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순수했던 소년에서 믿음직스러운 청년으로 [공연]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속 라울 분석
글 입력 2023.07.15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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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오페라의 유령> 캐릭터 분석의 마침표를 찍을 주인공, 라울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라울은 팬텀과는 완전히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성격부터 배경까지 정반대이며, 빌런으로 정의했던 팬텀과는 달리 라울은 일명 ‘백마 탄 왕자’의 전형에 가까운 캐릭터이다. 하지만 그를 단순히 ‘백마 탄 왕자’로만 정의할 수 있을까? 그의 행동 속에 담긴 의미를 더 깊게 알아보도록 하자.

 

 

 

1. 비밀스러운 영역에 부딪힌 굳건한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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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울의 성격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현실주의적이고 논리적이며, 자기 주관이 강하다.


라울의 현실주의적이고 논리적인 면모는 크리스틴이 ‘음악의 천사’의 얘기를 꺼낼 때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음악의 천사’라는 이야기 자체가 동화 속에나 존재할 법하다는 것은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모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크리스틴의 이야기를 들은 라울 또한 ‘음악의 천사’를 그저 크리스틴 본인이 프리마돈나로 발돋움하게 되었다는 비유적인 표현이라고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음악의 천사’가 단순히 비유적인 표현은 아니라는 사실을 한 편지를 받고서야 깨닫게 된다. 같이 저녁 식사를 하고자 했던 크리스틴이 갑작스레 사라지더니, ‘크리스틴이 음악의 천사의 날개 아래에 있다’는 수상한 편지. 처음으로 의심한 대상은 당연히 그녀를 관리할 의무가 있는 극장주들이었지만, 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편지가 와있었다. ‘오페라의 유령’이라는 이름으로. 라울이 ‘오페라의 유령’이라는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천사’, 그리고 ‘유령’. 사실 그러한 별명 따위는 라울에게 큰 의미로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다. 현실주의적인 그에게는 너무나도 허황한 이야기 아닌가. 라울에게 중요한 것은 결국 그 수많은 편지들을 쓴 장본인이 자신을 ‘천사’와 ‘유령’ 따위로 포장하며 협박과 함께 온갖 요구를 하는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이 크리스틴에게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때 라울의 뚜렷한 자기 주관을 확인할 수 있다. 우유부단함이 없는 확실한 성격. 이 성격은 ‘크리스틴을 지켜야 한다’는 그의 핵심적인 가치관과 함께 앞으로 이어질 그의 행동에 개연성을 부여한다. 크리스틴을 지키기 위해 라울은 그 요구를 거부하고, 자신이 대신 5번 박스석에 앉게 된다.


하지만 그 결과는 매우 기이하면서도 처참했다. 칼롯타는 두꺼비 소리를 내며 큰 망신을 당하고, 조셉 부케는 죽었다. 라울은 팬텀의 행동이 단순한 장난 혹은 협박의 선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면서도 팬텀의 행위에 겁을 먹은 크리스틴을 안심시키기 위한 그의 말들에도 주목해볼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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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 this waking nightmare

This Phantom is a fable

Believe me, there is no phantom of the opera

 

- ‘Why Have You Brought Me Here?’ 中

 

 

No more talk of darkness

Forget these wide-eyed fears

I’m here, nothing can harm you

My words will warm and calm you

 

- ‘All I Ask Of You’ 中

 

 

첫 번째로, ‘유령’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아닌, 그저 한 인간이 벌이는 행위라는 사실을 라울은 분명히 한다. 두 번째로, 그 어떠한 위험이 닥치더라도 그로부터 크리스틴을 지키겠다는 것. 그 약속에는 찰나의 망설임도 없었다. 이 두 가지의 이야기에서 위에서 말한 라울의 성격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라울의 성격은 남들의 말에 쉽게 휘둘리던 크리스틴이 그에게 매료된 지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의견을 확실히 밝히는 것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단점이 되기도 한다. 항상 바른 생각만 가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른 단어를 빌려보자면, 자신의 생각이 늘 옳다는 ‘오만함’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이다. 그리고 그것이 라울의 발목을 (혹은 목덜미를) 잡았다고 생각한다.


라울은 가면무도회에서 팬텀의 모습을 실제로 확인하고, 마담 지리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가 어떤 과거를 가졌는지도 알게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것만으로 라울이 팬텀에 관해 알고 있는 정보가 충분하지는 못했다. 팬텀이 자그마치 3년 동안 오페라 극장에서 어떤 일들을 벌였는지 새로 온 후원자인 그가 알 길이 없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왜 팬텀이 그토록 크리스틴에게 집착하고 있는지 그 관계성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가 결국 내릴 수 있는 결정은 팬텀의 요구대로 크리스틴을 무대에 세우고 그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잡는 것이었다. 크리스틴에 대한 팬텀의 기이한 집착을 이용하려는 작전. 물론 이 작전 또한 크리스틴을 미끼로 하는 도박에 불과하다는 것을 라울 또한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외에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팬텀의 요구를 거부한다면 이전처럼 또 다른 위험한 사건이 생겨날 수 있고, 팬텀을 잡지 않으면 이 아슬아슬한 분위기는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 작전은 그가 생각해낼 수 있는 제일 나은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전의 오피니언에서 서술했듯 단순히 팬텀을 무력으로 제압하는 것은 그의 행각을 멈출 방법이 되지 못한다. 그가 팬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그의 작전이 실패한 가장 큰 이유였다. 그리고 팬텀이 무대 위로 올라오고 크리스틴이 그의 가면을 벗기는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상황은 라울에게 최악으로 치닫는다. 크리스틴이 위험에 처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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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ne, forgive me, please forgive me

I did it all for you, and all for nothing

(...)

For pity’s sake, Christine, say no!

Don’t throw your life away for my sake

 

- ‘Final Lair’ 中

 


크리스틴을 지키려 했던 계획이 오히려 크리스틴을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했으니, 라울은 거대한 죄책감과 절망을 느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팬텀에 대해 자세히 말해주지 않은 크리스틴을 탓하기보다 자신을 탓했고, 끝까지 그녀를 지키기 위해 차라리 자신을 선택하라고 한다. 라울을 선택한다면 그는 죽음을 맞이하겠지만, 크리스틴이 팬텀을 선택해 그가 살더라도 결국 크리스틴이 지하에 갇히기에 라울 자신은 삶의 의미를 잃고 죽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크리스틴이라도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크리스틴이 그녀만의 자비와 온정으로 팬텀에게 입을 맞추고, 팬텀이 그녀의 온정을 또 다른 온정으로 보답하며 크리스틴과 라울은 지하를 빠져나올 수 있게 된다. 그 장면은 크리스틴과 팬텀뿐만 아니라 라울에게도 나름의 성장의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자신의 의견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님을 깨달음으로써 제 성격이 ‘오만함’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차단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라울의 굳건한 성정과 크리스틴의 부드러운 성격이 조화를 이루며 서로를 배려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2. 꼬마 로티의 빨간 스카프를 주워준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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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 it be? Can it be Christine?

Long ago, it seems so long ago

How young and innocent you were

She may not remember me, but I remember her

 

- ‘Think Of Me’ 中

 

 

왜, 어떠한 계기로 라울이 크리스틴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뮤지컬에서는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라울의 시점에서 전개된 소설 <오페라의 유령>이 라울의 심리를 분석하기에는 더 쉬울 것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는 주연으로 급하게 교체된 크리스틴을 알아보았으며, 그녀와 함께한 유년 시절도 기억하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누군가를 기억하는 것에는 상당한 관심과 애정이 담겨있다. 어쩌면 라울은 이미 크리스틴을 사랑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크리스틴에게 다시 다가갈 때 그는 편지로 자신을 ‘샤니 자작’도, ‘새로운 후원자’도 아닌 ‘꼬마 로티의 빨간 스카프를 주워준 소년’으로 소개한다. 같이 이야기를 나눌 때도 함께한 추억을 먼저 꺼낸다. 하지만 크리스틴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에는 쉽사리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그 이후로는 오히려 크리스틴과의 현재와 미래를 약속하는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크리스틴과 과거에 엮인 일이 없음에도 그녀에게 수시로 과거를 회상시키는 팬텀과는 정반대의 성향을 보여준다.


그래도 라울은 다른 이들에게는 귀족일지언정 크리스틴에게만큼은 그저 ‘스카프를 주워준 어린 소년’이 되어주었다. 극장주들이나 마담 지리 등에게는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는 권위 있는 모습을 보이지만, 크리스틴의 이야기만큼은 귀담아들어 주고 그녀의 의견을 쉽사리 거부하지 못한다. 그녀가 당분간 약혼 사실을 공개하지 말자고 했을 때도 언젠가는 그녀를 이해하리라 생각하며 그녀의 말을 따른다. 크리스틴의 요구를 거부한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은 <돈 주앙의 승리>에 그녀를 무대 위로 세울 때뿐이었다. 그마저도 크리스틴을 지키기 위해서.

 

 


 

 

Then say you’ll share with me one love, one lifetime

Let me lead you from your solitude


- ‘All I Ask Of You’ 中

 

 

위에서도 잠시 얘기했던 ‘All I Ask Of You’의 내용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아직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도 전, 라울은 자신이 크리스틴에게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기보다 먼저 자신이 크리스틴을 지켜주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크리스틴이 원하는 ‘자유’, ‘안식처’, ‘빛’을 약속한다. 라울이 원하는 것은 자신이 크리스틴을 지킬 수 있도록 그녀의 곁을 허락하는 것. 그리고 함께할 미래를 약속하는 것. 그뿐이었다.


크리스틴을 지키고자 하는 행위도 어린 시절의 라울과 유사하다. 빨간 스카프가 바다로 떨어졌을 때 그녀의 스카프를 줍기 위해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던 것처럼, 크리스틴이 지하로 끌려갔을 때도 그는 도망치지 않고 망설임 없이 지하 호수 속으로 뛰어드는 사람이었다. 그 외에도 그는 올가미에 목이 매달렸을 때도 크리스틴의 안전을 먼저 생각하며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고자 한다.


크리스틴이 원하는 모든 것을 이뤄줄 사람.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기꺼이 제 몸을 바칠 수 있는 사람. 이러한 사람과 함께할 미래를 어찌 마다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게 라울은 크리스틴의 연인도, 안식처도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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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에서는 크리스틴과 팬텀에 비해 크게 주목받지를 못하는 인물이지만, 현실과 논리를 지향하는 그의 굳건한 성격과 오직 크리스틴만을 바라보는 순애보적인 면모를 통해 왜 크리스틴이 팬텀이 아닌 라울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더욱 자세하게 살펴본다면 이 인물 또한 상당한 매력을 지니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속 세 주인공 크리스틴, 팬텀, 라울에 관해 알아보았다. 각 인물을 총 세 오피니언으로 분리하여 서술하였지만, 정반대의 성향에 있는 팬텀과 라울 사이 크리스틴이 가지는 방향성의 변화, 그리고 세 사람 간 밀접하게 얽힌 관계를 파악하며 뮤지컬을 보아도 좋을 것 같다. 그 외에도 오피니언에서 서술하지는 못했지만 다양한 조연들의 개성 넘치는 성격과 스토리 또한 주목해볼 만하다.


곧 서울에서 이어질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 관한 기나긴 분석기를 이만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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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성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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