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적인 폭력] 20. 가정의 달 5월을 떠나보내며

글 입력 2023.06.06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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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가정의 달 5월을 보내며


 

무더운 더위가 봄의 종말을 고하자, 습관처럼 ‘벌써 왜 이렇게 덥지?’라고 자문했다. 그러다 금세 답을 찾았다. 정신 차리니 어느새 6월이 된 지도 며칠이 지났다. 이 더위는 이상할 게 하나 없는, 자연스러운 여름의 더위였다. 5월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도 아직 적응 못 했는데 벌써 5월을 떠나보내고 상반기의 마지막 달을 살아야 한다. 남녀노소가 들뜬 기분으로 이런저런 행사에 참여했던 가정의 달 5월이 이렇게 끝이 났다.

 

해가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지는 것처럼 나는 5월이 가정의 달이라는 말을 오랫동안 아무런 의문 없이 받아들였다. 왜 하필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하는 걸까? ‘가정의 달’이라는 말은 단순히 사회의 암묵적 규칙이 아닌 건강가정기본법 제12조에 명시된 용어였다. 1993년 UN이 가정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모든 사회 구성원이 건강한 가정을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하자는 취지로 세계 가정의 날을 제정했다. 이후 전 세계 국가가 5월 15일을 가정의 날로 삼았고, 한국은 1994년부터 세계 가정의 날을 기념했다. 그리고 2004년부터 건강가정기본법에 따라 5월 15일을 법정 기념일로 지정했다.

 

‘가정의 달’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5월에는 가족 관련 기념일이 정말 많다. 어린이날(5월 5일), 어버이날(5월 8일), 스승의 날(5월 15일)과 같은 대표적인 기념일은 물론이고, 가정의 달 5월에 둘(2)이 하나(1)가 된다는 의미를 담아 매년 5월 21일 부부의 날도 기념하고 있다.

 

5월은 기후적인 특성에서도 기념일 삼기 좋은 달이다. 맑고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면서도 한여름보다는 시원하기 때문에 야외활동이 수월하다. 남녀노소 모두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분위기라서 각종 행사가 주최되기 딱 좋은 조건을 가졌다.

 

 

 

내가 겪은 5월



나 역시 이렇게 화목한 기운으로 가득한 5월에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어린이날이 금요일에 자리 잡은 덕분에 무사히 가족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고, 주말마다 친구들과 만나며 따뜻하고 화창한 날씨를 즐겼다. 그 외에도 본격적으로 관심 분야를 공부하고, 성실하게 문화생활도 해내는 등 5월의 활기에 힘입어 유익한 활동을 많이 펼쳤다.

 

그러나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유명한 말처럼 겉보기에는 무탈한 하루하루였지만 나의 마음은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원래도 감정 기복이 큰 편이지만, 이번 5월은 유독 그랬다. 좋은 시간을 보낼 땐 한없이 행복하다가도 혼자 있거나 사소한 거라도 원치 않은 변수를 맞닥뜨리면 곧바로 무너지기 일쑤였다. 그중에서도 가족여행 때 더욱 격렬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겪었다.

 

5월 첫째 주에 떠났던 가족여행은 정말 이상적이었다. 가족들의 노력으로 근사한 펜션에서 물놀이에 바비큐 파티, 보드게임까지 하는 등 알찬 활동으로 여행 일정이 빼곡히 채워졌다. 화룡점정으로 곧 있을 어버이날을 대비해 큰 언니의 효도 선물 전달식까지 거행되었다. 정말이지 남 부럽지 않은 화목한 가족여행이었다.

 

문제는 나란 인간은 행복한 순간을 맞으면 맘껏 만끽하지 못하고 괜히 생각이 많아지는 타입이라는 것이다. 모두가 활짝 웃는 이 아름다운 풍경에는 분명 나의 자리도 있었다. 나 역시 쉴 새 없이 웃고 떠들어대며 여행을 즐겼다. 그러나 그렇게 웃고 떠드는 와중에도 마음 한구석에는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찜찜함이 있었다. 하루가 끝나고 일기를 쓸 때 비로소 그 찜찜함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위화감이었다.

 

위화감의 사전적인 정의는 ‘조화되지 아니하는 어설픈 느낌’이다. 가족 구성원들과 조화되지 못한 건 아니었다. 모두 나를 진심으로 아껴주었고, 나도 그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차마 적응하지 못했던 건 화목한 가족의 이미지였다. 아직 내 마음에는 해소되지 않은 응어리가 가득한데 그날의 가족여행은 나의 응어리 따위 아무렇지 않게 지워낼 만큼 완벽했다.

 

그 응어리는 모두 과거의 것이다. 지나간 오해와 지나간 외로움이었다. 나의 발목을 붙잡았던 안 좋은 기억들은 대부분 최소 십 년 전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우리 가족의 상황은 그때와 완전히 달라졌고, 가족 구성원들도 모두 그때의 가족이 아니었다.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건 나 한 사람뿐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과거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 게 아니라 너무 늦게 발을 들였다.

 

그동안 나는 가족들의 헌신에 황송해하느라 나의 유년 시절과 청소년 시기를 지배한 결핍과 상처를 돌보지 못했다. 최근에야 뒤늦게 망가진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힘껏 나를 연민했다. 평생을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행하다’라는 자기 비하와 ‘이 정도 일 가지고 왜 이렇게 엄살을 부리는 걸까’라는 자기 검열과 싸우던 나는 요즘에야 그 합의점을 찾았다. 그것은 나를 깎아내리지 않으면서도 연민하는 태도였다. 최근 느낀 자기연민은 전처럼 파괴적이지 않고 몹시 따뜻했다.

 

그날의 가족여행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사이에 빚어진 갈등의 종착점이었다. 1박 2일의 여행이 끝나고 일기를 통해 여행 내내 내가 느꼈던 감정의 정체를 ‘위화감’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곤 이제는 우리 가족이 화목한 흉내를 내는 게 아니라 정말 화목해진 게 맞다는 사실을 인정하자고 덧붙였다. 그렇게 나는 아무도 모르는 혼자만의 사투를 끝냈다.

 

 

 

가정의 달이 가리키는 가정은 어떤 모습일까



어른이 되고 나서는 국가 행사에 일일이 반응할 여유가 없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등은 형식적인 기념일뿐이었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 관련 행사를 주관하는 학교가 없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아주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가정의 달’이라는 개념을 떠올리며 내가 어린 시절 행했던 가정의 달 행사를 떠올려 보았다. 매년 다양한 활동을 했지만, 정말 그 행사를 통해 내가 가족의 의미를 되새겼는지는 모르겠다. 행사에서 가리키는 가족은 미디어에서 묘사한 정상 가족이었기에 다른 아이들의 눈치를 살펴 그린 듯한 가족을 표현하기에 급급했다. 그때도 나는 정체 모를 찝찝함을 외면했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 그 감정 역시 내가 가족여행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위화감이었다.

 

아주 당연한 소리지만 모든 가족이 두 명의 부모님을 둔 상태로 불화도 없고 빈곤도 없을 수는 없다. 또한 누군가는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도 성별이 같다는 이유로 법적인 가정을 꾸리지 못하기도 한다. 나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은 ‘우리 가족’이 화목해도 위화감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가족’이 화목할 때 위화감을 느끼는 경우는 더욱 많을 것이다. 빛은 그림자를 동반한다. ‘가족’이라는 말이 누군가에겐 마냥 따뜻하겠지만, 누군가에겐 그 무엇보다 날카로운 상처가 될 수도 있다.

 

포털사이트에 ‘가정의 달 행사’라고 검색하자 수많은 뉴스가 떠올랐다. 지방자치단체와 기업 등에서 ‘가정의 달’이라는 명목으로 가족을 야구 경기에 초대하거나 배우자에게 편지를 쓰는 등의 활동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여러 행사를 훑어보는 중 유독 눈에 들어오는 활동이 있었다. 아동학대 예방 캠페인을 전개하거나 아동복지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독거 어르신 댁에 음식을 전달하는 등의 활동이었다. 물론 특정 단체에서 이러한 활동을 이미지 쇄신의 용도로 이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갈수록 삭막해지는 현대 사회에서 소외 계층에게 손길을 건네는 행위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빛은 세상을 밝게 비추기도 하지만 그림자를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기도 한다. 당장 나도 내면의 그림자를 물리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린이에게 가족의 울타리는 절실하다. 가정의 달 행사를 주관하는 주체들은 세상의 모든 어린이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 어린이가 세상이 정의하는 정상 가족에 속하지 못한다면, 모두가 행복해야 할 가정의 달 행사는 오히려 상처가 될 수도 있다.

 

김소영 작가는 어린이에 관한 에세이 <어린이라는 세계>에서 대한민국의 여러 육아 예능이 지나치게 화목하고 부유한 가정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어린이는 화목한 가정의 어린이보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적어 텔레비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어린이일 확률이 높다. 지금에야 나는 완벽한 가족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그런 모습은 이상향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어린이는 완벽한 모습이 정답이고 자신이 처한 상황이 이상하다고 자책하기 쉽다.

 

어린이만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다. 미디어에서는 모두가 화목한 정상 가족에 반대되는 이미지로 극단적으로 폭력적인 가족의 이미지만을 보여줬다. 수많은 가정은 그 중간에 위치한다. 나는 남들처럼 행복하지 못하다며 비교하고 남들만큼 불행한 건 아니라며 검열하느라 나 자신에게 가혹한 태도를 유지했다. 가정의 달이 더욱 다양한 형태의 가정을 대상으로 한다면 나처럼 무의미한 비교를 하는 어른도 줄어들 것이다.

 

점점 이 사회에 가족 공동체가 흔들리고 있다. 1인 가구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출생률은 연일 최저점을 갱신한다. 가족에 관한 담론이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평면적인 가족관 때문에 상처받은 이들이 가정을 꾸리는 일이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금 이러한 현상을 마냥 개인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라는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을 생각해볼 때다. 인간이 복잡한 동물인 것처럼 그 복잡한 인간으로 구성된 가족이란 존재 역시 마냥 낭만적이지 않다.

 

가정의 달은 매년 찾아온다. 내년 5월에도 가정의 달을 맞아 수많은 행사가 열릴 것이다.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자는 본래의 취지가 효과적으로 전달되려면 가족이 든든한 울타리가 아닌 날카로운 가시처럼 존재하는 이들에게도 손길을 건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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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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