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모두의 어린 시절을 향한 다정한 눈길 - 비밀의 언덕 [영화]

글 입력 2023.07.14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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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가 좋았다는 말에 나는 늘 쉬이 공감하지 못한다.

 

기억도 제대로 나지 않을 유치원생 시절이 아니고서야, 내가 떠올리는 나의 어린 시절은 해맑고 행복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나는 꼭 지금처럼 생각이 참 많았기 때문에, 언제나 답답하고 피곤한 감정을 안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런 감정을 성숙하게 받아들이거나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다. 마음속 이야기를 하는 법을 몰라서, 혹은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묻어만 두던 얘기들도 많다. 어떨 땐 솔직한 마음을 우스꽝스럽고 서툴게 내보이다가 말실수를 하고 후회를 하기도 했다.


남들보다 조금 더 섬세하고 깊은 감정을 가진, <비밀의 언덕>의 ‘명은’이는 내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했다. 어떤 이들에게는 귀여운 구석이 없는 애어른 같이 느껴질 수 있겠지만, 삶의 즐거움보다는 앞으로의 삶의 방향성이나 스스로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일들에 더 눈이 갔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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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언덕>은 어른의 관점에서 마냥 순수하고 귀엽게만 보이는 초등학생의 모습을 그려내지 않는다. 어른들과 똑같이 인정받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걱정하거나 후회하고, 열등감을 느끼기도 하며, 숨기고 싶은 생각들을 품고 있는 인물로 표현한다.


명은이가 숨기고 싶어 하는 마음은 가족을 향한 것이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자 하고 환경 파괴에 관심을 가지는 자신과 달리 그런 의식이 전혀 없고 돈에만 관심 있는 것 같은 부모님을 창피하게 생각한다. 부모님이 변변한 직장에 다니는 일 없이 시장에서 젓갈 가게를 운영한다는 걸 타인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아버지가 제지 회사에 다닌다고 거짓말을 한다.


명은이의 세계에 파동이 일어나기 시작한 건 같은 학년에 쌍둥이(라고 알려진) 자매 혜진과 하얀이 전학을 오면서부터다, 반에서 유일하게 글쓰기 대회 수상을 하던 명은이를 제치고 이 자매들은 팀으로 작품을 제출해 더 큰 상을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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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혜진, 하얀이와 친해진 명은이는 ‘너희는 글쓰기 대회 나갈 때 얼마나 준비해?’라며 물어보지만, 그들은 대수롭지 않게 ‘몇 시간 정도’라고 대답한다. 글쓰기를 위해서 몇 날 며칠 주제와 관련된 도서를 독파하는 노력을 하던 명은이는 솔직함을 무기로 단번에 감동적인 글을 써내는 자매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시 단위로 개최된 가정의달 맞이 글쓰기 대회에서 가족에 대한 사랑에 대한 글을 제출했던 명은이는 다시 한번 가족에 대한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는 글을 써 내려간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과 이해받지 못하는 것들, 미움과 아쉬움을 담아 적는다. “저에게 가족은 물음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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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제출한 솔직한 글이 대상을 타고 신문에 실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명은이의 심경 변화를 섬세하게 나타낸 문승아 배우의 연기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솔직한 고백이 언제나 정답인 것은 아니다. 어떤 생각은 입 밖으로 내뱉었을 때 누군가에게 크나큰 상처를 남길 수 있고, 때로는 숨기는 게 좋은 마음도 있다.


명은이가 학교에서 반장이 되어 비밀 우체통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학급의 모습을 만들어갔던 것과 여러 책을 읽어 식견을 쌓아 가며 쓴 글이 거짓 되었다 말할 수는 없는 것처럼, 명은이는 ‘솔직하지 못해서’ 수상을 취소하고 싶었던 게 아니다.

 

가족에게 상처 대신 기쁨을 줄 방법으로서 마음을 숨기는 쪽을 택했을 뿐이다. 명은이의 담임 선생님이 말한 것처럼, 어떤 방식을 택하든 명은이에겐 분명히 가족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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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현실적인 고민들을 담백하고 잔잔하게 표현한 이 작품에는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도,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광경도 가득 담겨 있다.

 

화려한 블록버스터도 좋지만, 마치 누군가의 자화상 같은 차분한 영화를 감상하고 과거의 나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일도 분명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송진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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