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의 사랑스러운 이름들

글 입력 2023.05.25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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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규리님”


얼마 전, 오랜만에 나의 옛날 이름에 누군가가 대답하는 모습을 봤다. 아직 나를 규리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는데도 옛 이름을 들으니 매우 반가웠다. 이렇게 나의 옛 이름에 내가 아닌 타인이 응하는 모습을 볼 때가 종종 있었다. 그때마다 다양한 감정이 들었다. 개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어색함, 신기함, 아쉬움이 느껴졌고, 세월이 좀 흐른 뒤에는 아련함과 애틋함이 들었다. 이제는 그런 감정들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반갑다.


옛 이름을 가졌을 때, 난 좋았다. 개명하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사실 현재 이름보다 옛 이름이 더 예쁘고 부르기 쉽다. ‘규리’라는 이름의 주인이었을 때, 이름이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이제 흔해졌지만, 당시에는 흔하지 않은 이름이었다. 마지막 글자에 받침이 없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도 개명을 한 이유는 이름 세 글자 뒤에 드리워진 검은 그늘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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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을 지어줄 당시, 부모님은 자식의 이름을 지어본 적도 없었다. 본인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떼서 조합도 해보며 어떤 이름이 좋을지 고민했다. 그때 옆에 있었던 큰이모가 ‘규리’ 어떠냐고 물었다. 누가 들어도 예쁜 이름이라 부모님도 마음에 들었고, 아빠는 사전에서 가장 좋아 보이는 뜻의 한자를 골랐다. 그렇게 내 이름은 ‘진주강에 법규, 이로울리’가 되었다.  


자라면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작명소에서 이름을 짓거나 부모가 직접 지은 이름을 감정을 받은 후 결정을 한 경우가 많았다. 시간을 두고 이름을 지은 친구들과 달리 나만 그 자리에서 후다닥 지은 것 같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사람마다 다른 만큼 부모마다 이름을 짓는 방식도 다르니까. 하지만 이름 뒤에 진 차별이라는 그림자를 볼 때마다 아쉬움과 쓸쓸함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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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동생이 하나 있다. 나도 애였으면서 동생이 매우 어린 애로만 보였다. 그만큼 귀여워 보였다. 친구와 노는 게 더 좋은 나이가 된 후에는 귀여운 동생이 귀찮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동생을 사랑스럽고 귀여운 존재로 여기는 마음이 늘 바탕으로 깔려 있었다. 


그런 동생을 미워한 시기가 있었다. 차별을 받을 때였다. 가장 차별이 심했던 어른은 아빠 쪽의 친척들이었다. 특히 어르신들이 심했는데, 늘 동생을 종손이라고 부르면서 예뻐했다. 내가 아무리 재롱을 부리고, 노력해도 사랑과 관심이 동생만을 향해 있었다. 노래 선물을 드리고 싶은 마음에 생일 축하 동요 대신 가요를 배우고 연습해서 노래를 불러도 잘한다, 고맙다는 말조차 없었다. 

 

어쩌다 아빠가 내 칭찬을 하면 침묵하거나 그 정돈 다 하지, 원래 그 나이 때는 다 공부 잘한다는 등의 말만 했다. 그때의 냉랭한 공기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내가 잘하면 잘할수록 그 냉랭한 공기가 짙게 찾아왔다. 동생보다 내가 무엇이든 잘할까봐 노심초사하는 것처럼 보였다. 동생이 조금만 잘해도 칭찬을 많이 해주고, 잘못이나 단점은 모른 체 했다. 동생과 내가 유아기, 어린이, 청소년,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했다. 


그래서 동생이 괜스레 미워졌다. 문득, 잘못은 동생이 아니라 차별하는 어른들에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 동생을 미워하는 대신 차별하는 어른들의 모습에 불만을 품었다. 


차별은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시선 하나 등 곳곳에 있었다. 심지어 이름에도 차별이 존재했다. 내 이름은 친척 어른들의 관심조차 없었지만, 동생의 이름은 친척 어른 중 한 분이 이름 잘 짓는 유명한 곳에 가서 지어왔다. ‘비싼 돈 주고 지었다, 크게 될 아이니 잘 키워야 한다고 하더라, 역시 우리 종손이야.’라는 친척 어른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서러웠다. 그래도 부모님이 직접 지어준 이름이 더 소중하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차별받는 상황을 겪은 사람에게는 그 위로가 통하지 않았다. ‘이름까지 차별하네. 첫 아이였고, 나도 강씨 집안의 손녀인데.’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래서 내 이름을 쓰고, 듣고, 볼 때마다 좋으면서도 외로웠다. 가슴 깊은 곳에서 서러움, 사랑받고 싶은 욕구, 결핍이 툭툭 건드려졌다. 동생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그리고 내가 부를 때에도 그 이름이 부러웠다. 흔하지 않고 예뻐서 내 이름을 좋아했는데도 동생처럼 그런 이름을 갖고 싶었다. 


동생에 비해 이름을 대충 지어서 계속 마음에 걸렸었다는 아빠의 말은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름을 바꿔준다는 아빠의 말을 덥석 물었다.  


막상 개명하니 옛 이름이 그리웠다. 차별의 그림자가 드리운 이름이었는데도 이별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 이름을 좋아했던 내 마음이 생각보다 컸다. 그리고 ‘규리’라는 이름에는 처음으로 자식 이름을 지어본 부모님의 경험이 있고, 추억과 살아온 나날들이 있었다. 그 이름에는 꽤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희극이든 비극이든 나만의 이야기를 오롯이 담은 이름인데, 이제 내 것이 아닌 게 슬펐다.


어느 날, ‘왜 내 것이 아니지?’ 라는 의문이 생겼다. 새 이름으로 불리며 살아간다고 해서 옛 이름을 꼭, 완전히 나에게서 떼어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규리라는 이름도, 득라라는 이름도 모두 ‘나’가 있고, 나의 이야기가 담긴 내 것이니까. 


*

 

사실 새로 얻은 이름은 예전의 이름처럼 예쁘진 않다. 듣기에도 어색하고, 부르기에도 어려운 이름이다. 특별한 뜻도 없다. 그저 좋은 뜻을 다 넣은 듯하다. 너무 촌스러운 이름이 나올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렇지 않았다. 흔한 이름도 아니라서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좋은 건, 내 이름에도 고민하고, 직접 찾아가서 의뢰하고, 기다리는 시간을 들이는 정성이 있다는 거다. 이름에 좋은 뜻이라면 다 부여한 것도 아빠의 무한한 사랑을 나타냈다. 친척들의 사랑은 여전히 없지만, 아빠의 사랑과 정성, 미안함의 진심이 담겨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래서인지 가족이나 연인에게 내 이름이 불릴 때마다 사랑받는 기분이 든다. 


신기한 점은 몇몇 사람들에게 아직 옛 이름으로 불려도 쓸쓸하지 않다. 그 이름 뒤에 진 ‘차별’이라는 그림자가 사라진 건 아니지만, 괜찮아졌다.


현재의 이름은 물론, 그림자가 진 옛 이름도 모두 소중하고, 사랑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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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득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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