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세상을 바꾸는 작은 외침 :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 외쳐, 조선!' [공연]

이 세상이 만들어 낸 정해진 생각을 깨버려
글 입력 2023.06.2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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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NOPSIS


 

'시조'가 국가 이념인 상상 속의 '조선'

 

삶의 고단함과 역경을 시조 속에 담아 훌훌 털어버렸던 백성들은 역모 사건으로 시조 활동이 금지되면서 자유도 행복도 잊은 채 살아간다.

 

그러던 중 15년 만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조선시조자랑이 열리게 되고, 탈 속에 정체를 감추고 양반들의 악행을 파헤쳐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자 조직된 비밀시조단 골빈당은 이것을 기회 삼아 조선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자 한다.

 

한편, 왕의 비선실세이자 시조대판서인 홍국은 자신에 대한 악덕한 소문을 퍼트리고 다닌다는 이유를 들어 골빈당을 잡으려는 음모를 꾸미는데...

 

 

 

외쳐, 조선! : '외침'이 가지는 의미


 

스웨그 에이지(Swag Age)라니 , 힙합이 아닌 뮤지컬이라는 장르에서 접하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는 표현이 제목에 등장했다. 그래서인지 이 이질적인 제목이 의도한 바를 파헤치고자 하는 마음보다는 부제에 대한 호기심이 먼저 일었다.


외쳐, 조선! 이는 과연 '조선'을 외치라는 말일까, 아니면 조선이라는 국가 - 더 정확히는 그를 구성하는 조선의 백성들 - 에게 무언가를 외치라고 요구하는 말일까? 그리고 그러한 외침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기에 그것을 통해 변화를 가져오고자 하는 것일까?

 

 

스웨그에이지_공연사진 3_양희준.jpg

 

 

극이 진행되는 상상 속의 조선은 시조를 국가 이념으로 두는 나라다. 고된 일이 있어도 시조를 지으며 한을 풀었던 조선의 백성들이지만, 15년 전 평민 출신의 시조대판서였던 자모가 시조를 통해 사람들을 선동하고 역모를 꾀한다는 누명을 쓰고 처벌 당한 뒤로는 시조를 짓는 것이 금지되고 만다.

 

언뜻 보면 조금은 동화 같은 설정이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시조, 즉 노래로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들이라니. 그리고 그걸 빼앗긴 후 웃음을 잃는다니. 허나 극을 보다 보면 시조가 단순히 하나의 놀잇거리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곧 깨달을 수 있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내게 강요해

내가 왜 남들 눈에 맞춰 살아야만 해

 

너무 답답해! 시키는 대로, 하라는 대로 사는 건

정말 갑갑해! 평범한 시조, 평범한 생각 그런 건

 

*

 

하고 싶은 말을 시조에 담아 자유롭게 외칠래

모두가 깜짝 놀랄 시조의 새 바람 불어와

이게 바로 조선 수액!

 

/ 단, 조선수액 中


 

세상을 제멋대로 살아가는 단은, 사람들에게 후레자식이라 욕을 먹어도 굴하지 않고 자유롭게 시조를 읊는 인물이다. 시조가 금지된 상황에서 몰래 즐기는 것만으로도 이미 대담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시조(時調)는 한국 고유의 정형시로, 3장 6구의 기본 형식을 엄격하게 따르는 평시조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단은 이러한 형식에 구애 받지 않고 당당하게 조선 수액을 뽐낸다. 시조의 규율에서 벗어나는 것은,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손가락질하는 세상을 향해 단이라는 개인의 인물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항이었을 테다.

 

 

이 세상이 만들어 낸

정해진 생각을 깨버려

 

보여줄게

갇혀있던 울타리를 넘어서

하늘 높이 날아 크게 외쳐

꿈같은 세상, 새로운 세상

 

/ 단, 새로운 세상 中

 

 

이윽고 양반들의 만행을 고발하기 위해 탈을 쓰고 시조 활동을 하던 골빈당을 만난 단은, 자신의 아버지가 전 시조대판서였던 자모이며 현 시조대판서인 홍국의 모함으로 인해 누명을 쓰고 지위를 빼앗겼음을 알게 된다. 이후 단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 골빈당에 들어간다.

 

이로써 단에게 시조가 가지는 의미는, 개인적 차원의 반항에서 백성들의 비애를 임금에게 알리는 사회적 차원의 소통 수단으로 확장된다.


 

외치다 (동사)

1. 남의 주의를 끌거나 다른 사람에게 어떤 행동을 하도록 하기 위하여 큰 소리를 지르다.

2. 의견이나 요구 따위를 강하게 주장하다.

 

 

이쯤에서 '외치다'라는 단어의 정의를 한 번 들여다보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두 가지의 정의가 존재하는데, 부제인 '외쳐, 조선'은 두 가지 모두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겠다.


첫 번째는 "임금에게 닿도록, 조선의 상황을 알리는 시조를 외쳐라!"라는 의미이다. 극중 조선에서는 권력에 눈이 먼 홍국이 조정과 어린 임금을 휘두르며, 백성들의 아픔을 무시하면서도 그것이 부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임금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있는 홍국에 대항하여 직접 백성들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시조를 외치는 골빈당의 이야기가 이 부제에 담겨 있다.


두 번째로 "새로운 세상으로서의 조선을 외쳐라!"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 지금처럼 백성들이 고통 받는 상황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조선으로 우리가 나아가야만 함을 강력하게 주장하자는 것이다. 이때 '외침'의 주체는 극중 골빈당 뿐만 아니라 온 백성 모두가 되겠다.

 

골빈당의 시조 속 이야기는 모두 백성들이 일상에서 마주한 아픔과 슬픔을 담고 있기 때문에, 이때 '외침'의 주체는 사실상 극중 골빈당 뿐만 아니라 온 백성 모두가 되겠다.

 


첨부파일2_진역단체사진.jpg

 

 

한편 골빈당이 운영하는 국봉관 제일의 시조꾼 진은 사실 시조대판서 홍국의 딸로, 자신의 소신에 따라 아버지와 전면적으로 대립하는 인물이다. 권력자와 가장 가까운 인물이기에 삐뚤어진 세상을 당연히 여길 수도 있는 인물이지만, 힘없는 이들이 고통 받는 세태가 과연 정의로운가에 대해 의문을 품으며 아버지 몰래 골빈당으로 활동한다.

 

변하지 않는 진실을 언젠가 깨닫게 될 거라며 결국 아버지와 반대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하는 진의 모습에는 옳은 것은 옳다고, 틀린 것은 틀렸다고 당당하게 외치고자 하는 우리 삶의 지향점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너도 나도 모두 다 즐기세 : 어딘가 익숙한 이야기


 

스웨그에이지_공연사진 7_이아진.jpg

 

 

무겁고도 지극히 현실적인 주제를 담고 있지만, 이 모든 내용을 '유쾌하게' 풀어내는 것이 <스웨그에이지 : 외쳐, 조선!>이 가지는 또다른 매력이다.

 

주조연과 앙상블이 만들어내는 경쾌한 화음과 칼군무 덕분에 눈과 귀가 모두 즐거운 것은 물론이요,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소재들이 이야기 곳곳에 녹아들어 있어 그것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누구에게나 익숙할 이방원의 하여가(何如歌)와 정몽주의 단심가(丹心歌)가 활용된 홍국의 넘버는 관객들에게 어디선가 들어봤던 가사에 대한 반가움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시조의 규율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평민 단과 대비되어 권력을 추구하는 양반 홍국의 모습을 더욱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전국노래자랑을 모티브로 한 듯한 전국시조자랑이나, MC 대신 사회자 엄 씨라는 인물을 설정하는 등의 개그 요소가 많았으며, 이와 더불어 객석 통로를 뛰어다니는 배우들의 움직임은 공연의 에너지를 배로 만들어주었다.

 

***

 

흥겨운 극을 재미있게 보고 나왔음에도 마음 한 구석이 무언가 찝찝한 것은, 아마 극중 조선이 마주한 상황이 지금의 대한민국과 아주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저기서 속 시끄러운 소식이 쉬지 않고 들려요는 요즘이니 말이다.

 

다행히 우리에겐 시조와 이야기가 금지되어 있지 않다. 누군가가 정의라고 굳게 믿고 있는 무언가가 사실은 당연하지 않은 일은 아닌지, 무언가 변해야 하지는 않는지 끊임 없이 질문하고 고민하고 마침내 그 결론을 '외치는' 것이 이들의 양반 놀음 한바탕을 본 우리에게 남은 숙제가 아닐까 싶다.


 

조선 시조의 나라

만백성의 바람이 불어라

조선 시조의 나라

간절한 소망은 이뤄지네

태산을 넘어 세상을 향해

외쳐, 조선

 

/ 백성들, 시조의 나라 reprise 中

 

 


컬쳐리스트 명함.jpg

 

 

[장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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