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시들어가는 꽃 가지의 가장 생기있는 자기증명 - 유도라 허니셋은 잘 지내고 있답니다

글 입력 2023.05.05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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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들어가는 꽃의 자기증명


 

올 봄에 꽃이 피고 빠르게 지는 것을 보면서, 문득 시작과 끝이 가장 좋다는 생각을 한 적 있다.

 

왜 그런지 고민해보니, 시작에는 무모하고 순진한 용기가 있어서 마음이 편하고, 끝은 애쓸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서 마음이 편하기 때문인 것 같다. 꽃이 가장 아름답게 필 때, 온 줄기와 꽃잎은 온 힘을 다해 뻗고 바람으로부터 꽃잎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가장 화려한 시기에 꽃은 가장 아름답다고 불린다. 꽃은 꽃피웠을 때 꽃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나는 그가 가장 아름답지 않은 시기, 연약하거나 부서져 갈 때 모든 순간이 피어나는 과정이었음을 긍정하고 싶다. 꽃은 피어나지 않아도 꽃이다. 만개한 그 순간이 아니라, 그 씨앗과 줄기를 뻗어 가는 그 모든 생명과정이 꽃의 자기증명이다. 어떤 것을 꽃이라고 지칭하건 떠나, 나에게 꽃은 분리된 결과가 아니라 연속적으로 피어나는 과정이다. 인간의 발달이 노화를 포함하는 것처럼.

 

 

 

2. 마지막에 피어난 여인을 소개합니다


 

오늘 리뷰할 도서, <유도라 허니셋은 잘 지내고 있답니다>는 나의 이런 감상과 맞닿아있는 작품이다. 작품의 주인공 유도라 허니셋은 꽃잎과 줄기가 생명력을 잃어가 시들어간, 삶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는 노인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전체적인 내용에 걸쳐, 마지막 순간에서야 자신의 삶을 찾는다. 생생한 초록색도, 아름다운 꽃잎도 없지만, 그는 마지막 순간에서야 피어난다.

 

책은 유도라 허니셋이 연명해가는 자신의 삶이 불명예스럽다고 여기면서 안락사를 결심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그녀가 이러한 결정을 내린 더 심층적인 이유로는, 그녀의 여동생과 어머니가 사랑하는 사람-특히 그 자신이 지켜주지 못한-이 지켜보지 않은 데에서 죽었다는 과거와, 자신 역시 그렇게 될까 봐 두려운 마음이 있다.

 

그녀의 전 생애는 가족에 얽매여 있다. 어린 시절 유도라는 전쟁 참전 용사인 아버지로부터, 태어날 아이와 어머니의 보살핌을 부탁받는다. 아버지에 대한 가장 소중한 기억은 그녀의 생일을 축하하고 안아준 것이었다. 유도라는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지나치게 성숙한 태도로 어머니와 여동생 스텔라을 돌본다.

 

한편, 어머니와 여동생은 아버지의 의지를 이어받은 유도라를 챙길 대상이 아니라 의지할 대상으로 삼는다(그녀가 지나치게 아버지의 역할을 재현하고 있었던 것도 크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사망으로 가정을 돌보고 아이들을 양육해야 한다는 정서적, 현실적 고난으로 인해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불안과 상실감을 새로 태어난 아이에게 쏟아낸다. 어머니로부터 무언의 압박을 받은 스텔라는 반항적이고 고집스러운 성격으로 자라게 되었다. 유도라는 "고래들이 싸우는 사이의 새우"의 역할에 캐스팅된 것처럼 느끼면서 둘 사이를 중재한다.

 

하지만 스텔라가 유도라의 약혼자와 바람나고 야반도주를 하면서, 스텔라와 유도라의 연이 끊긴다. 이후 스텔라가 아이를 가지고 난 후 유도라에게 연락하지만, 유도라는 그 전화를 무시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스텔라가 남편이 밀어 계단에 굴러떨어지면서 사망한다. 유도라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에 가슴 아파한다. 이후에도 유도라는 새로운 가정을 꾸릴 기회가 있음에도 그러지 못한다.

 

이후 어머니까지 자신이 돌보지 못한 사이에 병원에서 사망하면서, 유도라는 줄곧 혼자 살게 된다. 유도라는 고압적이고 냉소적인 할머니로,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안락사를 결심한다. 개인적으로는 유도라의 비사회적인 성격과 죽음에 대한 결심은 자기 자신에게 벌을 주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이 외롭게 죽었고, 그녀는 그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도라가 한 달 동안 안락사 절차를 밟는 동안, 옆집에 로즈라는 어린아이가 이사 온다. 로즈는 유도라의 불친절한 성격에도 끝없이 차를 함께 마시고 재밌는 놀이를 함께하자고 한다. 그런 로즈의 재기 발랄함에 아내를 잃어 우울한 스탠리와 가깝게 지낸다. 그녀는 결국 안락사 절차를 끝내고 항공까지 가지만, 마지막까지 그녀를 바래다주는 스탠리와 로즈의 영상통화로 인해 그 일정을 취소한다.


유도라는 죽음 대신 로즈의 생일파티를 축하해준다. 그녀는 약한 심장마비로 정말로 죽음을 마주하게 되지만, 스탠리와 쉴라, 로즈와 함께 이야기하면서 아버지의 냄새를 기억해낸다. 그녀는 그제야 어머니와 여동생의 죽음으로부터 분리된 자기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 창백한 가운도, 차디찬 병실이 아닌 사람들의 속에서.

 

 

 

3. 나가며


 

삶의 명예로운 마무리를 위한 존엄사에 찬성하는 입장에서, 유도라 허니셋의 선택이 어떤 교조주의적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길 바랐다. 하지만 이 책의 목표는 존엄사에 대한 어떤 찬반 의견을 소설적 틀로 풀어낸 것이 아니라, 유도라 허니셋이라는 사람이 어떤 죽음을 맞이하길 바랐는가 자체에 초점을 둔다. 그리고 이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야말로, 이 문제를 제대로 다룰 방법일 것이다.

 

다 읽고 덮고 생각해보니, 유도라가 정말로 그대로 존엄사를 선택했다면 그것이야말로 비극이라는 생각이 든다. 존엄사를 선택하는 모든 사람이 유도라와 같지 않겠지만, 유도라에게 정말 잘 맞는 죽음은 다른 곳에 있었다. 소설의 내용이 어떤 뚜렷한 의견을 내는 것은 아니지만, 존엄사 과정에서 만나는 친절한 상담원과 행정적 절차는 그것을 알아내는 데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인간은 인간을 통해서만 자신을 구별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음을 목전에 둔 노인이 재기 발랄한 어린아이를 통해 자신의 어린아이를 회복한다는 이야기는 뻔하지만 울림이 있다. 특히 유도라 허니셋에게는 더 그렇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한 번도 어린아이다웠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와 로즈의 만남은 단순히 노인과 어린아이의 만남이 아니라, 로즈가 진정으로 잃어버렸던 시기에 대한 회복이다. 그리고 그것을 받쳐주는 것은 스탠리와의 만남이다. 그는 그녀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따뜻하고 정서가 교류되는 인간이고, 진심으로 그녀와 교류하길 바랐다. 셋의 하모니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균형을 이루고 있다.


유도라는 죽음을 미룬다. 하지만 그녀의 선택과는 별개로 죽음은 갑작스럽게 다가온다. 개인적으로는 어린 유도라가 아버지를 회상하는 장면이 생일을 축하받는 장면이고, 책의 끝에서 유도라가 로즈의 생일을 축하하는 장면의 반복이 가장 감동적이다. 로즈는 유도라의 어린 시절을 살려줌으로서 그녀가 수많은 죽음의 굴레로부터 어떤 자유를 느끼게 도와줬다. 그리고 자유로워진 유도라는 그제서야 어린 영혼을 위해 아버지와 같이 그녀를 축복할 수 있게 되었다.

 

단순하다면 단순한 플롯에 담겨있는 이 이야기는, 이상할 정도로 마음을 울린다. 생기를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수영했던 유도라는, 이제 침대에 누워있어도 살아있는 느낌이 든다. 죽음이 목전에 있다하더라도, 아이러니하지만 그제서야 그녀의 꽃은 가장 아름답고 생기있는 모습으로 피었다. 꽃이 모두 떨어진 지금, 유도라의 이야기는 마음을 묵직하게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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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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