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멀티페르소나를 가진 우리에게 [도서/문학]

글 입력 2023.06.17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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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고양이" 혹은 "고양이와 개"가 아닌 "개와 개의 고양이"라는 낯선 책 제목이다. 조사 '~의'가 소유와 소속을 나타내는 것을 알기에 '개가 고양이를?'이라는 생각과 함께 소유에 대한 부정적 의미가 떠올랐다. 섣부른 우려와 다르게 다행히 이 책은 "개와 개의 고양이"가 "개와 고양이"로 나아가는 과정의 이야기이다. 그림책이어서그런지 많은 사람이 바우(개)를 부모에, 아기 고양이를 자녀라고 생각하고 읽었다. 하지만 나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보다는 내가 가지고 있는 지위, 소속해 있는 곳과 나에 대해 생각하면서 동화책을 여러번 펼쳐 보았다.

 

 

오늘 아침, 아기 고양이는 도무지 양말 한 짝을 신을 수가 없었어요.

 

심통이 나서 양말에 부스러기를 넣어 동그랗게 만든 다음,

 

나무 막대에 폭 꽂아 버렸지요.

 

 

이야기는 아기 고양이가 빨간 양말과 고군분투를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아기 고양이처럼 하루를 시작하는데 이상하니만큼 작은  일부터틀어지기 시작할 때가 있다. 오늘의 내가 그랬는데 주말 일기 예보로 오늘 비가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눈 뜨자마자 쏟아지는 빗소리와 함께 어두컴컴한 창문을 보자니 짜증이 먼저 났다.

 

  

"그나저나, 정말 멋진 나방이구나!"

 

"나야! 내가찾은거야!"

 

아기 고양이는 의기양양했어요

 


다행스럽게도 "Easy come, easy go" 속담은, 먹을때나 쓰는 줄 알았던 "단짠단짠"은 이러한 상황에도 적용된다. 아기 고양이는 바우와 함께 산책하던 도중 자고 있는 나방을 발견하자, 나는 점심으로 맛있게 끓인 짜파게티를 먹으니, 짜증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다시 기분이 좋아진 아기 고양이는 바우와 즐겁게 산책하다가 중대발표를 한다.

 

 

"어른이 되면, 내 이름은 바람이라고 할 거야.

 

바우처럼 커다란 개가 되어야지."

 

"아니, 너는 커다란 고양이가 될 거야"

 

바우가 말했어요.

 


너는 커다란 개도 아니고, 작은 개도 아니고, 커다란 고양이가 될 것이라고 하는 말은 바우가 아기 고양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말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많은 역할과 지위를 가지고 살아간다. 아주 사소하고, 세세하게 따져보면 나는 부모님의 딸이기도하고, 내 동생의 언니이기도 하며, 학생이기도 하고, 알바생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친구이기도, 연인이기도하다. 최근에 각각의 지위에서 해야 하는 역할들이 겹치면서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는건데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건데!" 하고 펑 터져버린 날이 있었다. 나의 경우로 단편적인 예를 들자면 "알바도 갔다와서 힘든데 내가 어떻게 학점까지 잘 받으라는거야!"가 될 것 같다. 

 

 

달빛이 바우와 아기 고양이와 나방을 비췄습니다.

 

달빛은 바우와 아기고양이와 나방이 오늘 만난 것들과

 

아직 만나지 못한 것들에도 골고루 가닿았어요.

 

나방은 조용히 밤풍경을 보다가 나지막이 속삭였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밤이야!"

 


폭발해버렸던 날을 지나온 현재에 나는 다행히 겹쳤던 모든 일을 잘 끝마쳤다. 나는 효녀가 되고 싶기도 하고, 멋진언니가 되고 싶기도 하고, 일 잘하는 알바생이 되고 싶기도하고, 때로는 이성적이고 따뜻한 친구이자 연인이 되고 싶기도하고, A+을 척척 받아내는 학생이 되고싶기도 하다. 이것들은 하나 같이 다 '나 그자체'를 가리키고있다. 저 역할과 지위들이 모두 나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잊을 때가 있다.  A+을 받았을 때 '대학생인' 내가 해냈다가 아닌, 그냥 '내'가 해냈다고 생각하면 나는 해낼 수 있는 것이 무한정으로 늘어난다. 그리고 내가다른 역할을 행하느라 행여 놓친 것이 있다고한들 "아직 만나지 못한 것들에도 골고루 가닿았"다는 책의 구절처럼 편히 생각한다면 더 멋진 내가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오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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