딸들도 뻬뻬를 흠모한다는 설정은 상당히 흥미진진하다. 그럼에도 베르나르다 알바에게 선택된 한 명만이 사랑의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사랑을 더 비극적으로 만든다.

 

사랑받지 못한 다섯 명의 딸들이 사랑을 추구한다는 점이 한 편으로는 모순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 베르나르다 알바의 비틀어진 사랑이 어쩌면 인간성의 한 축이라고 할 수 있는 딸들의 사랑이라는 감정은 검게 칠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2023 베르나르다 알바 보도용 (3).jpg

 

 

뻬뻬와 결실을 맺지 못한 채 끝내 아델라는 죽음을 선택한다. 아델라의 시신을 보고 내뱉는 베르나르다 알바의 말이 충격적이다. 베르나르다 알바는 아델라가 처녀로 죽은 것이라고 말한다. 칠흙같이 어두운 배경 속 하얀 드레스는 처녀로 죽은 아델라를 더욱 강조한다. 이는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과 더불어 여성의 순결(Virginity)을 강조하는 담론이 당대에 지배적이었음을 보여준다.

 

공연을 보면서 들었던 한 가지 의문점은 뻬뻬 배역이다. 뻬뻬는 남성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이마저도 여성 배우가 대신한다. 그 이유에 대해 고민한 결과 스스로가 내린 결론은 이러하다. 여성 배우들이 주체가 되어 이끌어가는 무대에 남성이 등장하면, 그것도 다섯 명의 여성들이 흠모하는 대상인 뻬뻬로 나오면  뮤지컬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 18명의 여성 배우들이 주체가 되어 이끌어가는 것이 본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의 특색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끝으로, 아델라의 죽음이 주체적인 사랑의 실현인지에 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으나 억압에도 불구하고 다섯 딸들이 '사랑'을 추구했다는 점, 다시 말해 사랑을 감정으로 남겨두지 않고 춤을 추듯이 각자만의 방식대로 이어나가려 했다는 점에서 여성이 추구하는 사랑이 당대 사회적 담론이 일컫는 사랑과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사랑'의 크기는 엄청나기에 한 사회가 다 담아내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다섯 명의 딸들이 뿌리내린 억압을 뚫고 자유를 추구하는 것처럼 여성이 품은 사랑은 당대나 지금이나 훨씬 더 가공할 만한 위력을 가진다.

  

 

[박진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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