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 모두 다 고양이인 것은 아닐까? - 고양이를 그린 화가 루이스 웨인展 [전시]

글 입력 2023.06.26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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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 in rainbow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지난 주말, 무더운 걸음으로 도착한 전시회 입구부터 커다란 눈망울의 귀여운 고양이 일러스트가 나를 반겨주었다.



"저는 말 못 하는 동물을 정말 사랑합니다"

 


전시의 시작점에서 벽면에 쓰인 고백은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은 문장이었다. 나 역시 일곱 살 러시안 블루 한 마리를 모시고 있는 집사로서 의사소통도 안되며 표정을 가늠할 수 없는 동물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시장 1층에서 3층까지, 루이스 웨인의 시선에서 바라본 고양이들은 당장이라도 말을 걸어올 것처럼 다양하고 생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루이스 웨인의 첫인상은 그의 전기 영화로 부터 기인한다. 루이스 웨인을 연기한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특유의 독특한 연기가 돋보이는 로맨스 영화였다. 영화는 루이스 웨인이 독특한 인물이었기에 완성되었을지도 모른다.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라는 영화 부제처럼 그는 10살 연상의 에밀리 리처드슨을 열렬히 사랑했고 그녀가 구조한 길냥이 '피터'를 통해 안정감을 얻고 고양이 화가로서 명성을 이어간다.


전시회 벽면을 가득 채운 그의 고양이들은 고고하고 아름다운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다른 고양이를 골탕 먹이거나 혼을 내기도 하고 카드놀이를 통해 얼굴 위로 스쳐가는 표정에는 다양한 감정이 존재했다. 익살스럽고 생동감 넘치는 표정의 고양이부터 턱시도를 입고 우쭐한 얼굴의 의인화된 고양이들은 어쩐지 인간의 생활 모습과 닮아 있었다.

 

 

At the Cat-Town Races 고양이 도시의 경주.jpg

고양이 도시의 경주.jpg

 

 

루이스 웨인이 그려낸 고양이는 다양하다. 인간처럼 울고 웃는 다양한 표정을 지닌 고양이를 시작으로 사람처럼 걷고 뛰노는 역동적인 형태로 진화했다. 사람 흉내를 내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현대에 이르러 의인화된 동물은 예술에 있어 흔한 소재가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이스 웨인의 그림은 집집마다 벽에 걸어뒀을 정도로 대중적이었는데, 인기를 얻게 된 배경에는 그의 말하는 고양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시대적 배경을 생각해 보면 20세기와 21세기 런던의 귀족들은 우아함과 고고함을 내세워 품위를 유지해 왔고 그의 그림 속 고양이들은 사람처럼 두 발로 걷고 귀족의 옷을 입었으나 품위를 유지하기는커녕 감정적으로 보였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일반 귀족과는 다른 모습인 것이다.


고양이가 이런 생각을 어떻게 해. 사실적이다 못해 숨겨야 할 감정마저 드러내고 있는 고양이를 들여다보다가 문득 그림을 감상하는 내가 귀족 인간이라도 된 것 같은 착각이 일어 깜짝 놀랐다. 나도 모르게 20세기의 뾰족한 시선처럼 굴고 있던 것이다.

 

소개글 앞에 이끌리듯 다시 한번 다가가 되새기듯 내용을 씹어 읽었다.

 

 

Jackson's boots and hats are fine 잭슨의 모자와 부츠는 좋다.jpg

모자와 부츠는 좋다.jpg

 

 

모난 시선이라는 것은 시대를 타지 않는다. 귀족이라는 신분제는 대부분 사라졌고 고양이는 강아지만큼이나 친숙한 반려 동물이 되었지만 말 못 하는 동물에 대한 경계선은 보이지 않는 선처럼 존재했다. 의심은 잠시 한편에 미뤄두자. 풍자적으로 해석하면 그저 재미있는 그림이 아닌가.


고양이는 왜 하필 귀족을 흉내 내는 것일까. 지금은 고양이가 남녀노소 사랑받는 동물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과부가 기르는 동물이라며 인기가 없었다고 한다. 품위 없는 동물을 통해 귀족의 기이한 문화를 풍자하는 루이스 웨인의 고양이는 귀족의 흉내를 내고 있으나 그들보다 인간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친밀하게 다가왔다.


사실 귀족을 흉내 내고 있다는 것은 인간의 일방적인 주장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고양이 세계에서 턱시도를 입고 카드놀이를 하고 어쩌면 인간보다 더 오랜 시간을 지내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억울하겠다. 각자의 다른 세계를 인정하지 못하는 치졸한 인간에 의해 비밀스러운 공간이 공개되다 못해 이렇게 전시회까지 열려 많은 인간들이 알아버렸으니.

 

 

"우리 모두 다 고양이인 것은 아닐까?"



우습지만 상상해 본다. 내가 회사로 출근하면 비밀통로를 통해 고양이 세계로 넘어가는 우리 집 러시안블루를. 물론 집에 펫캠은 존재하지 않고 집을 비우는 시간 동안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디를 쏘다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나는 생각한다. 고양이 팔자가 인간보다 낫다는 우스갯소리가 따라다니는 현대의 고양이들이 인간과 뒤섞이며 안식을 누리게 되었지만 그들에게 있어 인간적인 모습이란 자유로운 삶이 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루이스 웨인이 그린 고양이는 인간을 풍자하기도 하였으나 결정적으로는 고양이들만의 은밀한 세계를 보여주기도 했다.


인간이 외출하고 아무도 없는 빈 집을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말하는 장난감을 상상했던 것처럼. 고양이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 그런 능력이 깃들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누군가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믿고 싶겠지만 이 역시도 얼마나 인간 중심의 세상에 살고 있단 말인가.

 

주말 저녁, 집사의 귀가 시간에 맞춰 임무를 마치고 서둘러 복귀하는 고양이 행렬을 상상하면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아 행복했다.

 

 

루이스웨인 포스터_세로.jpg

 


[이보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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