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비밀의 언덕'을 넘어가는 명은

글 입력 2023.07.10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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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언덕


 

첫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선생님에게 줄 선물을 열심히 고르는 명은이의 모습을 통해 어떤 내용을 어떻게 표현하게 될지 너무 궁금했었다. 단순히 선생님과 학생의 성장 그리고 그들의 관계를 다룬 영화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냥 뻔한 사제 지간의 성장 스토리겠지? 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감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관람하고서부터는 생각이 달라졌다. 관람하는 내내 정말 많은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일었던 영화이기도 했다.

 

영화가 품고 있는 이야기는 꽤 다양했다. 가족 문제, 교우 관계의 문제, 성장 문제, 윤리의 문제, 어른들의 문제....... 너무 많은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 같기도 했고, 그렇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많은 것들이 크게 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본 다음에 어떠한 감정이라든가 느낀점이라든가 하는 것을 명확하게 구체화하기가 힘들었다.

 

분명 많은 것을 느꼈는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아마 누구나 느껴 보았을 법할 그 시절 명은이의 복잡미묘한 감정들을 영화 서사 전반에 아우르게 잘 녹여내어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무어라고 명명할 수 없는 세심한 감정들을 읽어 나가는 과정이 매우 흥미로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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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은의 '비밀'


 

<비밀의 언덕>은 많은 것을 비밀이 많은 열두 살 소녀 명은이가 어떻게 자신의 언덕을 넘어가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글쓰기 솜씨도 좋고 끼도 많은 명은에게는 쉽게 밝힐 수 없는 비밀 몇 가지가 있다. 비밀 우체통에 대한 비밀, 가족에 대한 온전한 생각이 명은이가 꼭 숨기고자 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명은이는 정말 뻔뻔하게, 어떻게 본다면 아주 발칙하고 맹랑하게까지 모두를 속인다. 심지어는 가짜 가족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하지만 물론 그런 비밀들이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오빠를 통해 금방 들통나기도 하고, 종국에는 쌍둥이들의 등장으로 비밀이 온세상에 알려질 위기에 처하게 되기까지 한다.

 

생각보다 영화가 꽤 길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과정에 잔뜩 몰입해서 영화를 봤다. 실제로 아주 천진난만하고 귀여웠던 명은이의 성장 과정이 마냥 순수해 보이지 않기도 했다. 상당히 많은 부분에 감응하며 영화를 봤다.

 

명은이가 성장을 대가로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에 대해 곱씹어 보는 것도 아주 큰 울림과 교훈을 준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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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명은'이들에게


 

보는 내내 우리 엄마와 극중 인물 명은이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할 수밖에 없는 가정환경, 그렇게 가족들을 미워하면서도 또 미워할 수 없었던 마음, 인정받고 싶은 욕구, 주목받고 싶은 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끼를 마음껏 펼쳐 나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등등 예민하고 섬세한 10대 소녀의 시각에서 이래저래 많은 생각이 들었던 영화였다.

 

그리고 그런 명은이의 복잡한 내면을 '비밀'로써 풀어가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고, 명은이에게도 말하지 못할 비밀이 존재하고,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도 존재한다. 물론 나에게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비밀이 있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았으면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겉으로 표현해 내고픈 마음들 같은 것 말이다.

 

영화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명은이들에게, 그리고 존재했던 명은이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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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인 가족 이야기


 

어릴 적 가정환경조사에서 엄마 아빠의 직업을 적고, 심지어는 연봉을 적어서 간 기억이 있다. 엄마한테 연봉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던 때가 생생하다. 그렇게 본다면 2000년대 초반까지도 그런 분위기가 있었나 보다. 물론 이 영화에서도 그런 장면이 왕왕 등장하고는 한다. 그래서인지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남자 선생님이 정말이지 꿈과도 같은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는 저런 선생님이 과연 있을까 싶다. 그때는 그런 교사가 더욱 없었을 테고, 요즘도 없을 듯하다.

 

“주지도 말고, 받지도 말자.”

 

명은이네 집 가훈이다. 개인적으로 정말 많이 공감이 가는 대사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이 대목에서 많은 관객들이 웃었다. 사실 누군가에게는 가족이 꼭 그렇다.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지만, 또 가장 저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해야 하나. 어떻게 본다면 이유 없이 밉기도 한 그런 존재? 명은이에게 가족도 그랬다. 그 어느 누구보다 튀고 싶은 명은에게 젓갈 가게를 하는 부모님은 떳떳한 부모님이 될 수 없었다. 명은이도 번듯한 회사를 다니는 멋진 아빠, 가정적이고 현명한 엄마를 원했다.

 

이 영화에서도 가족은 상당히 중요한 제재였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다른 뭇 영화들처럼 가족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한다든가, 가족의 따뜻함을 느껴 보도록 만든다든가 하는 장치는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그저 나에게 가족은 어떠했는가, 저 시절을 살았던 우리 엄마의 가족은 어떠했는가, 다른 누구의 가족은 어떠했는가 등 다양한 가족에 대해 되돌아보게 하는 기회를 주는 식이었다.

 

그래서인지 더욱이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나는 학창 시절 줄곧 반장을 도맡아 했었고, 엄마는 나를 열심히 서포트해 줬었다. 하지만 엄마에게 종종 들었던 엄마의 어릴 적은 그렇지 못했다. 엄마는 반장을 하면서도 상당히 많은 눈치를 보기도 했고, 심지어는 반장 자리를 빼앗기기도 했다고 하였다. 외할머니는 살기 바빠서 다른 학부모들처럼 학교를 자주 방문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반장이라는 직책에는 부모님의 입김이 많이 들어가기 마련이고, 촌지 문화가 팽배했던 그 시절에는 더욱 그런 압박감이 심했을 테니까....... 정말 많은 생각이 든 대목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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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물상


 

특히나 기억에 남았던 것은 전형적인 캐릭터를 연기했던 배우들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을 법한 엄마, 아빠, 그리고 선생님의 모습을 연기했지만, 그들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그렇지 않았다. 평소 기대하던 엄마, 아빠, 선생님의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뭔가 영화 초반에는 그들의 모습이 어색하기도 했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배우들의 등장?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새롭다기보다는 다른 데서 본 적이 있는 배우들이기는 했는데, 전작에서는 비슷한 류의 역할로는 만나 본 적 없는 배우들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냥 쉽게 말해서 흔히 우리가 기대하는 이미지들의 엄마나 아빠 또는 선생님이 아니었다.

 

하지만 곧 세 배우 모두 영화의 이야기 속에 잘 녹아들어 그들만의 매력으로 캐릭터를 구축해 나갔다. 시간이 몇 분 흐르고부터는 정말 그 시절을 살았던 엄마, 아빠, 그리고 선생님이었다. 그래서인지 더 많은 생각이 들게 되었다. 당시의 엄마, 아빠, 선생님들도 다 저렇게 젊고 빛나는 사람들이었겠구나 하는 생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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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하고 사려깊은 영화?


 

많이들 이 영화를 다정하고 사려깊은 영화, 따뜻한 영화, 가족에 대해 다시금 느껴 볼 수 있는 영화라고 표현하는 듯하다. 그런데 내 생각은 살짝 달랐다. 물론 많은 것들을 느껴 볼 수 있는 좋은 영화이기는 했다. 간만에 정말 뜻깊은 영화 감상의 시간을 가졌기에 이 영화가 너무 반가웠다.

 

그러면서도 과연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마냥 따뜻했을까? 하는 질문에 대답한다면, 그건 전혀 아니다. 오히려 영화 이면에서 비추고 있는 씁쓸한 마음들이 자꾸 가슴 한편을 쿡쿡 찔렀기 때문이다. 아마 섬세한 묘사로 인해 명은이에게 온전히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직접 관람한다면,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불편한 마음들에 대해 더욱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형용하기 어려운 복잡미묘한 감정을 내내 품으며 영화를 관람했던 것 같다.

 

 

 

 

 

[신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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