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 [영화]

글 입력 2023.06.24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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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할라’는 전통적인 이슬람 가정에서 자랐다. 가족들과 함께 파키스탄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평범한 10대로 살고 싶은 마음과, 종교적 의무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할라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이 영화를 선택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다른 문화를 살아가는 이들의 고민은 무엇이며, 어떻게 역경을 헤쳐 나가는지 궁금했다. 지난달 아프리카 영화제에서 봤던 영화 <너는 스무 살에 죽을 거야>를 본 후 이슬람 문화권에 사는 이들에게 관심이 생겼다. 

 

영화의 주인공 무자밀은 태어나자마자 스무 살에 죽을 거라고 예언을 받았다. 무자밀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일을 꿈꾸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10대 시절 청춘을 불안에 떨며 살았다. 무자밀 뿐만 아니라 그의 엄마도 매일 기도하며, 20대가 되기 전 언제 닥칠지 모르는 아들의 죽음을 매일 준비하며 살아갔다. 

 

<할라>의 주인공 ‘할라’는 파키스탄을 떠나 미국으로 이민 왔지만, 종교가 가진 그늘은 피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이성과의 교제를 금지하였으며 엄마는 매일 누구와 어디 갔는지, 날이 선 채로 물어본다. 이런 억압적인 분위기 속, 할라에게 힘이 되어줬던 건 스케이트보드와 문학이었다. 특히 문학은 할라의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간접적으로 소통의 창구 같은 역할이다. 영화 중간마다 나오는 소설 작품을 지나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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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걸 읽으면, 난 글을 쓸 필요가 없는 것 같아.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다 들어 있거든"

 

제시와 풋풋한 사랑을 하는 할라. 평범한 10대와 다름없는 모습이다. 두 사람의 공통 관심사는 문학이었기에, 함께 숲을 걸으며 시를 읊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마치 둘만 알아들을 수 있는 메시지를 주고받는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할라의 아버지는 교제 사실을 눈치챘고, 결과는 뻔하다며 그만두라고 말한다. 강압적인 아버지의 태도에 할라는 제시와 멀어지기로 결심한다. 연애결혼이 허용되지 않는 문화로 인해 할라의 연애는 이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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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라는 친척들과 식사하던 도중,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어른들 사이에서 똑같은 말만 오갔기 때문이다.

 

다들 학위를 자랑하느라 바빴고, 할라가 번듯한 직업을 가질 거라며 확신했다. 이들은 할라의 창창한 미래에만 관심이 갔을 뿐, 현재 어떤 학교에 다니는지도 모른 채 질문한다. 식사 중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고 가만히 있던 할라는 모든 게 터져버린다.

 

그리고 문학 선생님 집을 방문한다. 무슨 일이 있을 때 도움이 되어주겠다던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났던 할라는 그를 찾아갔다. 놀란 선생님은 할라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다. 하지만 말을 꺼내기 힘들어 자신의 속사정을 소설 <인형의 집> 노라를 대입해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토르발트는 겉모습에 치중한 삶을 살다 보니, 노라에게 솔직하지 못했고 그건 노라도 마찬가지였죠”

 

“결국 그를 떠나야 솔직하게 살 수 있었어요”


”솔직하게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소설 이야기를 잠시 하자면, 노라는 남편이 자신을 동등한 인간으로서 사랑한 것이 아닌 걸 알게된다. 그리고 자신이 ‘인형의 집’에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노라는 누군가의 아내, 어머니가 아닌 독립된 인간으로서 살아가길 소망한다.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가족을 떠났다는 내용이다.

 

이때부터 할라는 알았을 거다. 솔직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가족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가족 식사 장면에서 보았듯이, 다정한 모습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상황 속에서 할라는 아무 말도 꺼낼 수 없었고, 가족들은 할라의 성취에만 관심을 보였다. 주체적인 삶을 원하는 할라에게 진심어린 조언을 내어줄 사람은 없었다. 결국 할라는 ‘노라’처럼 살아가기로 한다. 

 

할라의 어머니 또한 다른 인생을 살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남편의 외도를 알고도 무시했지만, 할라에게 손찌검까지 한 그를 보며 이혼을 고한다. 그리고 남편에게 할라는 자신처럼 살지 않을 거라며 선언한다.

 

결국 할라와 어머니, 두 사람은 주체적인 삶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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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라가 히잡을 벗고 밖을 나가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이걸 보며 주체적인 삶을 살겠다는 결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히잡을 벗은 것으로 그가 원하는 삶을 살아갔다는 걸로 이해하기는 조금 아쉬웠다. 물론 억압적인 종교 아래에서 잠시 벗어났다는 의미가 있겠지만, 할라가 어떤 선택을 결심했는지 구체적인 모습이 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청소년기와 다른 20대의 할라의 모습이 궁금하다. 앞으로 어떤 목표와 함께 더 이상 불안에 떨지 않겠다는 단단한 할라의 모습을 보고싶은 아쉬움을 담는다. 할라가 이런 결정을 하기까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삶을 개척하려는 그에게 따뜻한 응원을 보내고 싶다.


 

[이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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