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 건강한 관계 지침서

글 입력 2023.06.08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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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만나 새로운 가족의 형태가 되는 이야기. 지극히 닮았으나 지극히 다른 두 사람이 어우러지는 이야기가 단숨에 읽힌다.

 

일단 제목부터가 흥미롭다. 이 여자 둘은 누구일까? 둘은 어디서 살고 있는 걸까? 둘은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 걸까? 이들은 '왜' 같이 살고 있는 걸까?

 

["혼자 하는 모든 일은 기억이지만 같이 할 때는 추억이 된다는 이야기를. 감탄도 투덜거림도, 내적 독백으로 삼킬 만큼 삼켜본 뒤에는 입 밖에 내서 확인하고 싶어진다."]

 

'혼자'를 누릴 만큼 누려 본 저자는 위와 같이 이야기한다. 고독을 즐기지만 외로움을 타는 나로서는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혼자 있는 시간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추억을 함께할 사람 역시 필요하다. 지나간 시간은 연결적으로 남기보다 파편적으로 남는데, 그 시간의 파편 하나하나는 그 순간 함께한 사람이 누구였는지, 그 때 무엇을 함께했고 얼마나 즐거웠는지로 기억된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많은 시간은 새로운 추억을 쌓으면서, 또 그 이전의 순간을 추억하는 형태로 지나간다.

 

그래서 저자는 타인과 함께하기로 결정한다. 이 때 두 사람이 함께 살게 된 이유는 이해의 일치 때문이라고만 보기에는 낭만적이다. 한 명은 타인의 온기가 함께하는 삶이 그리웠고, 한 명은 마음에 드는 집에 살기 위해 부담을 나눌 사람이 필요했다. 그 와중에 함께하고자 하는 타인의 조건(비슷한 나이, 비슷한 취향, 고양이!)에 서로가 부합한 것도 맞겠지만, 그 과정은 일견 드라마 같다. 놓쳐 버린 첫 번째 집, 기적처럼 찾아온 두 번째 집, 태양의 아이에게 걸맞은 눈부신 햇살로 가득했던 집, 햇살이 거둬진 와중에도 흔들리는 플라타너스 잎에 마음을 빼앗긴 태양의 아이.

 

하지만 두 사람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생활 반경, 생활 습관, 싸우는 방식까지 서로가 다른 지점들은 함께하기 시작한 순간 보다 두드러진다. 미니멀리스트인 저자는 맥시멀리스트의 짐을 치우다 치우다 전기 포트를 버리는 일로 결국 폭발해 버린다. 저자의 말마따나 전기 포트는 계기일 뿐이다. 그 이전까지 쌓였던 모든 불만, 서러움이 임계치에 도달했을 때 전기 포트가 그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서로 다른 세계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왔던 두 사람이 한 공간을 공유하게 되었을 때의 갈등은 그 뒤로도 이어진다.

 

그럼에도, 그렇게 불같이 화를 내고, 울면서 쓰레기를 치우면서도 두 사람은 관계를 놓지 않는다.


["사람은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지만 자신의 세계에 누군가를 들이기로 결정한 이상은, 서로의 감정과 안녕을 살피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계속해서 싸우고, 곧 화해하고 다시 싸운다. 반복해서 용서했다가 또 실망하지만 여전히 큰 기대를 거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계속해서 기회를 준다. 그리고 이렇게 이어지는 교전 상태가, 전혀 싸우지 않을 때의 허약한 평화보다 훨씬 건강함을 나는 안다."]

 

건강한 관계란 무엇일까. 서로의 감정과 안녕을 살피고 노력하되, 부딪쳐야 할 순간에는 부딪치고, 계속해서 실망하더라도 서로에게 기회를 주는 것. 만약 첫 번째 조건만 충족한다면, 그 관계는 언제든 무너져버릴 수 있는 모래성과도 같다. 발산해야 할 감정을 모두 삭이는 과정에서 서로 입은 상처는 아물지 못하고, 상대에 대한 불만은 축적되고 응축된다. 부정적인 감정은 방 한구석의 먼지덩어리와도 같아서, 계속 신경쓰이는 것은 물론 나도 모르게 그 덩어리가 점점 커져 가기 마련이다. 이렇게 혼자서 계속되는 실망을 거쳐 모든 기대를 놓아 버렸을 때, 그 관계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무너진 상태일 것이다. 기대할 것이 없는 상대와 무엇을 함께하고 싶겠는가?

 

이런 순간에는 나 자신을 먼저 돌아봐야 한다. 내가 내 감정을 이야기하기를 너무 쉽게 포기하진 않았는지, 혹은 상대가 어렵게 부딪쳐온 순간을 회피하지는 않았는지. '허약한 평화'에 매달려 관계가 개선될 수 있었던 순간을 맥없이 놓쳐 버린 것은 아닌지.

 

["나에 대해 깨닫고 나자 오히려 동거인에 대한 이해의 폭이 더 넓어졌다. 우리가 세상을 똑같이 지각하는 게 아님을, 애초에 당신과 나의 세상이 다름을 알게 되었으므로."]

 

두 사람이 함께하게 되었다고 해서 각자가 가지고 있던 세상이 합쳐지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세상에 살되, 서로의 세상을 존중하고, 공존할 수 있는 지대를 찾아나가는 것이다. 똑같은 거리를 걸어도, 똑같은 그림을 보고 똑같은 책을 읽어도 내가 느끼는 것과 네가 느끼는 것이 같다는 보장은 없다. 그것을 인정하고 나서야 치열한 공존, 건강한 관계의 지속이 가능하다.

 

나의 세상과 너의 세상이 다름에 슬퍼할 필요도, 실망할 필요도 없다.


나의 세상과 너의 세상이 다르기에 우리는 서로를 특별하게 느낄 수 있었을 테니까.


나에게도, 나와 함께하는 너에게도 다정한 시선을 보내게 되는 책이었다.

 

 

[유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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