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PC는 마약일까, 식칼일까?

글 입력 2023.06.15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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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인어공주>가 개봉했다. 1989년 제작되었던 디즈니의 장편 애니메이션 <인어공주>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제작된 마지막 작품이자, 월트 디즈니 사후 오랜 침체기를 겪던 회사에 전성기를 다시 열어준 대표작이었다. 디즈니 입장에서 <인어공주>는 과거의 안녕과 미래에 대한 기대가 동시에 담겨 있는 기념비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그런 작품을 실사 영화로 제작한다고 했을 때 팬들뿐만 아니라 디즈니 역시 많은 기대를 했을 것이다. 막내딸을 시집보내는 부모의 심정 아니었을까.


허나 개봉 3주차가 넘어가는 시점에서 <인어공주>의 국내 성적은 매우 초라하다. 누적 관객 수는 고작. 61만 명. 관객 평점 역시 네이버 기준 6.3/10.0점, 왓챠 기준 2.7/5.0점에 불과하다. 해외 성적은 어떠할까. 북미에서는 2억 달러 넘게 벌어들이며 나름 선방했다. 문제는 그 밖의 국가들이다. <인어공주>의 글로벌 수입은 1억 4천만 달러에 불과하다(영국과 멕시코를 제외하면 수입이 천만 달러를 넘긴 국가가 없다). 사실상 흥행 실패다. 20세기와 달리 21세기의 인어공주는 사람들로부터 외면받았다.


사실 이러한 결과는 개봉 전부터 어느 정도 예견되어 있었다. 시작은 2019년이었다. 실사로 제작되는 영화 <인어공주>의 에리얼 역할에 흑인 배우인 할리 베일리가 캐스팅된 것이다. 안데르센의 원작과 1989년 애니메이션 속 에리얼에 익숙했던 전 세계의 팬들은 즉각적으로 반발했다. 이에 디즈니도 공식 채널을 통해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영화의 배경을 북해에서 카리브해로 변경하며 개연성을 더했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사람들의 이 같은 반응은 한 가지 불만에서 출발했다. 디즈니가 ‘정치적 올바름(이하 PC)’에 지나치게 매몰되는 바람에 원작을 훼손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이슈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직전에 공개되었던 <피터팬&웬디>에서도 디즈니는 피터팬과 팅커벨 역할에 유색인종 배우들을 캐스팅하면서 큰 반발을 샀다. 하물며 <겨울 왕국>조차 처음엔 페미니즘 영화로 비판받았다(그래도 그땐 지금처럼 거품까지 물고 반대하진 않았다).


한편 대중문화의 또다른 장르인 게임계에서도 이러한 논란은 비일비재하다. <리그 오브 레전드>와 <오버워치>는 이미 만들어진 캐릭터에 뜬금없이 동성애 요소를 부여하며 유저들의 빈축을 샀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2> 역시 주인공 엘리를 레즈비언으로 등장시킨 게 논란이 되었다.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배틀필드5>는 공식 트레일러에 여성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는 이유로 PC에 매달리느라 역사적 고증까지 저버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근 출시한 <디아블로4> 역시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에 PC 요소를 넣으면서 유저들의 불만을 낳았다.


이러한 사례들을 보다 보면 자연스레 몇 가지 물음들이 따라온다. 오늘날 PC를 둘러싼 논란의 배경은 무엇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문화계에서 PC가 꾸준히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PC는 누군가의 말마따나 예술을 망치는 악의 축인 걸까. 이번 시간엔 이 물음들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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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의 등장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란 무엇인가. 사실 이 단어는 굉장히 이상하다. 얼핏 봤을 때 내포한 의미와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올바름은 인종, 민족, 언어, 성별, 종교 등과 관련해 편견 섞인 표현을 사용하지 말자는 사회 운동이다. 차라리 ‘다양성의 정의’ 같은 표현이 더 직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굳이 ‘정치적(Political)’이라는 수사를 붙이는 건 그것을 행하는 주체에게 분명한 이익이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PC는 윤리에 앞서 필요의 논리에 따라 먼저 태동했다는 것이다.


사실 인류의 역사에서 정치적인 목적에 따라 다양성을 용인하는 행위는 생각보다도 훨씬 오래전부터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오스만 제국이다. 오스만 제국은 13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존재했던 제국으로 발칸 반도 일대와 북부 아프리카, 서아시아를 지배했다. 땅이 넓은 만큼 다양한 민족이 모여 살았는데 덕분에 늘 내부 분열의 위험에 시달려야 했다.


이것에 대한 대응책으로 등장한 게 밀레트 제도다. 이는 오스만 제국의 고유 행정 제도로서 제국 내 존재하는 서로 다른 민족들을  각자의 종교 공동체가 맡아 자치하게 했다. 물론 세금(지즈야)을 더 내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각자의 문화적 자치성과 고유성을 보장함으로써 신민들의 불만을 달랬고, 이를 통해 사회 통합과 안정을 이루었다.


한편 오늘날 PC가 가장 발달했다고 하는 북미는 어떠한가. 이곳 역시 오스만 제국과 마찬가지로 필요의 논리에 따라 PC가 등장하고 발전한 사례다. 다른 지역과 비교되는 이곳만의 특징은 대략 두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로 이곳은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다. 원주민이 존재하긴 했지만 북미 지역의 원주민들은 통합된 국가를 이룰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결국 이민자들에게 흡수당하거나 밀려났다. 둘째로 이곳의 역사는 200-300년 정도로 매우 짧은 편이다. 


흔히 국가를 구성하는 데에는 국민, 영토, 주권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들은 국가를 구성하는 외적인 요소일 뿐, 이들을 하나로 아우르기 위해서는 역사, 문화, 언어, 정체성 같은 내적인 요소도 함께 필요하다. 그러나 북미 지역은 어땠을까? 이들도 국민, 영토, 주권은 있었지만 이를 아우를 수 있었던 내적인 요소는 부재했다. 국민들이 국가에 대해 가지는 소속감이 매우 약했다는 소리다. 덕분에 이들도 언제나 갈등과 분열의 위험성을 안고 살아야 했다(이러한 이유로 미국과 캐나다는 일찍이 단방제가 아닌 연방제를 택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PC는 북미 지역의 시민들을 묶어주는 결속력으로 작용했다. 만약 누군가 특정 민족이나 문화를 중심으로 국가를 통합하려 했다면 나머지 사람들은 즉시 반발했을 것이다. 앞서 나열한 북미 지역만의 특징으로 인해 당시 사람들에겐 미국인, 캐나다인이라는 정체성보다 출신 국가에서 비롯된 정체성이 더 강했을 테니 말이다. 택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하나였다. 서로 다른 우리지만 이곳에서는 다같이 잘 살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다. 그렇게 북미는 자연스레 다양성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사회가 되었다. 이곳에서 문화적 다양성을 강조하는 PC는 배부른 신선놀음이 아니었다.  당연히 도덕적인 우월감을 내세우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생존의 문제였다. 


대표적인 예가 캐나다의 퀘백 주다. 실제로 캐나다에서는 1960년대 퀘백 해방전선(FLQ)이 활개를 쳤고, 이후 이어진 국민 투표에서 퀘백 주의 연방 탈퇴 여론이 높아지자 연방 정부는 퀘백 주의 분리 독립을 막기 위해 여러 조치를 단행했다. 그중 하나가 퀘백 주에서 사용하던 프랑스어를 영어와 함께 캐나다의 공용어로 지정한 것이다. 또한 캐나다의 총리는 영어와 프랑스어를 둘 다 할 줄 알아야 한다(덕분에 연설을 할 때면 영어와 프랑스어로 연설문을 두 번 읽는다).


한편 PC의 등장과 확산에는 현대사회의 등장도 한몫했다. 국가마다 현대사회를 정의하는 기준은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0년대 중반 이후를 현대사회로 일컫는다. 두 번의 세계대전과 식민지 시절을 겪으며 사람들은 지금까지의 관습과 체제에 의문을 가졌고, 이는 이후 벌어지는 다양한 사회운동에 기여했다. 우선 전쟁터에 나간 남성들의 사회적 공백을 여성들이 메우면서 여성인권이 크게 성장했다. 세계 각지에서는 제국주의의 잔재에 맞서 독립운동이 일어났고, 미국에서는 여전한 인종 차별에 맞서 흑인 민권운동이 일어났다. 민주화 운동도 곳곳에서 일어났다.


각자 주장하는 바는 달랐지만 이러한 사회 운동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국가주의 같은 기존의 통일된 관습이나 이데올로기에 맞서 '나'라는 존재의 의의와 가치를 강조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집단보다 개인이 중요한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현대사회의 주요 특징이라 볼 수 있는 개인주의, 개성의 표현, 표현의 자유 등은 모두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덕분에 세상에 존재하는 개인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가치들이 등장했다. 개인이 중요한 시대는 그 가치들이 모두 소중하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레 PC가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아닌 게 아니라 처음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던 1980년대는 이러한 사회 운동과 경향이 정점이던 시기였다. 한국에서는 6월 민주 항쟁이 일어났고, 사회주의로 대표되는 소련의 붕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미국에서는 마이클 잭슨, 마돈나, 휘트니 휴스턴 등이 등장하며 대중문화계에 여전히 남아 있던 성별, 인종적 장벽을 무너뜨리는 데 기여했다.


이렇듯 PC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정치적 필요와 사회적 토대가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다. 자, 그럼 PC의 등장 배경에 대해 알아보았으니 다음은 대중문화에서 PC가 난립하는 이유에 대해 다뤄볼 차례다. 대중문화는 왜 이렇게 PC를 좋아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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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가 PC를 사랑하는 이유


 

가장 원론적인 답변은 예술이 현실을 반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대는 집단보다 개인이 더 중요한 시대다. 덕분에 다양한 가치와 가능성이 주류의 세계로 떠올랐다. 여성, 흑인, 아시아인, 동성애자, 장애인 등 이전까지 소외받았던 사회의 주체로 전면 등장한 것이다. 흑인 가수가 빌보드를 석권하고, 식민지계 인물이 옛 제국주의 국가의 총리가 되었다. 그리고 대중문화는 이러한 모습을 자연스레 반영했을 뿐이다.


다음으로 PC의 유행에 창작자의 정체성이 반영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이전 시대에 소수자, 사회적 약자로 취급받던 이들이 사회의 주류로 등장하면서 창작자들의 인구 구성에도 변화가 생겼다. 소외자들도 작가로서 자기만의 작품을 창작하기 시작한 것이다. 예술은 기본적으로 표현의 도구다. 작가가 된 이들은 작품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 문화, 가치관 등을 표현했다. 특히 영화나 게임 같은 경우 많은 사람들의 협업으로 탄생하는 만큼 투영되는 정체성이 다양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 견해는 경제적인 논리다. 쉽게 말해 PC가 돈이 된다는 것이다. 어떤 산업이든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존 고객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고객을 개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PC는 문화산업에 있어 고객의 외연을 확장하는 데 있어 쓸만한 도구다. 보다 많은, 보다 다양한 고객들에게 이 콘텐츠를 내 이야기처럼 즐길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특히 문화산업은 취향에 따라 상품에 대한 고객들의 호불호가 쉽게 갈리는데 PC를 통해 이러한 간극을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017년, 미국의 에이전시 CAA(Creative Artists Agency)는 영화에서 다양한 인종이 등장할수록 흥행에 도움이 된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지난 2015년 개봉한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기록적인 국내 흥행에는 배우 '수현'의 등장과 서울 로케이션 촬영이 큰 영향을 미쳤다. 작년에 개봉한 <이터널스>의 흥행 역시 배우 ‘마동석’의 존재가 주효했다(이터널스의 국내 매출은 전 세계 기준 2위였다. 1위는 북미 지역). 즉, 슈퍼히어로 장르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혹은 이 시리즈에 관심이 없더라도 헐리우드 영화에 한국인 배우가 나온다는 것만으로 적지 않은 관객들에게 극장을 방문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


한편 영화뿐만 아니라 게임에서도 PC의 경제적 논리는 유효하다. 지난 2019년, 폴란드에서는 성소수자(LGBT) 옹호 사상에 반발하는 시위가 거세게 일어났다. 폴란드의 30%가 넘는 지역이 LGBT 프리존(성소수자 없는 구역)을 선언했을 정도였다. 당시 폴란드 대통령 역시 LGBT를 폴란드의 위협으로 규정하며, 이들의 권한을 제한하는 각종 법안을 입법했다.


하지만 <위쳐> 시리즈와 <사이버펑크 2077>의 제작사로 유명한 CDPR은 오히려 동성애 혐오를 반대하는 캠페인을 후원했다. 회사 로고도 무지개로 바꿨다. 폴란드에 본사를 두고 있는 회사가 이같이 행동할 수 있던 건 그들의 주요 고객이 폴란드가 아닌 유럽을 비롯한 서방 국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CDPR의 주요 고객들은 폴란드 정부의 이러한 행보를 강력하게 비난하고 있었다(오죽하면 EU가 폴란드의 성소수자 없는 구역을 겨냥하여 EU 전역을 성소수자 자유 지역으로 선언했을 정도다). 고객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도 CDPR 입장에서 PC는 당연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동시에 도덕적인 기업으로 브랜딩까지 할 수 있었으니 일석이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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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는 마약일까, 식칼일까


 

이제 마지막 단계다. PC의 의도와 다르게 오늘날 PC는 또 다른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 주인공이 성소수자라던가, 혹은 원작에 없던 흑인 캐릭터가 등장하면 소위 'PC가 묻었다'며 작품의 완성도와 무관하게 온갖 비난이 쏟아졌다. 대관절 왜?


물론 오늘날 반((反)PC 정서엔 여러 이유가 있다. 하지만 오늘은 주제가 주제인 만큼 카테고리를 대중문화에 한정하여 살펴보려 한다. 사람들이 대중문화 속 PC를 혐오하는 가장 큰 이유는 PC가 콘텐츠를 망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령 이번에 논란이 된 <인어공주>는 팬들의 반발을 의식하여 영화의 배경을 카리브해 인근으로 옮겨왔지만 정작 왕자와 마녀 역할엔 백인 배우를 캐스팅했다. 만약 디즈니가 개연성을 고려했다면 나머지 배우들도 영화의 공간적 배경에 맞게 유색인종을 캐스팅했어야 맞다. 허나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블랙 워싱이라느니, PC에 매몰되었다는 뒷말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PC가 예술에 무조건적으로 악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는 없다. 반대 사례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소개했었던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이라는 게임을 떠올려 보자. 이 게임은 어느 날, 갑자기 자의식을 갖게 된 안드로이드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게임엔 총 세 명의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그중 ‘마커스’라는 안드로이드는 다른 안드로이드들을 이끄는 리더 역할을 맡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캐릭터가 흑인의 모습으로 모델링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작중 마커스는 다른 안드로이드들과 함께 거리에서 자유를 얻기 위한 시위를 벌이는데 이는 자연스레 1960년대 미국에서 벌어졌던 흑인 민권 운동을 연상시킨다. 심지어 마커스의 성우는 흑인 인권 운동가로도 유명한 배우 제시 윌리엄스다. 이는 명백히 의도된 설정이고, PC적인 요소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이 게임의 PC를 비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히려 이 게임의 PC는 게임의 서사와 매우 잘 어울린다. 마커스가 흑인의 외형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게임의 주제는 보다 강력한 울림을 전달할 수 있었다.


이 두 가지 사례는 오늘날 PC를 둘러싼 논란을 지켜보는 우리에게 의미심장한 화두를 던진다. PC는 마약일까, 식칼일까(영화 평론가 이동진씨의 비유에서 가져왔다). 마약은 경우에 따라 진통제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중독성이 강하고, 오남용의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엄격한 관리와 규제를 필요로 한다. 


반면 식칼은 어떠할까? 식칼도 위험하긴 하다. 뉴스를 보면 식칼이 범행 도구로 사용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식칼에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식칼은 본질적으로 조리도구이기 때문이다. 만약 식칼이 흉기로 사용된다면 그건 식칼의 문제가 아니라 식칼을 흉기로 사용한 사람의 문제라고 보는 게 더 바람직하다.


바꿔 말해 만약 어떤 콘텐츠에 PC가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비난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PC를 마약으로 보는 것이다. 그렇지만 <인어공주>외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을 모두 본 입장에서의 내게  PC는 식칼에 더 가깝다. PC를 잘못 활용한 창작자에게 잘못이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정치적 올바름이 사회의 주요 화두로 떠오르면서, 더군다나 그것이 더 많은 돈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중문화의 창작자가 PC를 오남용하는 사례는 늘어나고 있다. 마치 공장에서 제품을 조립하듯 기계적으로 인종, 혹은 성별에 대한 쿼터를 설정하고 콘텐츠를 창작한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캐릭터, 혹은 설정들은 PC의 본래 목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트렌스젠더로 등장하는 '유이'를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떠올려 보자. 사실 이 영화에서 유이는 굉장히 애매한 캐릭터다. 명색이 가이드인데 이 영화 속 등장하는 대부분의 태국인은 영어나 한국어를 할 줄 알아서 통역이 거의 필요가 없다. 2시간을 통틀어 딱 한 번 아이들과 대화할 때를 빼면 이 무용한 캐릭터는 인남의 동선에 편의적으로 끌려다니며 짜증이나 부린다. 그래서일까? 영화 중반부에 유이는 아예 등장하지도 않는다. 나름 비장의 카드랍시고 감독이 박정민 배우를 예고편에도 등장시키지 않았다는데 그런 것 치고는 맡은 역할이 너무 소소하다. 


다시 말해 이 영화에서 유이란 캐릭터의 목적은 오직 하나다. 박정민이란 배우를 이런 식으로 등장 시킴으로써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 이 인물이 어쩌다 태국으로 흘러 들어왔는지, 트랜스젠더로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영화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오히려 유이를 저급한 성적 농담의 소재로나 활용하고 있을 뿐이다. 아무리 트랜스젠더가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하더라도 이러한 묘사가 과연 정치적 올바름에 기여한다고 볼 수 있을까? 트랜스젠더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을 바꿨을까? 그것도 아니면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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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기능적이고 편의적인 PC의 활용은 대중문화의 생태계 전반에 악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다가온 다양성의 시대에 창작자들은 더욱 철저해야 한다. 누구를 등장시킬지 뿐만 아니라 왜 등장시키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처럼 설득력을 확보하고,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


물론 대중문화를 즐기는 우리도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PC를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이 없어지는 일은 오지 않을 것이다. 세상엔 여러 부류의 사람이 존재하고, 우리는 다양성이 당연한 시대에 이미 들어섰다. 무엇보다 이미 여러 번 말했듯 PC는 돈이 되기 때문에 창작자들이 그걸 포기할 리도 없다. 


그러니 이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서라도 PC를 마약으로 바라보는 일은 사라져야 한다. 설령 PC 때문에 망한 작품이 있다 하더라도 그건 PC가 아닌 창작자의 문제다. 만약 그럼에도 PC를 계속 마약으로 본다면 그것 역시 창작자의 게으름처럼 대중문화에 해를 끼친다. 창작자가 고민해야 하는 이유, 고민할 수 있는 동력을 앗아가기 때문이다.


미국의 작가 로이스 타이슨은 자신의 책 <비평 이론의 모든 것>에서 비평 이론을 렌즈에 비유했다. 쉽게 말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비평 이론만큼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PC에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다. PC 역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하나일 뿐이다. 


정치적 올바름이 추구하는 건 세상의 모든 인어공주를 흑인으로 바꾸는 게 아니라, 백인 인어공주만 있는 세상에 흑인 인어공주도 하나쯤 추가하는 것이다. 흑인 인어공주를 추가하는 방법에 대해 의문을 던질 순 있어도, 추가한다는 사실 자체에 분노한다면 오늘날의 논란엔 끝이 없다. 흑인 인어공주가 싫다면 다음 인어공주 영화를 기다리면 된다. 그런 관대함이 앞으로의 우리들에겐 점점 더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모인 관대한 개인이 세상이야말로 앞으로의 PC가, 예술이,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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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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