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라울 뒤피의 삶을 산책하다 - 뒤피: 행복의 멜로디 展 [전시]

글 입력 2023.06.06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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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현대서울_퐁피두_뒤피_포스터1.jpg

 

 

"모르니까 열심히 보며 배우자!"라는 마음가짐으로 미술/전시 문화에 열심히 응하겠다고 다짐한지도 어느덧 두 달째. 더현대서울과 프랑스국립현대미술관이 함께 개최한 <라울 뒤피 : 행복의 멜로디> 전시는, 마치 솜사탕처럼 밝고 포근한 포스터 속 그림과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인 '행복'을 포함한 제목에 이끌려 보게 되었다.

 

전시관이 문을 닫기까지 한 시간 남짓이 남은 24일 저녁, 나는 바쁜 발걸음으로 더현대서울 6층에 위치한 ALT.1으로 향했다.



뒤피 : 행복의 멜로디 展 전시 구성


섹션 1 / 인상주의로부터

섹션 2 / 야수파 라울 뒤피

섹션 3 / 입체파로서의 라울 뒤피

섹션 4 / 뒤피의 민중예술

섹션 5 / 패션

섹션 6 / 장식예술

섹션 7 / 바다와 말

섹션 8 / 여행자의 시선

섹션 9 / 초상화

섹션 10 / 대형 벽화 장식

섹션 11 / 아틀리에

섹션 12 / 검은빛


 

 

미술사조로 알아보는 라울 뒤피 : 인상파, 야수파, 입체파로서의 뒤피


 

라울 뒤피의 이름을 처음 들어보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릴 질문은, 바로 다음과 같을 것이다. "그래서 뒤피는 어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데?" 이러한 질문에 가장 손쉽고 명쾌하게 대답하려면, 그 화가가 어떤 미술사조에 따라 그림을 그렸는지 말해주면 된다.

 

내가 인상주의, 야수주의, 입체주의에 대해서 아주 깊은 지식을 갖고 있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단어를 통해 그 사람의 그림을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참 의외이면서도 재미있는 현상이다.

 

 

Port de Martigues, 1903.jpg

Port de Martigues, 1903

 

Le violon rouge, vers 1948.jpg

Le violon rouge, 1948

 

 

인상파로서의 라울 뒤피는 본인이 살았던 항구 도시의 풍경을 부드러운 색감을 통해 그려냈다. 변화무쌍한 날씨를 표현하고자 빛에 집중했고, 빛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빠른 붓 터치와 환한 색채를 사용했다.


하지만 몇 년 뒤 뒤피는 강렬한 색감을 사용해서 대상을 묘사하는 야수파의 일원이 되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폴 고갱이나 빈센트 반 고흐와 같이 저명한 야수파 화가들에게서 영향을 받았다는 뒤피의 작품을 보면,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알고 있는 그림에 빗대어 새로운 작품을 감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사실 인상주의의 표현법을 활용해 그린 첫 번째 섹션의 그림을 보면서 대상의 아웃라인을 그리지 않았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고 생각했던지라, 이 시기부터 검은색으로 굵게 사물의 아웃라인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점도 눈에 띄었던 기억이 난다.


마지막으로 입체파로서의 라울 뒤피는 색채를 줄이고, 주황색과 갈색, 녹색 등의 제한된 색을 사용해서 화면을 간소화시키는 데 노력했다. 이는 건축적인 간결함으로 풍경을 묘사하려 했던 조르주 부라크의 시도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라울 뒤피의 관심 대상 1 : 목판화, 패션, 장식예술 - 형식의 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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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s pour l'ete, 1920

 

 

뒤피는 회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예술 작품을 만드는 데 관심을 보였다.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 <동물우화, 오르페의 장례행렬>의 삽화를 목판화로 그려낸 것은 민중예술에 기여하고자 했던 그의 도전이었다. 또한 뒤피는 수많은 의류 크로키와 직물 시안도 만들어내며 패션계를 선도했다.

 

그의 습작은 완성된 디자인 시안과 함께 전시에서 볼 수 있었다. 라울 뒤피는 도자기, 태피스트리, 일러스트, 광고, 벽보 등 다양한 형식의 디자인에 참여하며 예술을 서열화하던 관행을 무시했다고 한다. 예술가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양한 형식으로 표출하고 표현하고 싶었던 그의 열정이 엿보인다.


 

한 시대의 취향을 만들어내는 것은 예술가들이고,

대부분의 장식가들은 예술가를 뒤쫓아 갈 뿐이다.

오늘날의 장식가들은 야수파를 따르는 경향이 있다.

강렬한 색채, 변형, 아라베스트 문양에 대한 취향이

장식화와 벽면 장식에서 두드러진다.

 

 

한편, 이 부근의 전시회장을 돌며 한 벽면에서 보았던 이 문구에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한 시대의 취향을 만드는 게 과연 누구일까? 혹은, 무엇일까? 현대는 예술가와 장식가의 경계가 존재할까? 만약 존재한다면 그 기준은 무엇일까? 그 차이는 아티스트와 디자이너 정도의 차이일까, 아니면 순수예술과 상업예술 정도의 차이일까?

 

특정 예술가들은 어떤 지점에서 자신이 대중의 취향의 선구자라고 생각하지만, 사람들의 생각을 움직이는 보다 더 큰 규모의 사회적 흐름이 있지는 않을까? 적어도 지금은 그럴 것 같은데, 그렇다면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을까? 한 개인 혹은 한 집단의 아이디어가 곧 모든 사람들을 '선도'할 수 있는 시대였던 것인가?

 

아직은 내가 명확하게 답을 찾기 어려운 질문들이 저 세 문장을 보고 쏟아졌다.

 

 

 

라울 뒤피의 관심 대상 2 : 음악, 바다와 말, 여행, 검은 태양 - 소재의 측면


 

이번 전시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점은, 앞서 나열한 라울 뒤피가 '어떻게' 그림을 그리고 예술 작품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가 '무엇을' 그리고자 하였는지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는 것이다.

 

 

La plage de Sainte-Adresse, 1904.jpg

La plage de Sainte-Adresse,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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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ue de Grasse, 1930

 

 

라울 뒤피의 작품을 보면 유난히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푸른빛의 그림이 많다. 이는 그가 살았던 해안가 도시에서 영감을 받아 그렸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는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 미국을 여행하면서 각 나라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을 그림으로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산책하고 탐구하면서 나는 내 그림의 본질을 찾았다.

그래서 내 작품에서는 배회의 느낌이 드러나기도 한다.

배회한다는 것은 비판받을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나는 형식의 정립과 적용보다는 연구와 분석을 더 선호해왔다.

이러한 탐구의 즐거움을 내 주변의 이들과 나누고 싶었다.

 

 

Cargo noir à Sainte‐Adresse, 1948‐1952.jpg

Cargo noir a Sainte-Adresse, 1948-1952

 

 

제일 고점에서의 태양은 검은색이다.

그 태양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눈이 부셔서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나에게 있어 검은색은 지배적인 색이다.

검은색으로부터 출발해서 색채들의 대비를 통해

빛을 발견하는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

 

 

전시에서 본 내용 중 가장 색다른 시각이라 인상 깊었던 부분은, 바로 태양은 검은색이라고 선언하는 라울 뒤피의 그림이다.

 

밝고 예쁜 색감을 주로 쓰는 듯하던 뒤피가 검은색에 애착을 가진 이유가 바로 목판화 작업을 하면서였다고 한다. 생의 마지막이 다가오던 시점에 죽음을 상징하는 검은색에 집중한 것은, 화가가 남기는 유언과도 같다는 해석도 있다.

 

 

 

그림을 본다는 것은



이제 아주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원화를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뒤피 : 행복의 멜로디> 展의 특징 덕분에 그림을 보는 것이 꽤나 재미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첫 번째 섹션을 둘러보면서부터 느꼈던 점인데, 가까이에서 그림을 바라볼 때 느껴지는 물감의 질감이 아주 매력적이더라. 가만히 들여다보면 붓질의 길이 보인다.


또한 정교하고 깔끔하지 않은, 오히려 거칠고 투박한 선들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모든 선이 깔끔하게 이어지고 맞아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때로는 뚝 끊겨 있기도 하고, 때로는 펜이 오래 닿아 번진 잉크가 점을 만들기도 했다. 서로 다른 필압으로 그려진 선들이 마구 섞여 있기도 했다.

 

하지만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신기했다. 어느 한 곳이라도 비어 있으면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보는 그래픽 이미지와 사진에 너무 익숙했던 탓이었을까. 이러한 경험이 아주 이질적이고도 재미있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사물의 외양이 아니라

그 실재의 힘을 그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시 중간에 벽면에서 보았던 뒤피의 문장이다. 그림을 그린다는 건 '그 실재의 힘'을 그린다는 것. 사물의 외양은 우리의 눈으로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지며 이미 뚜렷하게 존재하는 대상을 느끼는 것이지만, 실재의 힘이라는 아주 모호한 것은 누가 결정하는 것일까? 사실은 화가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려지는 것뿐이다. 따라서 그림을 본다는 것은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읽는 것을 의미한다.

 

라울 뒤피와 그의 생애에 대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대화를 나누며 산책을 한 기분이다. 그가 남긴 그림을 통해 대화를 했고, 그가 바라보는 세상을 나도 보았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9월 6일까지 진행되는 <뒤피 : 행복의 멜로디> 展에서 그가 세상을, 그리고 그 속을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그가 그려낸 '실재'를 통해 알아보는 즐거운 경험을 권하고 싶다.

 

 

[장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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