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루지 못한 자들의 무의미해보이는 찰나를 위한 시 - 연극 ‘우주먼지’, 정:지 연출가전 페스티벌

글 입력 2023.06.09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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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에서 술 취해서 곯아떨어진 아저씨가 삼십 대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한테 기대는 것을 본 적 있다. 둘은 서로 모르는 사람처럼 보였는데, 그 여자는 자신의 어깨를 내어주고 그냥 있었다. 둘 사이에는 어떤 성적이거나 강요된 맥락은 보이지 않았고, 어떤 고귀한 의도나 특정한 애정도 묻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이엔 묘한 위안감이 있었다. 짐승이 서로의 몸통에 턱을 올려놓고 자는 것처럼, 오래 서 있어서 얼얼해진 다리를 편하게 펼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이 인간을 지탱하는 그 여자와 그 남자의 자연스러운 표정이란. 그것은 일상에서만 발견될 수 있지만 자주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오늘 리뷰할 <우주먼지>는 나에게 그런 인상의 작품이다. 내용상으로나 관계로서나 포인트는 다르지만, 이 작품의 두 주인공도 서로를 지탱해간다. 막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고, 이야기의 내용을 끌어가는 인물은 이십 대 중후반정도로 보이는 여자 주인공이다.

 

그녀는 체홉의 <갈매기>의 역할 오디션을 위해 시간을 쪼개 연습한다. 연극이 시작되면 그녀는 버스 정류장의 의자 위에서 이런 대사를 한다. “(숨을 고르며)저 너무 늦지 않았죠? 저 이날만을 기다렸어요. 아버지가 계모와 외출했어요. 저는 그래서 말을 타고 여기까지 달려왔답니다. 이랴! 이랴!”

 

이 대사는 작중에서 두 번 정도 등장한다. 그녀가 연습하는 오디션의 이 대사에는 연기에 대한 간절한 갈망과 현실적인 압박감으로 인한 초조함, ‘당신과 만나는 그 순간’을 위해 쉬지 않고 말을 몰았을 치열함이 그대로 녹아있다.

 

버스 정류장은 인간과 사물이 모두 스쳐 지나가는 곳이다. 그 위에서 간절한 찰나를 그리워한 인물을 쫓기듯 연기하는 여자 주인공의 상황 그 자체가 그녀의 삶을 잘 드러내고 있다. 돈을 벌기 위해 온종일 아르바이트를 하고, 부모님과 스스로의 우려 때문에 자격증을 따는 그녀에게 가장 하고 싶었던 꿈은 이미 사치를 넘어서 욕심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그녀는 아르바이트 동료와 흐른 약간의 사랑의 기류마저 떨쳐내고, 지친 몸을 끌어올려서 방의 불을 켠다.

 

그녀의 대사가 사랑스러운 것은, 그 대사의 기반에 깔린 것이 간절한 사랑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품고 있다 하더라도, 그녀의 삶이 고통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단순히 열심히 산다는 데 의의를 두기엔, 그녀가 가장 원하는 것도, 억지로 하는 것도 마음껏 즐길 수 없다.

 

그래서 여자 주인공은 자기 자신을 우주먼지라고 비유한다. 이 우주먼지의 비유는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데, 첫 장면에서 배우는 무표정하고 약간은 쓸쓸해 보이는 표정으로 양팔을 벌리고 자신의 삶의 무게, 공허하고 혼란스러운 시대에 떠도는 자기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려는 것처럼 약간 소리지르듯 대사를 한다.

 

그녀는 현대사회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너무나 닮았다. 너무 작고 익숙해서 지나치기 쉬운 모습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찰나를 차마 스쳐지나가지 못한 이가 있으니, 버스정류장에서 사는 노숙자다.

 

노숙자는 한때 거대한 부를 움켜쥐었던 사업가였지만, 몰락한 이후로는 아내와 자식들이 떠나고 삶을 포기했다. 노숙자는 그녀가 ‘살아있다’는 것과 대조적으로 자신은 그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그는 그녀를 인지하고, 그녀의 연기가 좋다고 말한다.

 

잠시 거쳐 지나가야 하는 버스정류장에서 움직이는 것조차 잃어버린 자에게 말을 몰아대는 이의 모습은 찬란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끝없이 움직여야 했던 이에게 완전히 멈춰버린 자는 급격히 가벼워졌던 자신의 존재를 잠깐 내린 닻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래서 둘은 계속해서 마주친다. 정확히는 버스정류장에 여자가 계속 찾아간다. 둘의 관계는 음식을 주고받는 행위에서 좀 더 정교해진다. 첫 번째 교환은 여자가 없는 살림에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멀리 있는 가게까지 달리다가 가게가 닫혔다는 사실을 깨닫고 배고프고 서러워서 정류장에 쓰러져있을 때 일어난다.

 

노숙자는 그녀에게 폐기 삼각김밥을 하나 보여준다. 여자는 그것을 잡기 위해 함께 정류장을 빙빙 돌고, 이 장면은 상당히 밝고 장난스럽게 묘사된다. 개인적으로도 이 장면을 이 작품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두는데, 자신의 욕망을 마음껏 채울 수 없어 허기진 두 명의 인물이 (그것이 폐기상품이라 할지라도) 서로 먹여주는 상황 때문이다. 그리고 노숙자가 주저 없이 꺼내서 장난친 폐기 삼각김밥은 노숙자에게 소중한 음식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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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쾌한 장면이 지나가고, 여자가 그것을 완전히 건네받으려 할 때 서러움이 터진다. 그녀는 노숙자의 처지가 자신과 같다는 것을 깨닫는다. 악의없는 부정에도 노숙자는 살아있는 것과 존재하는 것을 구분하면서 삼각김밥을 거부한 여자에게 그것을 준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야말로 언제 죽어도 상관없는 사람임을 밝히며, 자신처럼 살지 말라는 이야기한다. 노숙자의 자기부정을 통한 위로는 보기 불편한 부분도 있지만, 반대로 그녀를 통해 어떤 희망을 찾으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결국 여자는 좀 더 커진 삼각김밥으로 자신의 무례했음을 사과한다. 노숙자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둘은 노숙자가 잘나갔던 시절에 찍은 사진들을 함께 살핀다. 여자는 노숙자에게 ‘왕년’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함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이 노숙자가 잘 들어줬던 덕에 마음이 편해졌다고 이야기한다. 그때 고구마 장수가 지나가고, 노숙자는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과 똑같이 사업이 망했음에도 고구마 장사를 했다는 것을 떠올린다.

 

여자는 고구마를 사서 노숙자와 나눠 먹는다. 그리고 노숙자에게 아버지를 다시 찾아가보는 것은 어떠냐고 묻는다. 노숙자는 그것을 진지하게 듣고, 자신을 우주먼지라고 했던 여자의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세상의 색감을 칠하는 석양은 우주먼지 덕분이라고 이야기한다. 애당초 이 땅부터가 먼지의 결합 아니었는가.

 

여자는 노숙자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은 이별을 고하고, 다시 버스 정류장에서 양팔을 뻗고 처음과 똑같이 우주먼지에 관련된 이야기를 한다. 이번에 그녀는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부유한다. 그녀는 이제 쓸모없는 우주먼지가 아니라, 쓸모 있는 우주먼지이며, 인식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일부를, 가장 아름다운 하늘을 수놓는 것이 된다. 그래서 그녀는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크게 소리 지를 필요가 없다. 이렇게 연극은 막을 내린다.

 

내게 연극 <우주먼지>는 가볍지만 부드럽게 읽혔다. 흔한 이야기라면 흔한 이야기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어떤 애정 어린 관점은 흔하지 않다. 작품에서 담고 있는 이야기는 혼란스러운 20~30대를 위한 것이다. 노숙자와 여자는 버스정류장에서 만나, 결국 서로의 목적지를 향해 움직인다. 머무르고, 부유할지도 모르지만, 그러한 부분이 이 우주를 존재하고, 아름답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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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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