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서툰 나도 괜찮다고 말해준다면 - 나의 뉴욕 수업

곽아람의 <나의 뉴욕 수업>을 읽고
글 입력 2023.05.17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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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나는 내게 가장 서툰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책 표지 뒷면에 적혀 있던 이 구절이 머릿속에 콕 박혀 떠나지 않는다. 나는 과연 스스로에게 얼마나 능숙한가.

 

 

나의뉴욕수업_표1_띠지.jpg


 

나를 제법 잘 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학교에도 직장에도 속하지 못한 채, 그 어떤 수식어가 붙지 않은 ‘나’로 살았던 지난 1년 동안 나 자신과 꽤나 가까워진 것만 같았다. 단순히 좋고 싫은 것들을 명사형으로 죽 나열하는 시기를 지나, 내 취향은 이러이러하다고 서술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다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그것만으로 충분한가. 

 

 

이 책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괴테처럼 살겠다 결심하고 뉴욕으로 떠나 호퍼처럼 산 이야기’다.

 

-8p. 시작하며. 내가 되기를 공부한 시간 中

 

 

14년 동안 쉬지 않고 직장 생활에 매진해 온 저자는 1년간 주어진 해외연수 기회 동안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뉴욕살이를 떠난다. 그 언젠가 본연의 자신을 찾기 위해 이탈리아로 떠났던 괴테처럼. 하지만 낯선 환경에서 예전과는 다르게 살아보며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자 결심했던 저자는 괴테 대신 호퍼를 만난다.

 

 

나는 1년간 죽 나와 함께 있었다. 내가 짊어지고 있는 내가 너무 크고 무거워서 종종 버겁기도 했지만, 그 덕에 나는 나를 좀 더 잘 알게 되었다. 내가 나를 데리고 다닌 1년이었다. 

 

-9p. 시작하며. 내가 되기를 공부한 시간 中

 

 

성인이 된 이후 가장 서툴렀던 뉴욕에서의 1년 동안 저자는 오로지 스스로에게 의지하며 내면의 세계를 확장했다 말한다. 어디에 있든 중요한 건 결국 ‘나는 나일 뿐’이라는 교훈을 깨달으며. ‘본연의 나’를 발견하겠다는 괴테를 좇아, 호퍼를 통해 비로소 ‘나다운 나’에 닿게 된 것이다.

 

번듯한 어른으로서 나보다 훨씬 성숙하고, 기자라는 직업을 통해 넓은 세계를 경험한 저자 역시 스스로에게 서툴렀다 고백하는데, 내가 나를 잘 안다고 말하는 건 지나친 자만이 아닐까. 

 

많이 자랐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나는 여전히 서툰 것투성이인 것만 같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알 것도 같지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참 대답하기 어렵다. 나에 대해서만큼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것 역시 지독한 착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낯선 곳에 오니 오히려 내가 누구인지가 한국에서보다 훨씬 더 잘 보이는 것만 같았다. 

 

-28p 中

 

 

낯선 환경으로 뛰어들며 자신을 발견하고자 했던 저자에게 깊은 공감을 느꼈다. 외국에서 정주해 본 경험은 없지만, 소소한 여행 경험에도 몰랐던 나를 발견하는 순간이 있었다. 너무 당연했던 조건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은 환경에서 그동안 자각하지 못한 민낯이 드러나는 것이다.

 

가령 시차 적응에 더디다거나, 낯선 음식에 거부감이 심하다거나, 잠자리에 예민하다는 등등. 내가 누리던 일상이 얼마나 안락했는지, 스스로가 얼마나 무르고 쉽게 깨질 수 있는 존재인지 비일상을 접하고야 절실히 체감되었다. 그 무엇보다 몸도 마음도 변화와 적응에 더딘 편이라는 것을 재확인한 것이다.

 

세계의 서울까지는 미처 도달하지 못했지만, 서울에서의 자취생활이 때론 저자의 뉴욕 생활과 겹쳐 보였다. 특히 휴학한 동생이 본가에 내려간 지금이 그 무엇보다 서툰 나를 직면하는 나날이다. 혼자서도 잘 해내리라 믿었건만, 고작 벌레 한 마리 앞에서도 금세 나약해지는 사람이었다. 사실 혼자서는 그 무엇 하나 능숙히 헤쳐 나가기 쉽지 않은 것이다.

 

에드워드 호퍼와 같이 삶의 곳곳에 고독을 투영하는 예술적 감각은 미처 타고나지 못했지만, 스스로 외로움에 무딘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도 즐겁지만,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한 사람이라 느꼈기 때문이다. 이런 성향 때문에 더욱 스스로를 잘 알고 있다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홀로 자취 생활을 하게 된 지난 몇 달 동안 실은 내가 혼자에 별로 익숙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새삼 돌아보니 삶에서 진정으로 혼자가 됐던 순간은 이번이 처음이다. 

 

형제가 많은 집에서 태어난 데다, 우리 집은 유달리 가족끼리 대화가 많은 가정 환경이다. 이전의 서울 생활은 기숙사에서 룸메이트와 방을 공유했기에 좋든 싫든 혼자는 아니었고, 첫 자취를 시작한 지난 한 해 역시 대부분의 일상을 동생과 함께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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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메이트들과 집을 공유하면서도 낯선 타향살이에 서러움을 느낄 때면 저자는 고독을 형상화한 호퍼의 그림을 떠올리곤 했다. 어쩌면 앞으로의 홀로서기 동안 나 역시 「아침해」를 종종 떠올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친 하루 끝 불 꺼진 집 안을 마주하며 영문 모를 공허함을 느낄 때. 다정한 아침 햇살과는 달리 적막만이 가득한 공기가 시려 깨어나자마자 괜한 외로움을 느낄 때. 

 

미처 그럴 일이 없어 몰랐을 뿐 나는 참 외로움에 약한 사람이었나 보다.

 

 

차라리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리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괴로운 일을 겪었을 때나 대체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을 때도, 내가 찾은 답은 한 가지였다. 세계를 확장 시키기 위해서. …(중략)… 나처럼 살지 않기 위해 분투했던 뉴욕 생활에서 결국 얻은 깨달음은 어디에 있든 나는 나이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나답게 살 때 가장 행복하다는 것인데, 그 역시 내면의 확장에 포함되는 것일까.

 

-308p 中

 

 

왜 괴테가 아니라 호퍼였을까. ‘현대인의 만성적 고독’을 표현할 때 흔히 연상되는 호퍼의 그림들. 오직 스스로에게 의지하며 세상의 고독을 화폭에 담아냈던 호퍼처럼, 때로는 외롭고 한편으로는 자유를 곱씹었을 뉴욕에서의 홀로서기는 저자에게 진정한 자아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호퍼가 여덟 살에 그린 「바다를 바라보는 소년」이 잔상으로 머문다. 고독이란 수식과는 도통 어울리지 않는 그 어린 나이에 소년은 바다를 바라보며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외롭고 쓸쓸해 보이는 뒷모습은 고독이란 무엇인지를 말하는 듯하지만, 왠지 보이지 않는 그의 표정이 단단하고 확신에 차 있을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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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닌 이 시기가 영영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불안이 피어오르기도 한다. 그저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자책이 몰려오기도 한다. 분명 어딘가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축적되고 있을 거라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성장 중일 거라는 위로가 허공으로 흩어지곤 한다. 

 

고독 속에서 실은 그 누구보다 자신과 친해질 수 있었던 호퍼처럼, 낯선 이국 땅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은 책의 저자처럼, 지금의 나는 오직 나를 믿어야만 한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부유 중인 신세가 때로는 버겁고 처량하지만, 이 길의 끝에 나 역시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리라.

 

망망대해 한가운데 조각배로 표류 중인 것 같은 막막함, 끝없는 어둠만이 가득한 우주를 홀로 떠다니는 것 같은 외로움 너머에. 

 

결국에는 나다운 나를 알게 되겠지. 마침내 고독 속에 피어나는 내면의 소리를 듣게 될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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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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