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봄날은 갔지만 더 따뜻할 -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통조림

잊지 못할 아름다운 기억의 바닷속으로
글 입력 2023.06.30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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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나오는 기억들이 있다. 웃음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주로 아무것도 모르던 그 시절의 내 모습이 귀여워서이거나, 그때 저질렀던 행동들과 생각들이 민망해서다. 대개는 그 두 가지가 합쳐지는 편인데, 그런 기억들이 쌓이고 쌓여서 추억이라는 섬을 하나 만들어 낸다.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통조림>은 그 섬에 우리를 초대했다. 그러니 보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절로 나오는 영화가 되겠다. 두 주인공의 모험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던 탓에 상영관 분위기는 훈훈함이 감돌았다.

 

국내에선 특히 자연 친화적이고 잔잔해 힐링이 되는 분위기의 일본 작품들이 강세인데, 이 작품도 그러한 분위기를 가져간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웃음 한 스푼과 함께 사회적인 메시지를 하나 심어두어 차별화를 꾀했다. 당장 쿠사나기 츠요시가 포스터에 이름을 한 자리 차지한 것만으로도 어떤 이들은 그 메시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바닥에 떨어진 100엔을 두고 경찰에게 신고해야 하진 않은지 겁을 집어먹는 만만하리만치 순수하고 건강한 소년 히사, 그리고 언제나 런닝 차림에 도저히 생각을 알 수 없는 어쩐지 양아치스러운 타케는 같은 반이라는 것 빼곤 접점이랄게 없다. 없었다. 그러나 어느 날 타케가 히사를 찾아온다. 돌고래를 보러 모험을 떠나자는 거다.

 

길은 처음부터 험난하기만 하다. 이른 새벽부터 나가려다 아빠에게 걸려 심장이 떨어질 뻔도 하고, 넘어야 하는 산은 도저히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길인 것 같지 않을 만큼 높다. 목이 말라 음료를 사러 들어간 구멍가게 주인들은 코 묻은 돈 한 푼이라도 더 받겠다고 물건을 훔치려 하지 않았냐며 화를 내는데, 산 넘어 산이라고 그들을 피했더니 이젠 진짜 양아치들에게 휘말리기까지 한다. 반대편의 작은 섬으로 헤엄치다 익사할 뻔한 것까지, 부모님이 들었다간 등짝을 얻어맞는 것으론 끝나지 않을 위험천만한 여정이다.

 

그러나 이 아이들은 강하다. 원래 아이들은 항상 강했다. 아직 세상을 잘 모르는 데 비롯된 천진함 때문이기도 하고, 사랑을 잔뜩 머금은 붉은 뺨은 다람쥐 주머니처럼 용기를 가득 물고 있다. 그 모든 시련과 난관을 헤쳐 나갔지만, 돌고래는 보지 못했다. 애초에 뜬 소문에 불과했기 때문이라. 그러나 친하지 않은 히사를 은근한 협박으로 꾀어내 갖은 고생을 하며 떠나온 길에서도 타케는 실망하지 않는다. 아쉽지만 그뿐이다.

 

히사가 묻는다. 친하지도 않은데 왜 나를 데려왔어?

 

타케가 대답한다. 우리 집 보고 비웃지 않은 게 너 하나뿐이었거든.

   

돌고래는 아무래도 좋았을 것이다. 그걸 보는 것보다, 타케에겐 친구를 만들어 내는 게 더 값지고 기적 같은 일이다. 도저히 어린 애 같지 않게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넣고 기세를 내뿜던 타케는 그제야 어린아이 같아진다. 위험천만한 여정은 돌고래를 보러 가는 길이 아니라, 친구를 만드는 쪽이었다.

 

아이일 때 겪는 사건들은 정말 중요하다. 어떤 기억들이 평생 머릿속에 남아 원동력이 되거나, 혹은 트라우마가 되기 때문이다.

 

트라우마만 가득 남을 뻔한 타케의 삶은 그 하루로 인해 바뀌었다. 그럭저럭 즐거운 시절이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내가 이렇게 두 발 땅에 단단히 딛고,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며 살 수 있게 되었다고. 새파란 하늘 아래, 작은 열차에 작은 몸을 맡기고, 부모 묻은 고향 땅을 떠나면서도, 타케는 웃을 수 있었다.

 

이 영화의 가장 장점은 이것이다. 타케 한 명의 서사만 봤을 땐 한없이 우울하고 절망적인 작품이 되었을 수도 있으나 따뜻하고 미소 가득한 분위기를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린아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 특유의 맑음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는 그 어린아이들을 챙기는 어른들을 주목하고 싶다. 이 작품의 시종일관 밝은 모습은 어른들의 묵묵한 책임감이 곳곳을 못질한 덕분이기도 하다.

 

남편을 잃었지만 언제나 웃으며 아이들을 보살피는 타케의 어머니, 자꾸만 귤을 서리해 가는 꼬맹이를 매섭지 않게 야단치며 눈감아주는 농장의 할아버지, 매일 싸우면서도 서로를 아끼는 히사의 부모님, 히사의 작문을 보며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수성 풍부한 초등학교 선생님, 양아치들에게 괴롭힘당하는 타케와 히사를 구해내고 집에 가는 차까지 태워주며 응원하던 말 없는 청년, 물에 빠진 히사를 구해준 데다 먹을 것까지 건네주던 고등학생 누나...

 

각자의 위치에서 아이들에게 최선의 호의를 베푸는 어른들을 보며, 우리도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자연스레 하게 만든다. 영화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 중 가장 선한 것이 이게 아닐까?

 

또 두 아이의 고향인 나가사키는 일제강점기 당시 공장에 징용되었던 한국인들이 원폭으로 희생된 가슴 아픈 지역이다. 그만큼 재일 한국인들과 연관이 큰 곳이기도 하다.

 

작중, 산을 타고 낯선 곳으로 넘어와 목숨의 위기를 맞는 아이들을 구하는 것은 두 청년이었다. 우리는 그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파도에 떠밀려 온 한국의 캔음료를 읽으며 꼭 저 바다 너머를 가보고 싶다던 여학생의 눈빛, 또 타케에게 지지 말라며 모자를 씌워주고 트럭을 몰아 떠나던 청년의 발걸음은 일본 내에서 많은 차별을 받는 재일 한국인들을 단번에 연상시킨다.

 

영화에 등장하는 친근한 일본인 캐릭터들과는 다르게 어쩐지 이 둘은 신비해 보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만큼은 신비로운 것이 전혀 없다. 열심히 또 바르게 살아가려는 건실하고 친절한 젊은이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니 말이다.

 

쿠사나기 츠요시, 한국에선 초난강으로 알려진 이 친근한 연예인의 등장은 우리가 그 메시지를 잘못 해석하고 있지 않음을 확실히 알게하는 지표가 된다.

 

히사와 타케는 달라도 너무 달라 보였지만, 알게 되니 이보다 가깝고 마음이 맞는 친구가 없었다. 그들의 인연은 어린 시절에서 끝나지 않고, 아이도 낳을 만큼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변함 없이 유지된다. 서로를 이해하기만 하면, 삶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애정을 갖고 보고 공감한다면 - 다름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때는 바야흐로 블록버스터가 뻥뻥 개봉하는 7월의 여름이다. 제작비가 잔뜩 들어가 화려한 액션 무비 등도 좋지만, 따뜻하고 귀여운 작품으로 블록버스터는 채워주지 못할 허한 마음을 채워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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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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