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래 살면 행복할까? [미술/철학]

베첼리오 티치아노 - 가시면류관을 쓴 그리스도
글 입력 2023.07.08 12:1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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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살면 행복할까?

Vecellio Tiziano - The Crowning with Thorns


 

오래 살면 행복할까? 진시황처럼 불로장생을 꿈꾸는 사람도 있듯이, 사람마다 의견은 다양하겠지만, 필자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다.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아흔 살이 넘도록 장수한 이탈리아의 미술 거장 베첼리오 티치아노는,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했을까? 잠시 베첼리오 티치아노의 그림 『가시면류관을 쓴 그리스도』를 감상하면서 철학적인 고민을 함께 해보자.


다음 그림은 저항하는 예수와 그를 막대기로 때리며 조롱하는 사람들을 담고 있는 종교화이다. 베첼리오 티치아노는 『가시면류관을 쓴 그리스도』를 장년기와 노년기에 거쳐 총 두 번 그렸다. 어렸을 때 그린 이 그림과 80대에 그린 이 그림은 서로 대조적이다. 화가의 심경 변화가 그림에서 어떻게 표현되었을까?

 

 

1.jpg

<1542~1543>

 

 

밀라노 교회의 주문으로 탄생한 이 그림은 나폴레옹으로 인해 옮겨져, 현재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인물들의 근육 진 몸의 표현은 로마 화풍, 그리고 미켈란젤로의 영향으로 보인다. X자 구도인 예수와 사람들의 격렬하고 역동적인 자세, 막대기들의 극적인 사선 배치가 인상적이다.

 

상당한 힘과 압력이 가해진 막대기가 곧바로 예수를 푹 찌를 것만 같다. 인물들의 옷에는 파스텔 톤의 다양한 색채들이 사용되었으며, 서로 조화롭게 어우러져 고급스럽다. 싸움의 상황에서는 피 튀기는 분위기가 나는 게 정상이지만, 밝고 화사한 색채들이 오히려 상황을 예술적으로 미화하고 있다.

 

* 조각상 아래에 쓰여 있는 ‘TIVERIVS CAISAR’는 그리스도가 살아있던 시대의 황제가 티베리우스(BC. 42 - AD. 37)임을 알려주고 있다.

 

 

2.jpg

<1570>

 

 

직관적으로 알 수 있듯이, 노화가일 때 완성된 이 그림은 윤곽선들이 대체로 흐리다. 붓 터치 또한 섬세하지 못하며 뭉툭하다. 실제로 붓 또한 두터운 것을 사용했다. 색채 또한 굉장히 어두우며, 예수와 군중 모두 늙어 보인다. 인물들의 태도와 에너지의 차이 또한 앞 그림과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예수는 힘없이 축 처져있다. 운명에 저항하지 않고 포기, 단념한 듯한 그리스도의 모습 -- 빨리 죽기를 바라는 티치아노의 마음이 투영된 것일까? 젊을 당시 그렸던 『가시면류관을 쓴 그리스도』는 물질적 표현에 가깝다면, 이 그림은 정신적인 표현에 가깝다.

 

 

 

베첼리오 티치아노에 대하여 (왜 그는 장수를 축복으로 생각하지 않았나?)


 

베첼리오 티치아노는 16세기 최고의 초상화가로 명성이 자자했다. 그렇다고 초상화만 그린 것은 아니며, 그리스 신화와 관련된 그림을 그리거나, 『가시면류관을 쓴 그리스도』처럼 종교화를 그리기도 했다.

 

사실적 묘사는 물론, 그는 인물의 분위기를 자유자재로 각색하는 것에 뛰어났다. 의뢰인이 원하는 이미지를 잘 표현해줬다. 또, 그는 소품을 활용해 상징을 극대화할 줄 아는 화가였다. 그래서 티치아노의 그림에서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려면 사물들을 자세히 살펴야 한다.

 

티치아노는 빛과 색의 관계를 열심히 연구한 화가이다. 특히 이러한 점은 옷의 질감이나 주름에서 잘 나타나는데, 흰색을 특히 자주 사용하여 빛을 표현했다.


영유아 사망을 제외하고도 당시 평균 수명은 50세였다. 티치아노의 친구들이 하나둘씩 떠나자, 그의 외로움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죽음에 대한 사색과 고민을 많이 한 것으로 보인다. 생기가 가득한 첫 번째 그림과는 대조되는, 침침하고 서글픈 티치아노의 말년 그림을 통해 그의 심경 변화를 유추해 볼 수 있다.

 

*

 

같은 그림을 두 번씩이나 그렸다는 사실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혼신을 쏟아부었던 작품을 재창조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과정이다. 분야는 다르지만, 같은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티치아노의 끈기가 대단해 보였다. 더 나아가, 배경과 인물, 모든 것이 그대로인 그림에서, 세월이 흐르면서 달라진 가치관이 분위기만을 통해 드러난 점이 인상 깊었다.

 

노화가가 되어서도 남은 힘을 다해 한 화폭을 가득 채운다는 것 -- 그것이 미술을 향한 사랑이든, 숙제처럼 완성한 단순 직업정신이든, 그의 작품은 나에게 쓸쓸함을 안겨주었다. 그가 말년에 그린 『가시면류관을 쓴 그리스도』가 화사했다면 그렇게 느끼지 않았겠지만, 그림이 너무 어둡고 무기력해 보여 나의 마음도 검정빛으로 물들었다.

 

앞에서 필자는 오래 살면 불행할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나이가 든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보면, 그가 작품에서 표현한 예수와 많이 닮아있다. 적극적인 자세로 삶과 맞서기보다는 맥없이 하루하루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한재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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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나루
    • 두번째 그림에 티치아노의 생각이 묻어나는 것 같아서 같이 서글퍼지네요. 말년의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티치아노의 생의 끝자락이 마냥 쓸쓸하지만은 않았기를 바랍니다. 어쩌면 그림만이 유일하게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그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친구로 남아주었을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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