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부드럽게 밀려오다 아스라지는 파도 같은 앨범 '사랑으로' [음악]

밴드 혁오가 보여준 다양한 종류의 사랑
글 입력 2024.05.30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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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봄, 초여름의 날씨가 올 때마다 즐겨 듣는 앨범이 있다. 밴드 혁오의 2번째 정규 앨범인 ‘사랑으로’이다. 단순 명료한 앨범 제목과 기교 없이 정직하게 자연을 담고 있는 앨범 커버, 그리고 독보적인 사운드로 무장한 앨범 '사랑으로'는 늦봄과 초여름의 경계에서 풍겨오는 적당한 온도와 화창한 구름의 조화를 담은 앨범이다.

 

밴드 혁오가 공식적인 활동을 안 한 지 벌써 몇 년째인지 모를 정도이기에 과거 밴드 혁오의 앨범들은 참으로 귀하다. 밴드 혁오의 앨범 중 가장 좋아하는 앨범은 ‘Tomboy’가 수록된 ‘23’이지만 밴드 혁오의 음악성의 극치를 보여준 건 ‘사랑으로’라 굳게 믿고 있다.

 

전작인 <24 : How to find true love and happiness>에서부터 숱하게 사랑을 강조했던 밴드 혁오는 그다음 작품의 제목으로 '사랑으로'라는 낭만적인 이름을 붙였다. 눈에 띄는 점은 이전 앨범들과 다르게 숫자를 통해 앨범명을 표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밴드 혁오가 숫자를 앨범명으로 정한 이유에는 자신들의 청춘을 기록한 앨범이자 20대 청춘이 겪는 여러 감정을 담은 앨범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앨범 ‘사랑으로’는 청춘, 숫자에 얽매이지 않았다. 청춘이라는 주제에서 넓혀 사회와 인류를 향한 메시지를 담았다. 계층 간의 갈등, 혐오를 위한 혐오로 점철된 대한민국 사회에 화합과 사랑의 메시지를 절제되고 엄숙한 감정으로 읊조렸다.

 

앨범 제목과 함께 기존과는 다른 앨범커버도 눈여겨볼 요소이다. 기존의 앨범커버들은 노상호 작가가 맡아서 작업했다. 하지만 앨범 ‘사랑으로’는 세계적인 포토그래퍼 볼프강 틸만스(Wolfgang Tillmans)와 작업했다. 여러 종류의 식물을 찍은 앨범커버로 의미를 모르고 본다면 단순한 식물 사진이지만 다양한 식물들이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을 안다면 자연스럽게 앨범을 관통하는 주제를 알아차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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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사랑으로’는 밴드 혁오가 선보인 앨범 중 대중들에게 가장 호불호가 갈리는 앨범이다. 가장 어려우면서도 역설적으로 사운드에 익숙해지면 가장 편안한 앨범이다. 악기 구성도 복잡하고 가사를 이해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더욱 끌리고 이내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참으로 모순적인 앨범으로 혁오가 추구하는 행보와 유사하다. 메이저와 마이너 사이를 수려하게 외줄을 타는 밴드 혁오가 가지고 있는 아이덴티티와 음악성을 과감히 녹여낸 앨범이다. 실제로 모든 트랙이 타이틀곡인 앨범으로 6곡의 트랙이 이어져 앨범 전체가 하나의 완성된 트랙으로 느껴진다. 각각의 트랙이 한 가지 서사로 연결되기 때문에 수록곡을 모두 들어야 비로소 앨범을 '제대로' 감상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앨범은 이전 앨범들과 분리하고 싶었어요. '사랑으로'는 그전 앨범과 비교했을 때 저희의 태도나 대하는 방식이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사랑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고 이를 정의하기 위한 무수한 시도가 있었다. 밴드 혁오는 각각의 트랙으로 다양한 사랑의 형태를 묘사했고 트랙들을 하나의 앨범으로 묶어 사랑의 본질을 청각화 했다.

 

정의할 수 없는 것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추상적인 도구들이 필요하고 수식에 의한 과학적인 정의보다는 형태가 존재하지 않은 음악이라는 도구를 통해 밴드 혁오는 사랑을 정의를 했다.

 

01. Help - 앨범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기존 밴드 혁오의 음악에서는 볼 수 없었던 보사노바 장르를 차용한 트랙이다. 보사노바 리듬과 함께 플루트 사운드, 그리고 다양한 사운드 이펙트가 어우러지면서 음악적인 실험이 담긴 앨범이라는 메시지를 충분히 던졌다. 여유와 부드러움이 묻어나는 트랙이다.

 

02 Hey Sun - 돋보이는 비트에 공간감이 충만한 사운드가 인상적이다. 특히 2분부터 강렬한 기타 리프가 나오면서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이내 잔잔해지면서 기존의 무드를 이어간다.

 

03. Silverhair Express - 오혁의 스캣 아래 리드미컬한 베이스라인과 이번에도 플루트 사운드 등 다양한 효과음으로 채워졌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느낌을 담은 트랙으로 따뜻함과 여유로움을 품었다.

 

04. Flat Dog - Flat Dog를 검색해 보니 악어의 다른 말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도입부를 들으면 동요 '악어떼가 나왔다'가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만든다. 음절을 끊어서 읊조리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오혁의 보컬과 뒤이어 나오는 실험적인 사운드가 곡의 색깔을 분명히 해준다.

 

05. World of the forgotten - 짧아서 더욱 아쉽고 여운이 길게 가는 트랙이다. 보컬이 신이 내린 최고의 악기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면서 밴드 혁오의 아방가르드한 면모가 담겨있다.

 

06. New Born - 앨범의 정점을 찍은 트랙으로 앨범 ‘사랑으로’에서 가장 좋아하는 트랙이다. 9분이라는 압도적인 길이를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슈게이징 스타일을 차용한 사운드 디자인이 묘미다.

 

호수 한가운데에서 시작된 물결이 점점 거세져 파도처럼 일렁이는 곡으로 실험적인 도전도 엿보이는 트랙이다. 아스라 지면서 다시 뭉쳐 차오르는 듯한 사운드 배치가 지루할 수 있는 9분이라는 길이를 밀도 있게 채워준다.

 

폐허가 된 공간에 박혀있는 찬란한 희망을 노래한 듯한 곡으로 닳고 달아 버려서 다시 꾸역꾸역 태어나는, 그리고 다시 닳고 또 태어나는, 우리의 삶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New Born은 라이브 영상으로도 화제였다. 언젠가 꼭 라이브로 듣고 싶은 노래 중 하나이다.


가장 성숙한 형태의 밴드 혁오의 앨범이다. 오크통에서 숙성되며 짙은 갈색으로 변해가는 위스키처럼 밴드 혁오는 농익은 자신들의 음악성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어찌 보면 삶에 대한 설렘이 없는 듯이 초연해 보이는 사운드로 무장한 앨범 ‘사랑으로’, 대중성보다는 밴드 혁오의 독보적인 음악성만을 동력으로 삼아 산뜻하지만 끈질기고 집요하게 이끌어가는 앨범이다.

 

 
"일상과 고립된 장소에서 앨범만 만들었어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었고, 순간의 사운드에 집중했던 거 같습니다. 작업하는 방식에서 달라진 건 완결된 데모가 없었다는 건데, 데모를 만들고 작업을 하면 데모에 항상 갇히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이 앨범은 많은 이들에게 위안을 주었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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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세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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