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미술관에서 [문화 전반]

글 입력 2023.05.16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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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 널 처음 봤을 때 네가 나의 곁에 있었던 그 아름다운 모습 / 거리를 둔 채 멍하니 쳐다봐 두 발은 땅에 묶인 듯 너와 나만 빼고 / 다 멈춰버렸네 서로의 감정은 숨길 수가 없고 너는 나의 앞에 / 우린 마주한 채 마음을 전시해 한참을 그렇게 바라만 봤지 / 미술관에서 나눈 얘기 맞닿았던 느낌 처음 마주친 순간에 우린 같은 곳을 보고 있었지 / 늘 찾아 헤맸던 그림 앞에 서서”

 

콜드의 <미술관에서>라는 노래의 한 부분이다. 미술관이라는 공간 안에서 두 남녀가 만나 마음을 주고받는 과정을 작품을 감상하는 것으로 비유한 사랑 노래 같지만, 실제로 이 곡은 미술관에서 상상만 하던 작품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을 표현한 곡이라고 한다. 이렇듯 우리가 둘 사이에서 유사성을 느끼는 이유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과 마음에 드는 작품을 바라보는 과정이 비슷해서이지 않을까.

 

우리는 미술관에서 이 두 가지의 사랑을 모두 볼 수 있다. 작품에 대한 관람객들의 사랑과 미술관이라는 공간 안에서 관람객들이 보여주는 사랑.

 

 

 

미술관에서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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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자원봉사를 한 경험이 있다. 자원봉사 업무는 전시실 내부에서 하는 자원봉사와 전시실 외부에서 하는 자원봉사로 크게 나누어져 있었다. 난 한 달 가량 전시의 한 섹션에 배치받았는데, 전시와 관련된 관람객들의 문의사항에 답해드리고 전시 관람을 방해하는 요소에 대해서는 양해를 구하는 일이 자원봉사의 주된 업무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관람 규칙과 질서를 준수했고 자원봉사자인 내가 할 일은 많지 않았다. 심지어 난 아침시간부터 점심시간을 담당해서 다른 시간대보다는 상대적으로 관람객들이 적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나도 관람객이 된 것처럼 작품을 감상했다. 작품에서 놓친 부분은 없는지 뚫어지게 쳐다보기도 하고 매일 작품을 보면서 달라지는 감정을 마주하기도 했다. 내가 담당한 섹션에 있던 작품은 약 15점 정도였는데 한 달 가량 15개의 작품만 바라보다 보니 점점 다른 곳으로 시선이 향했다.

 

내 시선이 향한 곳은 바로 관람객들이었다.

 

매일매일 다른 관람객들을 바라보는 것만큼 흥미로운 일은 없었다. 어떻게 작품을 바라보는지, 누구와 함께 왔는지, 어떤 옷을 입는지 관찰하며 자칫하면 지루할 수 있었던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미술관에서. 작품과 관람객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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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하나하나를 뜯어보는 것처럼 오랜 시간 바라보는 관람객도 있었고 슬쩍 지나치듯 감상하는 관람객도 있었다. 마음에 드는 작품을 발견하면 사진을 찍는 이들도 있고 오랜 시간 그 자리에 머물러서 작품이 주는 여운을 느끼는 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마음을 빼앗긴 작품을 만나게 된 관람객들은 아쉬운 듯 전시실을 나가면서 한 번 더 작품을 쳐다보기도 하고 작품과 관련된 이야기를 더 찾아보기도 할 것이다. 기프트숍에 가서 작품에 관련된 굿즈를 사서 매일 들여다보고 작품을 봤을 때 느꼈던 감정을 다시 되새길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가까이에서 작품과 사랑에 빠지는 관람객들의 모습을 보게 되니 콜드의 <미술관에서>가 새롭게 해석되었다. 작품과 거리를 둔 채 멍하니 작품에 빠져있는 관람객들의 모습, 정확한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다른 작품으로 쉬이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는 모습, 잠시 동안이나마 작품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작품과 동화되는 그 순간. 한참을 찾아 헤매던 사랑을 만난 것과 같은 기분이지 않을까 한다.


그렇게 전시실을 둘러보다 관람객들이 각자 다른 작품 앞에서 멈춰있는 모습을 보며 과연 작품이 가지는 보편적인 가치라는 것이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각 개인에게 주는 울림은 이렇게나 다르다는 걸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기에 말이다.

 

 

 

미술관에서. 관람객들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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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손을 잡고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들도 많았다. 나는 다른 사람과 함께 전시를 봐도 대부분 혼자 감상하다가 다른 섹션으로 이동할 때만 함께 이동하곤 했었다. 어떤 방식으로 작품을 감상하는지도 다르고 각자 마음에 드는 작품도 다르기 때문에 각자 편하게 전시를 보는 것이 개인의 템포를 이해해 주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누군가의 손을 잡고 함께 전시를 관람하는 이들의 모습은 정말 예뻤던 것 같다. 서로가 멈춰 선 작품 앞에서 좀 더 함께 있어주고 서로의 템포를 맞춰가는 작은 시간들이 따뜻해 보였다. 상대의 손에 이끌려 내 발걸음이 멈춰졌을 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냥 지나쳤을 수 있는 작품을 조금 더 들여다보며 상대방이 이 작품 앞에 멈춰 선 이유를 헤아리고 전시실을 나서며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에 맞장구칠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나도 그 모습을 보면서 함께 작품을 감상하다 애정 어린 시선, “다 봤어?”라는 다정한 물음과 함께 다음 작품으로 나란히 발걸음을 옮기던 기억을 떠올렸다.

 

특히, 기억에 남는 관람객이 있다.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어린 딸과 엄마가 이른 개장 시간에 맞춰 미술관을 찾았다. 아이의 눈에 작품은 어떻게 보였을까. 어떤 작가의 작품인지도 모른 채 엄마의 손에 이끌려 전시장에 들어온 것 같았다. 심지어 아이의 눈높이에 작품들이 배치되어 있지도 않아 아이가 볼 수 있는 거라곤 흰 벽이 전부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단 한 번도 엄마를 재촉하거나 엄마를 부르지 않았다. 가만히 작품을 들여다보는 엄마의 모습을 구경하기도 하고 나와 눈을 맞추며 놀기도 했다. 어린 아이에게는 지루한 시간이었을 수 있을 텐데, 이 시간이 엄마에게 허락되는 유일한 시간임을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아이의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아이가 엄마에게 보여준 배려이자, 사랑의 표현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방해받지 않고 온전하게 전시를 관람한 이후, 전시장을 나서며 아이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를 건넸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작품을 감상하다가 잠시 작품이라는 세계 속에서 나와 주변을 둘러보면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여러분의 곁에서 펼쳐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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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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