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추억이 사라진다는 것 [사람]

글 입력 2023.05.30 09:0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챔프 로고.jpg

 

 

며칠 전, 유튜브 알고리즘에 ‘챔프 폐국 순간’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떴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지만, 챔프가 사라질 것이라고 진지하게 생각하지는 않고, 유튜브에 떠도는 하나의 유머 영상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영상과 댓글을 모두 보고 난 후 챔프가 정말로 폐국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카트라이더 드리프트>로 다시 재출시했지만, 몇 달 전 <크레이지레이싱 카트라이더>의 서비스 종료 소식도 우연히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챔프의 폐국도 이렇게 우연히, 유튜브 알고리즘의 영상으로 접하게 되었다.


투니버스, 챔프, 카툰네트워크 채널을 돌려 보던 시절에는, 여름에는 수박을 챙겨서, 겨울에는 이불과 귤을 챙겨서 텔레비전 앞에서 깔깔 웃으며 보았고, 학원 가기 전에 숙제하면서도 보고, 너무 많이 봐서 엄마한테 한 소리 들은 적도 많은, 그러한 추억이 담긴 채널이다.

 

어렸을 때, 도라에몽,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키테레츠 대백과, 으랏차차 짠돌이네 등 다양한 만화를 이곳에서 보았는데, 이제 내 추억이 담긴 채널이 사라진다는 것에 대해 약간 허전해지기도 한다.


무엇이든지 경제적으로 바라볼 때 사람들의 수요가 없으면 그 상품은 사라지는 법이다. 나도 어렸을 때는 챔프로 만화도 자주 보고, 친구 계정으로 카트라이더를 한 적도 많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챔프 채널을 보지도 않았고, 카트라이더 게임을 한 적도 없었다. 챔프와 카트라이더가 사라졌다는 소식도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정말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러나 모순되게도, 왜 이렇게 마음 한구석이 허전한 것일까. 수요와 공급의 경제 원리를 알고 있음에도 왠지 모르게 씁쓸한 것은 경제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추억이 사라지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 오랜만에 본가에 갔을 때도 동네에 오랫동안 있었던 중국집이 없어지고 새로운 가게가 들어섰다. 학교가 끝나고 친구들과 함께 가던 떡볶이집도 없어지고, 초등학생 시절 자주 가던 방방은 이미 없어진 지 오래였다.


무한도전, 개그콘서트, 어릴 적 뛰어놀던 방방과 자주 가던 학교 앞 분식집, 문방구 등 추억이 깃든 것들이 사라지는 것은 요즘 나에게 흔한 현상이 되어버렸다.


자주 가던 저 장소가 사라지면, 즐겨 보던 저 프로그램이 사라지면, 내 추억도 함께 없어질 것만 같다. 이제 아무도 저 장소에 내가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게 될 것이고, 언젠가 내 기억 속에서도 잊힐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단지 추억이 사라졌다는 이유만으로 서글퍼지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 어른들이 모여 본인들의 추억을 이야기할 때 나는 아무런 이야기도 알아듣지 못했었는데, 이제는 내가 그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예전에 키즈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 아기들이 이야기하는 만화 캐릭터들의 이름을 하나도 몰랐을 때도 있었는데, 그것보다는 내가 나의 추억을 말하는데 상대방은 하나도 알아듣지 못할 때 더 서글퍼지는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재미를 주는 것들이 생겨났지만, 정겹고, 왠지 모르게 편하고, 푸근한 마음이 생기는 것은 역시나 오래 알고 지낸 나의 추억이 깃든 것들이다. 많은 콘텐츠가 생겨나는 이러한 시대에 앞으로 나의 추억이 사라지는 속도와 그 정도는 점차 심해질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이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제 막 20대 초반인데 앞으로 더 많이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나는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까.


나는 아직 어른이 아닌 것 같은데, 아직도 내가 간식을 먹으며 텔레비전 앞에서 깔깔대던 내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은데, 내 주변에서 생기는 현상들은 내가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어 어색하기만 하다.


 

 

아트인사이트 태그 송유빈.jpg

 

 

[송유빈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3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