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름의 간지럼 [문화 전반]

간지럼에 힘껏 떠밀리다
글 입력 2023.07.19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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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대학생이 된 나의 여름방학 주특기는 어디도 가지 않고 침대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것이었다. 2020년, 새내기에게 처음으로 주어진 여름의 방학 어느 날. 코로나바이러스로 모든 생활이 제약되어 학교 근처 공기를 맡아보지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채로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원체 땀이 많은 체질이었기에, 조금만 움직여도 여름철이면 옷이 흠뻑 젖었다. 유치원에 다닐 때면 친구와 땀이 흐르는지도 모른 채 놀이공원을 활보하고 다녔다. 또 중학생 때는 복잡한 홍대거리를 몇 시간이고 걸어 다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무더위에 앗아가는 에너지가 많아 지치기 십상이었고 그런 계절을 이길 자신이 없었다.

 

 

여름의나무와햇살.jpg

 

 

여름은 그런 나를 놀리는 야속한 계절이었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누워만 있어도 흐르는 땀은 곧 여름이 태우던 간지럼이었다.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킨 그때야 창틀 너머로 제멋대로 흔들리던 나무들을 발견했다. 문을 열자, 사막에서의 모래바람이 흩날리듯 고요하게 바람이 꽤 넉넉하게 불었고, 쌓여만 가던 두려움을 날렸다. 마침 내리고 있었던 땀 몇 방울과 열을 식히기 위해 나를 둘러싸던 공간 밖으로 나섰다. 일종의 생존본능처럼, 나도 모르게 반대를 찾아 나선 것이다.

 

마냥 뜨겁지만은 않았던 그날은 더위가 두려웠던 고등학교 때의 여름방학을 떠올리게 했다. 2018년의 여름방학은, 친구들과 입시 고민을 나누며 날씨만큼이나 후덥지근한 열정을 매만지곤 했다. 그러다 면학실로 문 하나를 경계 삼아 들어오면, 아예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한기 가득한 에어컨 바람은 열기에 흐물거리던 정신을 다잡게 했고 수다스럽게 올랐던 마음의 열을 순식간에 식혔다. 뇌까지 닿아 빠삭하게 시리던 냉기. 한껏 차분해진 마음으로 다시 공부에 열중했다. 이렇게 보자니 여름은 깜빡이는 전구처럼, 힘 없이 축 처지면서도 어딘가에 반짝! 하며 빛나는, 그런 시원한 매력도 숨어있었다.

 

또 꿉꿉하게 뜨거운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마을버스를 타던 날을 기억한다. 어김없이 버스의 문은 내가 존재하던 세상의 경계선이 되었다. 발을 딛자마자 불어오던 냉기는 이질적이면서도 잠시 꿈을 꾸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버스 안의 에어컨 바람에 머리가 지끈거릴 때면 살포시 창문을 열어 따듯한 바깥바람에 머리를 기댔다.

 

더웠다가 추웠다가를 무한히 반복하던 경계에 서 있다는 사실. 누군가 끊임없이 간지럼을 태우는 듯, 참을 수 없어 멈추지 않고 새로운 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여름은 적당한 것을 넘기지 못하고 기어코 끓게 만든다."

 

- 『아무튼 여름』, 김신회

 

   

책 『아무튼 여름』에서의 한 구절이다. 여름은 적당한 것을 모르고 그 이상을 탐낸다. 그래서 어떻게든 나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날씨에 더우면 더운 대로, 또 에어컨 바람에 추우면 추운 대로, 그 반대의 무언가를 찾게 한다.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어질 때쯤, 생각을 멈추는 줄넘기가 발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 등줄기에는 땀방울이 흘렀다. 나선 지 채 몇 분이 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제야 흐르던 땀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땀방울은 옷과 피부를 경계로 어느 쪽에도 흡수되지 않은 채 아스라이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쪽으로 흡수되는지는 상관없었다. 내 피부 쪽이든, 옷 쪽이든 어쨌든 둘 다 내 쪽으로 흡수되는 것이 낯선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밖에 나서 걸으며 흘린 땀방울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내 것이 된다.

 

땀이 많은 체질은, 아마 스스로 흡수할 수 있는 삶의 가르침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듯하다.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다 버거울 때면 반대로 발걸음을 향하면 된다. 온기와 냉기를 넘나들었던 그때처럼 말이다.

 

*

 

여름방학은, 공백이다. 무엇이든, 어떻게든 채워보라는 암묵적인 백지다. 가만히만 있지 말라는 여름의 간지럼이다.

 

그것으로 이미 흔들리던 여름의 나무들은 우리더러 말한다. 가만히 있는 일, 걷는 일 모두 땀을 흘리는 건 마찬가지이므로 여름방학의 간지럼에 과감히 떠밀리라고. 어떻게든 흐를 땀이라면 걸어서 온몸으로 느끼고, 어떤 방식으로든 흡수하라고. 2020년 여름방학이 내게 내린 여름이다.

 

 

"마냥 아이 같다가도 결국은 어른스러운 계절.

내가 되고 싶은 사람도 여름 같은 사람이다."

 

- 『아무튼 여름』, 김신회

 

 

[박정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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