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Remember Me - 정:지 연출가전 페스티벌

연극 <수취인 부재>를 음미하면서...
글 입력 2023.05.26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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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을 잃어버린 후 가출한 그 애가 5주 전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가족들은 장례를 치르며 그 애의 룸메이트인 하진을 만나게 된다. 하진은 장례가 끝난, 그 애가 죽은 지 정확히 5주가 되는 날 가족들을 초대한다. 가족들은 하진과 이야기하며 잊어버렸던 기억을 되찾기 시작한다.

 

 

 

# 기억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하고 싶지 않은


 

주말 극장에 도래했다. 주말 극장은 말 그대로 아늑했다. 작은 공간에 따뜻한 사람들이 많은 공간이었다. 나는 아늑한 공연장을 좋아한다. 대극장의 웅장함도 물론 사랑하지만 소극장에서 오는 정스러움이 있다고나 할까. 나의 첫 <수취인 부재>는 그렇게 시작했다. 따스하고 다정하게 말이다.

 

한 편 시놉시스를 읽고 많은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반려견을 찾다가 자신의 삶을 잃어버린 한 소녀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연극. 그 소녀는 지금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그녀와 연관 있는 인물 네 명이 연극을 구성한다. 죽은 소녀의 오빠였던 똘보, 엄마였던 순화, 아빠였던 비비 그리고 그녀의 친구 하진까지. 우연한 만남이 아닌 하진이 세 명의 가족을 불렀다. 아니 다시 말하면 초대했다. 가족들은 의미심장한 기분이 들면서도 그녀의 초대에 응한다.

 

연극의 첫 시작, 똘보와 순화는 관객들을 향해 대사를 내뱉는다. 마치 내가 그들은 초대한 것처럼 우리를 원망스럽고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무슨 영문일까. 한 가지 눈에 강하게 파고 들어왔던 것은 그들의 표정과 말투이다. 비록 자신의 딸 또는 여동생이 죽은 지 5주가 되었다 하더라도 그들의 말투에서는 슬픔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시 말해, 이성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딸이 아닌 것처럼, 남을 보는 듯했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비비다. 비비는 죽은 아이의 아빠다. 대사에서부터 느낄 수 있었지만 그는 강압적이다. 강압의 정의를 알고 싶다면 연극 <수취인 부재>의 ‘비비’라는 캐릭터를 만나보면 된다. 바로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가부장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가족 구성원들에게 자신의 생각과 관념을 주입시키고, 자신의 말이 모든 부분에서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비비는 이야기했다.

 

 
“그 아이가 강아지를 찾겠다고 떠난 순간, 우리는 이미 남이 된 거였다고!”
 

 

가족을 남이라고 쉽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 그게 비비의 정말로 그런 사람인 걸까. 이 말로 인해서 네 명 사이에 존재했던 분위기는 미묘한 변화를 맞는다. 그리고 내 섣부른 판단도 큰 변화를 겪었다.

 

그들은 이 말을 계기로 잃어버렸던 기억을 찾아 나선다. 딸이 집을 나가기 훨씬 전부터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맞다. 강아지를 잃어버린 이유, 그 이유부터 찾는다. 똘보가 목줄을 풀고 산책을 시키다 강아지를 잃어버린 것이다. 이 말은 즉, 똘보는 이 강아지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반증이 된다. 자신의 동생이 그 강아지를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는지를 알았다면 똘보는 목줄을 풀고 강아지와 무심한 산책을 계속할 수 있었을까. 더불어 이 행동은 이미 죽어버린 동생을 아끼지 않는 행동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똘보가 이 사건의 원인이라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비비도 순화도 똑같이 그 소녀에게 상처를 입혔다. 비비는 “그깟 강아지 하나 더 사줄 테니까, 제발 그만 좀 징징대!”라고 외치며 그의 딸을 모욕했다. 그들의 거슬러 올라간 기억 속에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빠는.. 아빠는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잖아! 아빠라면!”
 

 

그 말을 마지막으로 비비도, 순호도, 똘보도 그녀의 옷깃조차 느낄 수 없었다. 그저 그렇게 세상을 떠나버린 소녀 그 뒤로는 무관심해 보이는 가족들만이 하진의 앞에 놓여있을 뿐. 그런 모습을 보며 하진은 슬펐다. 누군가에게 버림을 받아본 사람은 안다. 상대방이 나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계산하게 되고, 버려질까 두려워 내가 너무 좋아하는 것에 대한 집착이 생기기도 한다. 이 극에서 버림을 받은 건 강아지뿐만이 아니다. 어쩌면 강아를 제외한 전부일 수도 있겠다. 누가 누군가를 버렸다는 건 다른 말로 그 사람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니까..

 

서로가 서로를 버린 것이다. 하진은 부모님에게 비비, 순화, 똘보는 죽은 자신의 딸에게 그리고 그 딸은 또다시 가족에게 포기당했다. 나의 선입견을 치우고 새로운 기준으로 연극을 바라보니 가족들이 다시 보였다. 그들은 아무렇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아무렇지 않을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 살아갔던 것이다. 직장을 다니고, 일을 하고, 걸어 다니고, 맛있는 걸 먹는 중간에도 그들은 ‘제대로’ 살아야 한다. 자신의 딸이 죽은 이후 그 현실에 머물러만 있다면, 그 인생을 끝난 것, 그 자체가 되어버리는 셈이 된다. 그렇기에 그들은 잊어버려야만, 잃어버려야만 겨우 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린 이런 상황에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한 발을 내디뎌야 할까. 죽음에 대한 슬픔을 가져가는 것이 아닌 죽은 사람에 대한 기억과 애정을 가지고 가야 한다. 물론 억지로 슬픈 것을 참으라는 뜻의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애정과 기억을 보존하는 것이야말로 그들의 존재를 끝까지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다.

 

가족에게마저 잊혀진다면 과연 우리는 누가 기억을 해주겠는가.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날 기억하고 애정해 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후회 없이 기억하자. 슬픔보다 그 사람과 함께 했던 사랑이 더 크게 작용해야 함을 잊지 말자. 

 

 

[임주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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