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스스로를 성 안에 가둔 여자, 베르나르다 알바

글 입력 2023.07.16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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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 평화와 고요를 즐기고 싶어. 오늘도 무사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내 보호 안에서는 모두가 편하게 숨 쉴 수 있지.”


1930년대 초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한 마을. 두 번째 남편 안토니오의 죽음으로 그의 모든 재산을 상속받은 아내 ‘베르나르다 알바’는 치매 노모, 다섯 딸들 그리고 여러 식솔들을 통솔하는 가장이 된다. 가부장적 가장의 전형인 그녀는 남편의 8년 상이 치러지는 동안 온 저택을 봉인한 채, 정절과 침묵만을 강요하며 딸들의 의식주부터 시작해 모든 생활 반경과 욕망까지 통제하기 시작한다.

 

그때 첫째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자 장녀인 ‘앙구스티아스’가 ‘뻬뻬’와의 약혼을 서두르게 되자, 남몰래 그를 흠모하던 자매들은 질시, 열등감, 호기심, 불안 등의 감정을 표하며 동요하게 되고, 억눌렸던 욕망들이 얽히고설키며 가족들은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한 비극적 서사에 걸맞게 각 뮤지컬 시퀀스에서의 정제된 군무와 약동적인 플라멩코, 라틴 계열의 정열적인 선율과 국악의 창을 연상케 하는 한이 서린 대사, 원색과 무채색의 대비는 이같은 금기와 억압, 자유와 욕망의 충돌을 더 가시적으로 구현해낸다.


 

2023 베르나르다 알바 보도용 (1).jpg


 

본 극에는 남성이 부재한다. 자매들의 관심사인 ‘뻬뻬’는 극중 거의 유일하게 등장하는 남성이지만, 그마저도 여성 배우가 대리해 연기하며, 극은 그의 액션보다는 그를 둘러싼 자매들의 욕망에 집중하기 때문에 유의미한 롤을 쥐지 않는다. 또한 본래 가장이던 ‘안토니오’ 역시 극의 초입부터 고인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가부장적 권위는 소멸하지 않는다. 여성 가장인 베르나르다 알바에 의해 악습이 오히려 더 혹독하고 고압적인 방식으로 대물림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자는 성녀 아니면 창녀’라는 신념을 주입하고, 내내 ‘쉿’을 외치며 욕망을 봉인해야만 하는 여성의 숙명에 대해 일갈하다 결국 비극을 초래한 베르나르다 알바는 엄연한 빌런이다. 다만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잔혹하게 만들었는지 고뇌해볼 필요는 있다.

 

베르나르다 알바는 이미 두 번의 좌절을 겪었다. 극에서는 첫 번째 남편과의 비하인드를 부러 설명하고 있지 않지만, 그녀는 가정의 붕괴를 체험했고, 안토니오와 결혼하며 겨우 새 가정을 이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아마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문의 격에 맞게, 부모의 주선에 의해 혼인이 이뤄졌던 당시의 관례를 고려할 때 원치 않은 결정이었을 공산이 크고, 앞선 실패를 속히 덮기 위해 진행되었을 수도 있다.

 

게다가 극중 곡인 ‘베르나르다의 기도’의 가사에서도 드러나듯, 그녀는 순탄치 않은 결혼 생활을 꾸역꾸역 유지했다. 안토니오는 다른 시종의 몸을 탐했고, 아내인 베르나르다를 창녀와 진배없는 비참한 여자로 전락시켰다. 그 과정에서 베르나르다가 학습한 것이자 방어 기제로 삼은 것은 가정을 유지하기 위한 통제에 대한 집착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상처로부터 비롯된 집착은 점차 왜곡된 형태로 딸들을 향하게 된 것이다.

 

 

2023 베르나르다 알바 보도용 (4).jpg


 

뻬뻬와의 결혼이 달갑지만은 않은 ‘앙구스티아스’의 불안도, 여느 자매들처럼 연애를 꿈꾸지만 흉한 외모로 인해 겁을 먹고 절규하는 '마르띠리오'의 열등감도, 자유와 사랑을 갈구하는 막내 ‘아델라’의 외침도 베르나르다는 개의치 않고 묵살한다.

 

심지어는 베르나르다의 계략으로 뻬뻬가 총살된 줄 알고, 목숨을 끊은 아델라의 시신을 두고도 베르나르다는 처녀의 몸으로 죽었다고 고하라며 수차례 외친다. 그 억눌린 욕망들이 비명이 되어 돌아오는 순간에도 그녀는 단호히 ‘쉿’을 외친다.

 

그렇게 베르나르다는 학습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묶여 주인 없는 욕망에 통제된 채 성 안에 스스로와 모두를 가둔다.

 

악습의 피해자가 더한 가해자로 변모하는 아이러니, 결국 그녀의 규율 속에 함께 갇힌 딸들을 목도하며 눌러앉은 체증과 불편함은 도리어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 할 자유와 권리에 대해 사유하게끔 이끈다.

 

 

[김민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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