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초여름 밤의 낭만을 느끼고 싶다면? 에무시네마 별빛영화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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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역에서 도보로 약 15분 정도 거리에 복합문화공간 에무가 있다. 조금 외진 곳에 자리 잡고 있지만 다양한 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북카페, 공연장, 미술관 등이 마련되어 있어 비교적 작은 시설임에도 마니아층이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그중에서도 에무시네마를 즐겨 찾는 이들이 많다. 대형 영화에 밀려 힘쓰지 못하는 작은 영화들을 마음 편히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예술독립영화 전용 상영관이기 때문이다.
실은 이 글을 작성하기 전까지 이 공간을 방문해 본 적이 없다. 사는 곳으로부터 거리가 꽤 있어 언제나 선택지의 마지막으로 밀리곤 했던 탓이다. 언젠간 가봐야지, 하고 미뤄두던 이 도심 속 힐링 공간을 기어코 가게끔 마음먹게 만든 것은 5월 25일부터 시작된 별빛영화제였다.
별빛영화제는 에무시네마의 루프탑에서 진행되는 에무만의 아주 작은 예술영화제다. 매주 목요일부터 일요일 저녁에 열리는 이 영화제는 주최 측에서 엄선한, 그리고 많은 시네필에게 이미 증명된 호평작을 위주로 상영하고 있다.
<비긴 어게인>과 같은 아름다운 음악영화부터 올해의 화제작 중 하나인 <애프터썬>, 그리고 프랑스 대표 누벨바그 영화감독 에릭 로메르와 일본의 대표 감독 중 하나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까지.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모를 수 없는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영화제 이름이 별빛영화제이기 때문일까, 티켓팅도 하늘의 별 따기다. 올해의 경우 7월 16일까지 진행되며 예매는 2주 단위로 진행하는데, 100명도 들어가지 못할 작은 공간이어서 1분이면 오픈된 전작이 매진되어 버린다. 그래서 이 행사를 소개할까 고민을 조금 했다. 경쟁자를 늘렸다간 내 자리가 없어질 테니 말이다. 그러나 별빛 아래에서 영화를 감상한다는 낭만을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누려봤으면 하는 마음에 이렇게 소개한다. 게다가 두 정거장만 지나면 서울역에 도착할 수 있어, 잠깐 서울에 방문한 사람들도 충분히 일정에 끼워놓을 수 있는 영화제라는 장점이 있다.
별다른 광고 없이 바로 상영을 시작하기 때문에 시간에 유의해야 한다. 또한 지정석이 아니니 일찍 도착해 줄을 서 있기를 권한다. 나는 상영 10분 전에 도착했는데, 그땐 이미 많은 사람이 줄을 서 있어 원하는 자리를 확보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했듯, 루프탑에서 진행하는 작은 영화제이기 때문에, 어느 자리에서도 영화를 보기가 크게 불편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빈백에 편안히 누워서 관람하고 싶다면 꼭 서두르시길. 빈백은 첫 줄에만 몇 자리 있다.
야외 상영의 묘미는 스크린의 선명도나 스피커의 섬세함이 아닌 분위기다. 특히 별빛영화제는 캠핑 감성으로 꾸며진 공간에서 진행된다. 루프탑에 들어서면 노란 불빛을 내는 작은 전구들이 은은한 감성을 더해 더욱 가슴을 설레게 한다.
1층 카페에서 간단히 음식을 주문해 감상하며 먹을 수 있는데, (예매할 때 음식을 선택할 수도 있다) 나는 핫도그와 맥주를 선택했다. 그리고 아주 옳은 선택인 것으로 드러났다.
아직 본격적인 여름이 오지 않은 늦은 5월의 저녁은 선선한 바람이 기분 좋게 불어왔고, 밤이 내려앉은 하늘엔 달과 별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스크린 앞엔 빈백과 편한 간이 의자가 일렬로 준비되어 있었는데, 음악이 어우러져 숲속 어딘가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담요와 음식 등을 내려두기 위한 폴딩박스, 그리고 파릇파릇한 계절의 어쩔 수 없는 문제인 벌레를 위해 기피제까지 준비되어 있다. 가져갈 것이라곤 몸뚱이뿐인 셈이다. 그러나 하나 주의할 점이 있다면, 아무래도 기피제가 밝은 곳으로 몰려드는 벌레들을 모조리 해결할 순 없다는 것이다. 반바지보단 긴바지를, 그리고 서늘함을 견딜 얇은 겉옷 등을 준비하길 바란다. 나는 반바지를 입고 갔는데, 담요로 둘둘 다리를 둘렀음에도 기어코 모기에게 한 방 당하고 말았다. 독한 놈들이다.
인근 주민들을 배려한 것인지 외부 스피커가 아닌 헤드셋이 마련되어 있다. 전원을 켜기만 하면 바로 스크린과 연동되어 오히려 더 선명하게 내 귓속으로 들어오는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겠다. 또 음식 소리 등으로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나 역시도 소음에 시달리지 않고 편히 영화를 감상할 수 있었다.
내가 선택한 작품은 아담 샌들러 주연의 <펀치 드렁크 러브 (2002)>다. 제목에 이끌려 고등학생 때부터 꼭 보겠노라 다짐했으나 이상하게 지금까지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올해도 어김없이 진행되는 별빛영화제에 이 작품이 걸려있는 것을 발견한 건 행운이었다.
내용은 내가 생각한 것과는 상당히 달랐다. 얼굴을 한 대 크게 얻어맞은 것 같은 큰 충격의, 이를테면 <파이트 클럽 (1999)>과 같은 작품을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열고 보니 오직 서로에게서만 이해받을 수 있는, 남들과 한참 다른 이들의 어설프고 귀엽고 난폭한 사랑 이야기였다. 크게 공감하거나, 병원에 가기를 권고하거나 둘 중 하나로 반응이 갈릴 것 같은 작품이랄까.
음악을 쓰는 방식부터 빨강과 파랑을 대비시키는 색감 및 연출이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특히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젊은 아담 샌들러다. 내가 본 그의 작품이라곤 대단히 미국적인 코미디 영화뿐이었는데, 대개 지친 가장의 모습으로 나와 이렇게 연기를 잘하는 배우였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예술독립영화관에서 선정한 작품인 만큼 블록버스터처럼 빵빵 터진다거나,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화려한 작품은 아니다. 오히려 보다 보면 졸리기도 하고, 난해하기도 하다. 그런데 그래서 더 좋았다. 그럴 때마다 고개를 조금만 들어 올리면 캄캄한 하늘에 빛나는 달과 희미한 별빛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상에 찌들어 가는 동안 얼마나 밤하늘의 아름다움을 등한시해 왔던지. 스크린과 전구의 불빛 속에서도 달이 훤히 빛났다. 그뿐인가, 얼굴을 스치는 바람과 저 멀리서 나뭇잎이 흔들리는 모습, 그리고 내 주변에서 한참 사랑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까지. 낭만의 한복판에 내가 앉아있었다. 하다못해 중요 장면에 잠깐 화면에 붙었다 날아간 벌레마저 낭만 그 자체였다. 도심 속에서 이런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약 한 시간 반이 흐르고 영화가 끝났다. 밤하늘은 더욱 어두워졌고, 나는 천천히 자리를 정리한 후 집으로 향했다. 벌레가 물려 다리가 간지러웠지만 그뿐이 아니었다. 기분도 간지러웠다. 하늘의 별 따기 같은 티켓팅에 성공하자 정말 별빛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낭만적인 분위기 때문인가, 관객 중에는 커플도 많았다. 아쉽게도 나는 혼자 이 분위기를 즐기는 것에 그쳤지만, 누군가와 함께한다면 더욱 즐거운 경험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서울의 늦은 밤에 여는 영화제인 만큼 움직임에 제약이 있을 수 있다. 자차로 오면 좀 더 편하겠지만 주차 공간이 협소한 문제도 있다. 그러나 그 단점들을 다 제치고서라도, 다른 영화관에서 쉽게 감상하기 어려운 작품들을, 소수의 사람과, 편안하게, 달밤 아래서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 이 영화제만의 매력이다. 특히 7월까지 상영이 진행되니 한 번 정도는 도전해 보길 바란다.
[유다연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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