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보아야 비로소 다가오는 죽음 - 다크투어, 내 여행의 이름 [도서]

사진으로는 알 수 없는 비극의 실재를 여행하다
글 입력 2023.07.21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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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쓰기 시작한 지금, 총 여섯 개의 챕터 중 한 챕터를 아직 읽지 못한 상태다. 한 책을 전부 다 읽을 집중력이 부족해서 더디게 읽은 적은 있어도, 감정 소모가 너무 커서 더디게 읽은 책은 처음이다. 무거운 책이다. 그러나 <다크투어, 내 여행의 이름>은 분명히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다.

 

국제학을 전공하다 보면 자주 접하게 되는 주요 사건들이 있다. 기계적으로 익숙해진, 아주 낯선 울림의 지명들도 있다. 비엔나, 사라예보, 카이로, 아우슈비츠, 워싱턴, 킬링필드... 대부분은 어떤 조약의 이름으로, 몇몇은 그 조약의 발단이 된 ‘비극’의 장소로 소개된다. 이 책은 그중 ‘기록된 비극’이 일어난 곳을 여행한 작가의 수기다.


책의 서문에서 작가는 ‘다크투어리즘’을 소개한다. 다크투어리즘은 *넓게는 인간사의 ‘어두운’ 측면, 곧 죽음과 비극에 관련된 역사적 장소를 여행하는 모든 형태를 의미하고, 좁게는 단순한 재미나 호기심보다는 좀 더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역사적으로 중요한 전쟁이나 학살 현장 또는 대규모 재난이 일어났던 장소를 찾아 그 사건을 기리며 교훈을 되새기는 여행을 말한다. 다크투어리즘은 학술적 정립이 1996년에 이루어진 신생 용어로, 아직 자세한 구분이 학계에서 합의되지 않은 개념이기도 하다. 이에 작가는 범위가 넓고 모호한 개념 대신 개별 여행을 가리키는 의미에서 ‘다크투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본 책의 7쪽.

   

다크투어리즘이 처음이 아닌 독자라도 서문을 꼭 읽고 넘어갈 것을 추천한다. 그가 왜 다크투어를 시작했는지, 그리고 왜 책을 통해서 그 경험을 전하고자 하는지 그 이유가 서문에 있다. 공감도 학습이 필요한 일이라는 그의 문장은 책을 읽는 내내 당신의 머릿속을 맴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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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우리는 타인의 불행을, 그것도 내가 속하지 않은 집단의 불행을 목격할 때 어떻게 반응하는가? 대부분은 놀람-동정(연민)-안도의 순으로 반응하곤 한다. 불행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흠칫거리고, 그 당사자를 가엽게 바라보고, 내가 그가 아님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항상 이 ‘안도’가 마음에 걸렸다. 책에서 분명히 말하고 있듯, *흔한 선 긋기와 안도감은 가능한 최악의 반응들이다. 타인의 불행에 안도감을 느끼는 것은 멋대로 규정한 제3세계를 향해 안일한 우월감을 느끼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우월감이 안일한 이유는 고통은 너무나도 쉽고 빠르게 우리를 찾아오며, 그 선은 손바닥 뒤집듯 다르게 그일 수 있기 때문이다. *본 책의 87쪽.

 

가장 잘 알려진 예시가 2장에 등장하는 ‘죽음 공장’, 아우슈비츠다. 백오십만 명이 살해당했다. 가스실에서, 공장에서, 길거리에서 시체가 생산됐다. 그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 ‘유대인’이었다는 것이다. 유대인이라는 인종적 특징만으로 백오십만 명을 쓸어낼 수 있었다는 건, 유대인이 아닌 다른 인종 또한 그 대상이 될 수 있었음을 뜻한다. 히틀러는 연설 중 “도대체 지금 와서 누가 아르메니아인 절멸을 이야기하는가?”라고 말한다. 그 배경에는 오스만 제국에서 ‘절멸’당한 약 백오십만 명의 아르메니아인 시체가, 한 민족을 학살하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건을 지워낸 히틀러의 선배들이 있다.


수많은 불행을 다룸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불행 포르노가 아니다. 남의 고통을 전시함으로써 기념관 속의 희생자들을 학대하고자 쓰인 책이 아니다. 당연히, 독자가 ‘오, 지금의 내가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서 너무나도 다행이야!’라는 식으로 안도하게 돕고자 쓰인 책도 아니다. 이 책의 목적은 작가가 여행을 통해 학습한 공감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에 있다.


작가 수전 손택은 그의 저서 <타인의 고통>에서 인쇄된 이미지를 통해 타인의 고통을 전시함으로써 그들이 무명의 희생자로만 존재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작가는 해당 지적에 대해 “*(...) 원래 그들이 우리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한다. 숫자였던 존재들이 한때는 사람이었음을 즉물적으로 깨닫는 것만으로도 일말의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본 책의 129쪽.


그 말에 공감한다. 단순히 ‘유럽 연합에서 튀르키예를 받아들이지 않는 명문적인 이유,’ ‘세계 2차대전의 끔찍함,’ ‘광복 직후의 과도기의 희생양’이라는 사실적인 기록 속 묻혀있던 개개인을 마주하는 것은 분명히 나와 사건의 거리를 좁혔다. 이 책을 읽으며 당신은 공감으로 한 걸음을 더 내딛게 될 것이다.

 

 

 

기록의 의의


 

작가는 여러 현장을 여행하며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솔직히 서술한다. 그가 느꼈던 슬픔과 절망, 분노와 괴로움은 사실적인 전시 설명과 함께 어우러져 독자에게 거북함을 주기도 한다. 한 시간을 넘게 책을 붙잡고도 몇 장을 읽지 못한 날도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작가가 12년간 여행하고 6년간 소화한 경험을 우리는 몇 시간만의 독서로 응축해서 소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덮으면서는 그 거북함이 기꺼웠다. 여러분이 이 책을 읽으면서 힘겨움을 느낀다면,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괴로움을 견디라고 조언하고 싶다. 그 과정에서 나는 아주 중요한 것을 배웠다. *사건은 일어났고 따라서 또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사실을 견디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프리모 레비,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247~248쪽.


이 책을 읽은 후, 내가 배운 단 한 가지만을 기억한다면 모든 기록에는 절망과 희망이 동시에 새겨져 있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책 속에서 만난 모든 사건들은 전부 거대 권력에 휩쓸려 죽임당한 사자의 기록임과 동시에 살아남아 어떻게든 끔찍한 기억을 보존하려 몸부림친 생자의 노력이라는 것을 잊지 않을 것이다.


나는 시인 네루다의 죽음을 둘러싼 살해 의혹과 그를 절망으로 밀어넣은 칠레의 쿠데타, 생전에 원했던 집에 묻히기까지 걸린 20년의 세월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시인의 생가가 그가 빚은 ‘형태 있는 시’처럼 아름다움을 끊임없이 감탄할 것이다.


나는 제주 4.3사건의 제대로 된 이름이 아직까지도 주어지지 않았음을, 제주도 비행 기지에서 발견된 백골들을, 다랑쉬 마을을 비롯한 중산간지대의 잃어버린 마을들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아픔에도 찬란한 제주의 자연과 자신이 지은 시 <제주의 기억>을 암송하는 고등학생의 담담함 또한 기억할 것이다.


슬퍼하고 분노하되 희망 또한 빠트리지 않고 기억하기. 그게 내가 책 <다크투어, 내 여행의 이름>에서 배운 기록의 의의이다.


 

[박주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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