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완벽한 앙상블 위에 로랑 방이 정점을 찍다 - 뮤지컬 '나폴레옹'

글 입력 2023.05.1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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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어”라고 말한 프랑스 제1제국의 황제 나폴레옹은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이다. 뮤지컬 <나폴레옹>은 전쟁으로 혼란스럽던 18세기 유럽, 이집트 원정과 마렝고 전투 승리를 거치며 쿠데타를 통해 황제 자리에 오른 나폴레옹의 파란만장한 삶을 담았다.

 

본 작품은 1994년 캐나다 토론토(티모시 윌리엄스 작곡 / 앤드류 새비스톤 극작)에서 영어로 초연 후, 2017년 한국에서 라이선스로 공연됐다. 2023년 한국에서 판권을 사들여 프랑스어 오리지널 버전으로 론칭하게 됐다. 한국인 프로듀서 박영석이 본 작품을 구매한 후, 프랑스 현지 캐스팅을 하는 등 한국이 주도적으로 라이센싱을 보유하게 된 만큼 K-뮤지컬의 새로운 방향으로 제시된다. 뮤지컬 <레미제라블>, <노트르담 드 파리> 등 프랑스의 대형 뮤지컬에서 주역으로 활약한 로랑 방(Laurent Ban), 존 아이젠(John Eyzen), 제롬 콜렛(Jérôme Collet), 크리스토프 쎄리노(Christophe Cerino), 키아라 디 바리(Chiara Di Bari) 등 20인의 프랑스 대표 뮤지컬 배우들과 16명의 한국 앙상블이 함께 했다. 로랑 방은 배우 외에도 프랑스어 번역과 연출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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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대관식 장면

 

 

온 세상이 내 발아래 있고, 난 높은 공중 위에 서 있네

실패가 손을 뻗어도 결코 닿을 수 없는 곳

나를 지켜주는 여신이 있는 여기

너무도 달콤한 승리의 여신, 언제나 나의 편이 되어 주소서

 

- 달콤한 승리의 여신 중 -

 

 

극은 워털루 전투로 시작하여,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프랑스 왕국의 변두리 코르시카 섬 출신으로 다른 군인들에게 차별당했던 젊은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그린다. 나폴레옹의 솔로 첫 넘버(‘상처를 안고’)의 멜로디는 1막 마지막의 하이라이트 넘버인 ‘달콤한 승리의 여신(Sweet Victory Divine)’과 2막에서 나폴레옹의 정복 전쟁을 드러내는 넘버 ‘최후의 성전(The Last Crusade)’의 일부로 구성된다. 이를 통해 현재에는 차별받고 보잘것없는 존재이지만 훗날 황제의 자리에 오를 인물이라는 것을 음악적으로 암시한다. 이후에도 나폴레옹이 어려움을 겪거나, 조세핀과 사랑에 빠지는 등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사건이 나올 때 본 넘버들의 교차되며 멜로디가 계속해서 반복된다. ‘달콤한 승리의 여신’ 멜로디는 1막 마지막 대관식 장면에서 비로소 완성되며 ‘나폴레옹’이라는 캐릭터의 서사성과 음악성을 견고하게 형성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가 추락의 길을 걸을 때도 변주된 멜로디가 계속되며, 그의 삶이 도전의 연속이었음을 드러낸다. 전반적으로 극은 이러한 나폴레옹의 라이트모티프(Leitmotiv)가 지배적으로 나타나며, 그의 노래에는 타악기의 음색이 강하게 삽입됨으로써 전쟁과 승전을 나타낸다. 하지만, 조세핀의 외도를 알고 나서 부르는 ‘외로운 황제(Lonely Emperor)’에서는 ‘승리의 여신’과 ‘처음 만난 그날 밤(On That First Night)’ 등 조세핀과 관련된 멜로디가 우울하게 리프라이즈된다. 더불어 조세핀이 폐위된 후 나폴레옹의 삶이 추락하는 것으로 배치하여 나폴레옹의 승리의 여신은 조세핀이었다는 것을 명백하게 드러내며 그들의 사랑을 부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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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즉위 이전 나폴레옹과 뜻을 같이했던 그의 동생 뤼시앙 또한 자신의 음악에 ‘달콤한 승리의 여신’ 멜로디를 삽입하고 있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황제 즉위에 반대하면서는 더 이상 이 멜로디를 사용하지 않고, 자신만의 멜로디로 곡을 구성한다. 반면, 나폴레옹의 조력자인 탈레랑은 뤼시앙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나폴레옹와 함께했음에도 불구하고 본 멜로디를 자신의 음악에 사용하지 않으며, 나폴레옹과 함께 노래하는 일도 거의 없다. 이 점에서 탈레랑과 나폴레옹의 사이가 정치적 관계였으며, 나폴레옹을 자신의 권력을 위한 도구로 생각한 탈레랑의 모습을 보여준다. 조세핀과 나폴레옹의 사랑 노래인 ‘처음 만난 그날’ 또한 처음부터 끝까지 조금씩 변형되며 리프라이즈되어 둘 사이의 사랑이 매우 깊었음을 보여준다. 주・조연 모두 각자의 라이트모티프를 가지고 있어, 시간이 전개되면서 변해가는 상황과 위치 등을 조명함과 동시에 음악적 완성도가 뛰어나다. 

 

극은 단순히 나폴레옹의 위대한 부분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민간인 학살 등 그가 잘못한 부분과 독재자로서의 면모도 함께 비춘다. 뮤지컬 <나폴레옹>이지만, 나폴레옹 외에도 조세핀, 뤼시앙, 탈레랑, 안톤 등 다양한 인물을 입체적으로 그려냈으며 각자의 서사 또한 가지고 있다. 더불어 나폴레옹-뤼시앙-탈레랑에서 나폴레옹-탈레랑-조세핀을 중심으로 한 대립 관계와 나폴레옹-조세핀, 클라리스-안톤의 로맨스 진행하여 서사를 다채롭게 한다. 특히, 공연 중간중간 “예뻐요”, “감사합니다” 등 간단한 한국어를 삽입함으로써 한국 관객과의 유대감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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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와 조세핀의 모습

 

 

당신 없이 난 숨을 쉴 수 없어

당신 없이 내 세상은 멈추네

그 따뜻한 손을 뻗어 두려움을 몰아내고

애써 외면했던 내 마음을 알게 해

 

- 처음 만난 그날 밤 中 -

 

 

극에서 나폴레옹은 병사들을 향한 애정과 관심을 기반으로 한 뛰어난 전략가이자 정복자로서의 위엄있는 황제의 모습과 조세핀을 사랑한 한 남자로서의 모습이 동시에 그려진다. 즉, 권력자이면서 한 남자인 나폴레옹의 모습이 그려진다. 로랑 방은 이를 매우 훌륭하게 표현했다. 쿠데타 전 힘없는 군인의 모습일 때는 꿈은 있지만 억압받는 상황에 놓인 만큼 조심스러운 음색을 펼치다가 쿠데타 성공 이후에는 점점 자신 있고 강한 목소리를 기반으로 노래를 탄탄하게 소화한다. 이것이 황제 즉위식에서 가장 강하게 드러나며 전조와 도약을 완벽하게 함으로써 위엄있으면서도 당당한 태도를 보여준다. 특히, 황제 즉위식에서 2017년 한국 공연과 달리 로마 교황 피우스 7세가 받쳐 든 황관을 스스로 집어 들어 대관하는 행위를 강조함으로써 나폴레옹의 야망과 권위를 강조하며 1막을 호화스럽게 마무리한다. 2부에서도 이런 양면적인 모습을 음악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해 낸 로랑 방의 모습은 압도적이었다.

 

이 외에도 조세핀의 키아라 디 바리는 나폴레옹을 만나기 전에는 강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다가 나폴레옹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며 서정적이며 낭만적인 목소리로 변해간다. 뤼시앙 역을 맡은 존 아이젠은 감성적인 목소리로 선율을 풍부하게 만들어 냈다. 텔레랑, 클라리시, 앤톤, 테레즈를 포함하여 모든 배우들이 자신의 역에 맡게 훌륭한 기량을 뽐냈다. 24명의 앙상블이 만들어내는 하모니와 역동적인 안무는 관객의 눈을 사로잡을 뿐 아니라, 다소 비어 있는 무대를 꽉 차 있는 듯 보이게 했다. 안무는 궁정 장면에서는 물 흐르는 듯한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주로 한 반면, 백성들의 삶을 보여줄 때 때는 각 동작들이 파편적으로 단절되게 하여 대비감을 부여했다. 더불어 발레를 삽입하여 19세기 프랑스의 ‘그랜드 오페라(grand opera)’의 한 부분을 떠올리게 했다. 

 

6개의 대형 LED 화면을 중심으로 이번 작품에서는 한국 라이선스 공연 때보다 LED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였다. 특히, 황제 대관식 장면에서의 성당의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는 가히 아름다웠다. 전반적으로 LED 배경은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의 회화를 연상시키는 듯했다. 무대 양쪽에 프랑스 궁전을 표현한 듯한 기둥을 배치하여 양쪽에서 각기 다른 이야기를 전개하여 전개 속도를 높이거나 대립 관계를 형성했다. 양쪽으로 나눠진 무대는 기둥 사이의 큰 무대와 하나 되기도 하면서 이분화되었다. 다만,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무대가 무대 세트에 비해 다소 커 전반적으로 여백이 많이 생겼다. 이런 점이 다소 아쉬웠으나 다른 프랑스 뮤지컬인 <노트르담 드 파리>, <로미오와 줄리엣>을 생각해 봤을 때 프랑스 뮤지컬의 특징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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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은 프랑스에서 매우 상징적이며 역사적 영향력이 있는 인물인 나폴레옹을 그린 만큼 프랑스 국기의 색깔인 파란색, 흰색, 빨간색을 순서대로 동시에 배치하는 것을 자주 사용하였다. 이것이 극에서 나폴레옹이 강조하는 “자유, 평등, 박애(우애)”를 효과적으로 드러냈다. 핀 조명은 대체로 대각선으로 많이 사용되었지만, 단 한 명에게는 예외였다. 나폴레옹을 집중 조명하는 장면에서는 그에게 수직으로 백색의 핀 조명을 사용함으로써 마치 그를 신처럼 보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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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끝난 직후, 출연진의 사인회가 로비에서 진행되었다. 배우들이 관객 한 명 한 명과 한국어로 인사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질서 정연하게 이루어졌다. 공연과 공연 직후 모두 굉장히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뮤지컬 <나폴레옹>은 5월 5일부터 21일까지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 공연한 뒤, 바로 아시아 투어가 예정되어 있다.

 

 

 

컬쳐리스트 김소정 명함.jpg

 

 

[김소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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