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예술

무릎이 까지더라도 산을 오르는 마음
글 입력 2023.06.17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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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힘들지 않은 만큼만 하시는 것 같아요. 항상 적당히. 별로 안 힘들죠? 넘어지거나 휘청거리더라도 한번 온 힘을 다해서 춰보세요. 그렇게 해버릇 해야 나중에 힘이 생기고 늘어요. 자기 힘을 끝까지 다 써봐요. 팍 던지고 팍 돌리고. 과할 만큼요. 처음엔 과해보이고 어색해보여도 나중에 점점 자연스러워질 거에요.”

 

무용 선생님이 나에게 주신 피드백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무용 수업에서 죽을만큼 숨이 찼던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3분 달리기도 힘들어하는 나이기에 폐활량이나 지구력이 좋아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여태껏 나름대로 열심히 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피드백을 들으니 약간 충격이었다.


온몸을 내던져 춤을 춘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코어와 기본기가 부족한 아마추어는 그렇게 했다간 중심을 잃고 넘어지거나 휘청거리기 쉽다. 실수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나는 철저히 내 몸의 가동범위 내에서 모든 동작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에 더 주의를 기울이곤 했다.

 

선생님의 피드백은 사실 새로울 건 없었다. 수업에서 다른 수강생들의 춤을 지켜보면, 모두가 오늘 배운 같은 춤을 추고 있지만 항상 내 눈에도 유독 눈에 띄는 사람들이 있다. 소위 ‘춤을 잘 추는 사람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동작이 매우 크고 과감하다는 것, 말그대로 온 몸을 던져서 춘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춤을 곰곰이 뜯어보면 실수도 있고, 중심을 못잡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온 힘을 다한다. 실수 없이 춤을 추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듯이, 완성도 너머의 무언가를 향해, 그들은 몸을 던진다. 그들의 몸짓은 가끔 처절한 몸부림처럼 다가올 때가 있다.

 

비슷한 느낌을 클래식 연주를 보면서 받곤 한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반클라이번 콩쿨 준결승전에서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을 연주하는 영상을 처음 봤을 때, 나는 그의 비오듯 흐르는 땀과 격한 몸짓에서 아름다움을 넘어선 처절함을 느꼈다. 그의 연주에는 곡을 완벽하게 치겠다는 집념을 넘어 무언가를 향한 간절함과 절박함이 느껴졌다. 클래식 연주에서도 실수 없이 연주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실수 없는 연주가 언제나 좋은 연주인 것은 아니다. 또한 실수가 있는 연주라고 해서 형편없는 연주가 되는 것도 아니다. 수많은 전설적인 연주에도 미스터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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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예술의 비밀은 무엇일까? 무엇이 어떤 예술을 돋보이게, 혹은 평이하게 만드는 걸까? 특정 피아니스트의 연주에서, 혹은 무용수의 몸짓에서 내가 느끼는 이 처절함의 근원은 무엇일까?

 

피아니스트 스티븐 허프의 에세이집 <한번 더 피아노 앞으로>에서 그는 좋은 연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훌륭한 연주자는 거침없이 나아갈 것이고, 위험을 감수할 것이다. 자신을 넘어서고, 음악에 온전히 스스로를 바치고, 정말로 중요한 것에 집중하다 보면 가벼운 사고들이 발생할 것이다. 그때의 연주자는 무릎이 까지고 피를 흘리면서도 가장 높은 산에 오르려 하는 사람이지, 가죽 구두를 신은 채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는 사람이 아니다.

 

 

피아니스트에게 음악은 마치 ‘신’과도 같아서, 영원히 닿을 수 없음을 알면서도 평생을 바쳐 구도자처럼 음악에 정진한다고 한다. 그들의 음악이 진정 우리의 가슴에 와닿는 순간은 악보를 미스터치 없이 완벽하게 연주해낸 순간이 아니라, 완성도 너머의 예술성을 향해 돌진하는 순간일 것이다. 그 길에서는 넘어지고 깨지는 모습마저도 우리 마음을 울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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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뛰어드는 모든 것에 나는 늘 약하다. 도달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멈추지 않는 모든 것에 나는 늘 약하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시시포스의 기꺼운 패배자이다. (…) 모두가 자신이 생각하는 완벽한 연주를 향해 나아간다는 점에서 클래식 피아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장이고, 그래서 나는 저항도 없이 빠져들고 만다.

 

- 김겨울, <아무튼, 피아노>

 

 

어쩌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예술이란 실패할 걸 알면서도 기꺼이 수행하는 마음, 닿을 수 없는 것을 향해서 묵묵히 헌신적으로, 혹은 불나방처럼 열정적으로 달려드는 그 마음 자체가 될 수도 있겠다. 그 인간적이고도 처절한 모습이 우리 마음을 울리는 게 아닐까? 

 

*


다시 돌아와서, 무용을 하는 나를 생각해본다.

 

선생님의 신랄한 피드백을 들은 후로도, 좋은 예술은 결국 완성도가 아닌 헌신과 열정의 마음일 거라 생각하면서도, 나는 내 몸을 완전히 던지지 못한다.

 

사실 이건 돋보이기보다 무난하게 살아가는 내 삶에서의 자세와도 같고, 모험보다 안정적인 걸 선호하는 내 성격과도 같다. 실패가 두려워 온힘을 다하지 않는 것. 넘어지는 게 남들한테 보이기 싫어서 적당히만 하는 것. 

 

영상에 담긴 나의 춤은 무난하다. 실수가 거의 없는 편이고, 동작을 무리 없이 잘 따라하고, 박자도 잘 맞추며, 넘어지거나 휘청거리지 않는다. 하지만 내 옆에서 휘청거릴만큼 온힘을 다해 추는 사람에 비하면 내 춤은 존재감이 없다. 군무 속에서 나는 그저 튀지 않는 배경이 될 수 있을 뿐이다.

 

튀지 않는 훌륭한 배경이 되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삶이 절대 나쁜 것은 아닐 것이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안전한 삶을 선택하는 것이 나쁜 건 아니니까.

 

하지만 나는 지금 그렇기 때문에 불행한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저 훌륭한 배경으로 적당히 살아가고 싶지는 않다. 온힘을 다하려면 먼저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남들 앞에서 요란하게 넘어지는 것보다 대체 가능한 배경이 되는 것을 더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더 과감해지자. ‘무릎이 까지고 피를 흘리더라도 가장 높은 산에 오르겠다’는 각오로.

 

 

[황연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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