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길을 만드는 건 언제나 나니까 [영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가 멀티버스를 다루는 법
글 입력 2023.06.2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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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간 미국 영화계의 최대 화두 중 하나는 단연 멀티버스’, 그러니까 평행우주였다. 마블이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의 핵심 주제로 선택한 것도 멀티버스였고, 아카데미 7관왕을 휩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소재로 내세운 것도 멀티버스였다. 물론 그 두 멀티버스의 양상은 다소 다르지만, 어쨌거나 이야기꾼들이 멀티버스에 주의를 기울이는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하나의 질문 때문이다.


 

만약 내가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나는 어떤 모습이 될 수 있었을까?’

 

 

이 질문에는 많은 의미가 함축돼 있다. 단순한 궁금증일 수도 있겠지만, 과거의 잘못된 선택에 대한 오늘날의 뼈저린 후회일 수도 있고, 이루지 못한 어린 날의 꿈에 대한 막연한 동경일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대신 멀티버스를 넘나드는 주인공들을 보며, 진짜 자신을 찾아가는 그 여정이 그들의 고민에 어떤 해답을 제공해 주는지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때 한 가지 재밌는 점은, 멀티버스 영화는 대부분 같은 결말로 끝난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결국 자신이 살던 우주로 돌아오고, 원래의 삶을 그대로 살아가기로 마음먹는다. 다른 우주로 가서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결말의 멀티버스 영화는 아직 보지 못했다. 왜 그들은 기껏 먼 곳으로 떠나놓고는, 다시 변한 것 없는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걸까?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흡사 만화를 그대로 따온 듯한 작화와 신선한 연출로 큰 인기를 끌었던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후속작으로, 앞서 언급한 영화들처럼 멀티버스를 소재로 두고 있다. 때문에 이 영화의 주인공은 우리가 잘 아는 백인 성인인 피터 파커가 아닌, 흑인 고등학생 마일스 모랄레스. 국내외 가릴 것 없이 멀티버스를 가장 잘 다뤘다는 극찬을 받고 있는 이 영화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살펴본다.

 

 

 

결국은 잠재력을 발견할 나에 대하여


 

스파이더맨 유니버스시리즈는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가 이미 존재하는 세계관에서, 또 다른 방사능 거미에게 물려 2번째 스파이더맨이 된 마일스의 이야기를 다룬다. 1편에서 초짜 스파이더맨이었던 그는 차원 이동기를 타고 넘어온 다른 평행우주의 스파이더맨들을 보며, 그들과 달리 능력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좌절하곤 한다. 각자의 세계를 책임지고 구해오던 다른 스파이더맨들과는 달리, 그는 너무도 보잘것없고 미성숙한 고등학생일 뿐이었다.

 

결국 스파이더맨들은, 결전의 순간까지도 전투를 위한 준비가 되지 않았던 그를 뒤에 남겨두고 전장에 나선다. 그러나 네 안에 눈부신 불꽃이 보인다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마일스는 결심한 듯 까맣게 칠한 스파이더맨 옷을 입고 초고층 빌딩에 올라서 그대로 뛰어내린다. 작은 건물 옥상에서 떨어지는 것조차 두려워하던 그는, 그렇게 도시의 야경이 한눈에 들여다보이는 빌딩에서 떨어져 도시의 상공을 가로지르는 데 성공한다. 여느 새들이 그렇듯, 완벽한 비상을 위해 필요한 건 날아본 적 없는 지금 나의 가능성을 믿고 추락해보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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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 스파이더맨 쫄쫄이를 파는 가게 주인인 스탠리는, 옷을 사려는 마일스와 이런 대화를 나눈다.

 

 

안 맞으면 환불해도 돼요?”

이건 언젠간 맞는단다결국에는.”

 

 

물론 이 대사는 환불도 안 해주면서 얼렁뚱땅 옷을 팔아먹으려는 개그씬의 일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거미에만 물렸을 뿐 스파이더맨으로서의 정체성은 확립하지 못했던 마일스에게 건네는 말이기도 하다. 지금 당장의 나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꼬맹이처럼 보일지라도, 시간이 충분히 흐르면 결국은 영웅 스파이더맨으로서의 자신을 발견하게 되리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는 누구든 스파이더맨이 될 수 있다는 피터의 말과 연결되어, 결국 우리 역시 언젠가는 내면에 잠들어 있던 가능성을 찾아 한아름 꽃피워낼 수 있을 것이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건네는 듯하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지만, 그럼에도 늘 시작은 있다


 

이렇게 1편이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찬 메시지를 전달했다면, 2편인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그 영웅이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과정은 무엇인지에 주목한다.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관통하는 명대사인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피터의 삼촌인 벤이 사망했기 때문에 그 의미를 가질 수 있었듯, 모든 스파이더맨들은 가족을 잃거나 친한 경찰서장의 죽음을 지켜보는 것처럼 반드시 거쳐가야만 하는 사건이 있다는 것이다.

 

영화의 갈등은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온갖 평행우주에서 모인 스파이더맨들이 꾸린 스파이더 소사이어티, 공식설정 사건을 깨뜨려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그 죽음들을 끝내 받아들인다. 그러나 마일스는 이를 인정하지 못하며 경찰서장이 된 자신의 아버지를 구하려고 하고, 이에 소사이어티의 리더인 스파이더맨 2099는 마일스가 자신의 우주로 돌아가 공식설정 사건을 무효화시키는 걸 막으려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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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설정 사건이 깨지면 그 우주 전체가 위험해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싸움은 언뜻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정당한가라는 오래된 문제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작품이 멀티버스라는 설정하에 있음을 고려한다면, 둘의 대립은 그보다는 운명은 개척될 수 있는가를 주제로 한 치열한 논쟁에 가깝다. 모든 우주에서 그웬과 스파이더맨은 좋지 않게 끝난다며 우울해하는 그웬에게, 마일스는 그럼에도 시작은 있는 법이라며 희망을 가질 것을 권유한다. 마일스는 그렇게 이미 모든 스파이더맨들에게 똑같이 쓰여 있는 이야기를 거부하고, 끊임없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려고 시도한다.

 

그러니까 1편이 스파이더맨으로서의 자신을 발견하는 여정이었다면, 2편은 스파이더맨이라는 설정 없이도 홀로 길을 만들어갈 수 있는 마일스로서의 자신을 되찾는 여정이다. 수천수만 개의 우주 속 내가 똑같은 길을 걸어갔더라도, 지금의 나에겐 다른 길을 고를 자유가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만약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눈앞에 하나밖에 없다면, 다른 곳으로 향하는 길을 내 손으로 만들어내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결국 같은 사람의 다른 선택에 의해 만들어지는 게 평행우주라면, 나를 하나뿐인 나로 만드는 건 지금 이 순간 나만의 길을 만들어볼 수 있는 용기가 아닐까.

 

 

 

가장 먼저 믿어야 할 건 지금 이 순간의 나임을


 

영화에서 단연 돋보이는 건 각기 다른 스파이더맨들의 톡톡 튀는 개성이다. 애니메이션만의 특성을 십분 활용해 캐릭터의 그림체 자체를 다르게 연출한 건 물론이고, 그들의 수트나 싸움 방식, 성별, 인종, 심지어는 종족에 있어서도 다채로운 변형을 줬다. ‘누구든 스파이더맨이 될 수 있다는 말을 체감하게 만드는 이런 풍경 속에서, 인상적인 건 결국 그렇게나 다른 스파이더맨 하나하나가 모두 각자의 세계를 책임지는 영웅들이라는 사실이다. 평행우주 속 다른 스파이더맨들이 아무리 근사하고 멋져 보일지라도, 세상을 구해낼 만큼의 잠재력은 그 모두에게 똑같이 있다는 뜻이다.

 

그런 이 영화를 통해 멀티버스의 모습을 상상하며 우리가 해볼 수 있는 건, 지금의 나를 일단 믿어보는 일이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킹핀과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의 완다는, 모두 가족을 잃은 상태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평행우주 속 가족을 눈앞에 데려오는 데 집착한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조이는 인정받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허무함을 느끼고, 자신을 완전히 파괴하기 위해 멀티버스를 전전한다. 멀티버스 영화의 빌런들은 대부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해, 그보다 나은 내가 있을지도 모르는 멀티버스를 향해 손을 뻗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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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향점이 달랐던 마일스의 두 여정에서 변하지 않았던 것은, 결국 갖은 장애물을 뚫고 길을 만들어낸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었다는 점이다. 빌딩에서 뛰어내리며 스파이더맨으로 각성한 것도, 수많은 스파이더맨들을 따돌리며 운명을 개척한 것도, 다른 평행우주 속 스파이더맨들의 도움은 있었을지언정 종국에는 마일스 본인의 의지로 해낸 일들이었다. 삶의 궤적 어디에선가 다른 선택을 해서 만들어졌을 멀티버스 속의 나는, 그렇게 짧게나마 상상해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지금 내가 처해 있는 상황을 헤쳐나가는 데는 결정적인 도움을 줄 수 없다.

 

그렇기에 막막해 보이는 현실을 뚫고 앞으로 전진할 힘은 다른 우주 어딘가에 존재할 멋진 나에 대한 동경이 아닌, 지금 당장 거울 속에 보이는 바로 그나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나온다. 이 영화가 멀티버스를 가장 잘 다뤘다고 평가받는 건, 수많은 멀티버스 속 다른 내가 아니라 왜 지금 나를 믿고 나아가야만 하는지에 대한 답을 말해주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니 삶이 후회와 좌절로만 가득해 보일 때,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손길을 붙들고 일어날 줄 아는 우리가 되어 보자. 지금 당장 일어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다음번에는 더 빨리 일어나 더 힘차게 달릴 수 있는 나를 만들 수 있는 건 오직 나뿐이므로. 바라건대 부족한 나를 힘겹게 감당하며 근근이 살아내기보단, 그 모든 부족함과 어려움을 뚫고 성장할 나를 굳게 믿으며 끝내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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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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