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안녕, 안녕!" 읽어나갈 미발표 인생 - 뮤지컬 '호프(HOPE)' [공연]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
글 입력 2023.05.15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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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_IMG_1682.jpg

 

 

30년간 지속된 '요제프 미발표 원고' 재판이 드디어 막을 내린다. 판결 내용은, “이것으로 에바 호프의 인생은 에바 호프에게 되돌려 주기로 판결한다.”


뮤지컬 <호프>는 카프카의 유작 반환 소송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프란츠 카프카는 친구 막스 브로트에게 자신의 유작을 읽지 말고 불태워 달라는 유언을 남겼지만, 브로트는 그의 유작을 정리해 출간했다. 생전에 빛을 보지 못했던 카프카의 작품들은 사후 재평가를 받았다.

 

극에서 카프카는 ‘요제프 클라인’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베르트’가 그의 유언에 따라 원고를 맡는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독일이 체코를 점령하자, 베르트는 연인 ‘마리’에게 원고를 넘겨주면서 귀중한 것이니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며 당부하고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한다. 물론 이 기약은 후에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마리는 딸 ‘호프’와 피난을 떠나면서도 베르트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원고에 집착한다. 호프는 엄마 곁을 원고에게 빼앗긴다. 주변의 유대인들이 죽어 나가고 강제 노동에 시달리며 살지만 마리는 원고에만 정신이 팔렸다. "엄마는 호프의 우산, 호프는 엄마의 보물"은 옛말이다. 호프는 그런 엄마와 총성이 난무하는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한다. 방황하던 중 호프는 자신을 사랑한다는 ‘카델’을 만나고, 원고를 팔면 돈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그녀는 엄마로부터 원고를 일부 빼앗아 독일인들의 경매에 내놓고, 원고는 어마어마한 금액에 낙찰이 되지만 그 돈은 모두 카델이 가로챈다.

 

호프는 엄마에게도 카델에게도, 자신보다 원고가 우선이라는 걸 알게 된다. 원고는 호프에게서 소중한 것을 모두 빼앗아 갔지만 그럼에도 유일하게 호프에게 남아있다. 호프는 원고가 곧 자신의 가치라고 여기고 그에 집착한다. 마치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원고는 ‘K’로 의인화되어 등장한다. 그는 호프가 ‘호프’로서의 삶을 살아가도록 응원한다. 그만 자신에게 집착하는 삶을 내려놓고 ‘에바 호프’의 삶을 써 내려가도록, 원고를 읽지도 않은 채 그에 호프의 가치를 투영하는 삶이 아니라 호프의 인생을 읽어가도록 말이다. 호프는 원고를 불태우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몇 차례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그때 태웠더라면 그녀의 삶이 달라졌을까? 지금은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원고는 “반전은 마지막에 있다”고 말한다. 앞서 호프는 스스로를 ‘원고를 지키는 한 여자’라 칭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에바 호프는 자신의 인생을 그 누구에게도 팔아넘길 수 없고, 자신이 돌아갈 곳은 반드시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판결을 받으며 ‘나 하날 지키는 여자’로 스스로를 칭한다. 

 

“난 에바 호프!”라는 당찬 외침을 마지막으로,

 

저 혼자 추운 겨울을 살던 길 위의 나그네는 오늘

드디어 집으로 돌아간다. 마침표. 끝.

 

 

호프_IMG_1692.JPG

 

 

 

‘원고’는 글에 불과할까


 

‘원고’는 정말 요제프의 미발표 글이라는 의미밖에 없을까?

 

법정에는 검사만 등장하고 소송을 제기한 원고는 눈에 띄지 않는다. 재판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K를 ‘원고’라고 지칭하는 말은 어쩐지 소송을 제기한 ‘원고’로도 들린다. 혹시 재판의 원고는 원고 K였던 건 아닐까? 호프가 집착의 굴레에서 벗어나 삶을 되찾기 위해 이제는 자신을 놓아 달라는 의도가 담겼을지도 모른다.

 

원고를 지켰던 에바 호프는 이제 자신에게로 돌아간다. 그동안 제대로 쓰이지 못했던 서사에 반전을 주고 남은 페이지를 읽어나갈 것이다. 호프는 마지막 판결을 받고 그동안 주춤거렸던 삶을 펼치고자 돌아갔다. “우리가 가진 유일한 인생은 일상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삶을 어떤 일상으로 읽어내고 싶은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혹은 무엇을 위해 살지 않을 것인가?

 

반전을 꾀하고 싶은 일상에게 ‘안녕’, 돌봐나갈 새로운 일상에게도 ‘안녕’ 인사해 보는 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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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시작될 날들아

안녕, 살아갈 내일아

안녕, 내가 써나갈 날들아

안녕, 안녕.

 

 

[정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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